현호정 <단명소녀 투쟁기>를 읽으며 떠오른 음악들 - 이번 호는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의 격주 코너 <ㅎㅇ의 믹스테이프 픽션>의 A/S레터 입니다. 2021년 9월 28일자 에피소드의 일부를 재가공하였고, 소개된 노래와 영상들을 보실 수 있도록 모아서 보내드려요. - 해당 에피소드 청취 후 읽어보시면 더욱 좋지만, 레터만 보셔도 큰 무리가 없으시도록 편집했어요. - 별도의 페이지로 보시려면, 여기서 읽어주세요. 현호정, <단명소녀 투쟁기> (사계절, 2021) X ⓒ VIBE, MIXTAPE FICTION ⚫ 한 줄로 말하는 <단명소녀 투쟁기> "“싫은데요?”라고 소리내서 말하고 싸우는 이의 기록" ㅡ 1. [구구:] 이 이야기는 점쟁이 북두의 신당에 합격할 대학을 점지받으러 간 19살 수정'이 스무살 전에 죽는다는 예언을 듣고서 삶을 연장하고자 남동쪽으로 향하는 연명담입니다. 떠난 길에서 '이안'을 만나게 되요. 수정은 살고자 하고, 이안은 죽고자 합니다. [ㅎㅇ:] 두 사람이 처음 만나서 나누는 대화를 먼저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이안이 수정에게 "혹시 살러가요?" 라고 물어보니까, 수정은 "딱히 살고 싶다기 보다는 죽고 싶지가 않아서요." 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죠. 이 대화만 보셔도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떤 여정을 떠날지 궁금해지고, 또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추측 하면서 읽어보게 됩니다.
[구구:] 이안의 테마곡으로는 안예은의 '야화' (2021)를 선정했습니다. 이 곡은 웹툰 <야화첩>의 OST로 제작된 곡인데요. 곡의 정서, 가사, 이 곡을 쓰게 한 원작의 캐릭터들이 이안과 겹쳐보이는 부분이 많아서 고르게 됐습니다. 저는 안예은님의 보컬이 고전설화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왔는데, 또 안예은님이 소문난 과몰입 덕후시잖아요. 그래서 노래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가사에 덧입히는 서사의 몰입도가 끝내주게 높은 게 아닐까 해요. 다시 이안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이안은 죽음을 향해서 가는 인물이지만 죽음을 목표로 하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용기있고 단단한 모습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더 읽어보면, 수정의 앞에서는 그들이 헤쳐나가야 할 관문이 많기 때문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안으로는 계속 곪고 있는 그런 캐릭터라는 걸 알게 되요. 그는 계속해서 자신이 수정의 삶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야화'의 가사 중에서 "망가지고 또 망가진 너와 나에게 / 그려내고 그려내도 끝이 나지 않는 / 어둠에 발이 묶인 채 영원히 잠들 수 없어" 같은 부분 등등에서 이안이 연상 되었습니다. 2.
[구구:] 반면, 수정은 삶을 향해 가는 캐릭터에요. 이안과 자기자신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데 뒤로 갈수록 굉장히 강인해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건 스스로의 삶에 대한 집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안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 처럼 보이기도 해요.
에버글로우의 'first' (2021)는 이렇게 점점 강인해지는 수정의 모습에서 착안한 곡이에요. 이 노래의 공식소개글을 읽어보면 강인한 여전사 이미지를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져 있다고 나와 있어요. 퍼포먼스, 의상 모두 여전사 이미지를 신경 써서 드러내고자 했다는 점이 느껴지는 게 인상 깊고요. [ㅎㅇ:] 저는 그런 점을 더 부각시켜 준 요인이 무대 위의 백업댄서들이 자객처럼 옷을 갖춰입은데에 있지 않나 싶어요. 요즘 음악방송 무대를 볼 때, 코로나 때문에 안면을 가리는 형태의 의상들이 백업댄서들에게 많이 보이는데요. 특히 'first'의 백업댄서 스타일링은 이 곡과 찰떡이었어요. [구구:] 맞아요. 제가 앞서 이안의 테마곡을 설명 드릴 때, 이안은 자신이 수정을 망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런데 수정은 그게 단단한 착각이라고 말하거든요 (...) 수정은 두 사람이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을 거라는 강한 믿음을 가진 캐릭터에요. "이 세상 어디도 빛은 없단 거짓에 속지는 말아줘 / 우리 함께 본 적 없는 꿈을 꿀 거야" 같은 이 곡의 가사 처럼요. '거짓에 속지 말아줘', '착각하지 말아줘' 라고 해석하면서 이 곡을 들으니까 또 다시 과몰입 하게 되더라고요. 3. [ㅎㅇ:] 두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관계를 잘 드러내면서도 이 책에서 굉장히 눈에 띄는 장치가 있는데, 그게 바로 '가름끈'입니다. 이 책에는 어느 페이지까지 읽었는지 표시하는 가름끈이 두 개가 붙어 있는데요. 하나는 흰색, 또 다른 하나는 검정색이에요. 가름끈 두 개를 넣은 이유에 대해 이 책을 만드신 사계절 출판사 김민해 디자이너님의 작업 노트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독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각각 삶과 죽음으로 향해 가지만 함께하고 있는 수정과 이안을 생각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흑과 백 두 개의 가름끈을 넣었다.” 만일 작업 노트를 보지 않았다면 독자로서는 마음대로 추측을 해봤을테고, 또 어떤 분들은 이게 인쇄작업상의 오류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건 분명한 기획의도가 있는 작업이었던거에요.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이야기의 핵심적인 메시지와 방향성을 이야기 외부에서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많이 고민하신 것 같고 그게 멋진 결과물로 나왔다는게요.
그래서 이 책의 가름끈을 보면서 레드벨벳 아이린&슬기의 '놀이' (2020)를 떠올렸습니다. '놀이' MV를 보면 아이린이 흰색 의상을, 슬기는 검은색 의상을 입고서, 두 사람이 데칼코마니처럼 합을 맞추는 장면들이 많아요. 놀이 MV를 볼 때 느꼈던 감상과 <단명소녀 투쟁기>에서 가름끈을 마주했을 때의 감상이 딱 일치한달까요? 이 MV가 정말 경이롭거든요. 이 곡의 안무를 제작한 안무가 스펠라님에 따르면, 안무제작에 2개월이 걸렸고, 이 곡에 쓰인 '텃팅(Tutting)'이라는 춤의 기본기, 안무 트레이닝, 수정과정이 4개월에 걸쳐 이뤄졌다고 해요. 그러니까 노래를 제외하고 춤만 놓고 봤을 때 6개월 정도의 기간이 걸린 대작인거죠. 제가 계속 한 번쯤은 MV를 보셔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나노 단위로 끊어서 아이돌의 안무를 분석해주는 '루다의 댄스 연구소' 채널을 보면, 거기서 텃팅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는데요. "기본적으로는 손을 활용한 상반신의 창의력이 돋보이는 특성을 가진 춤인데, '놀이'라는 곡은 상반신만 쓰는게 아니라 하반신으로도 리듬감을 만든다" 라는 거에요. 그런 점 때문에 아마 이 퍼포먼스를 실현하는 가수 입장에서는 두 배로 힘들었을 거다 라는 짚어주시기도 하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MV를 보니 더욱 더 놀라웠습니다. ㅡ 그 외 팟캐스트에서 언급된 콘텐츠들 ☑️ 줌파 라히리, <책이 입은 옷> (마음산책, 2017) : 책의 인상적인 표지 이야기와 디자이너님의 작업 노트를 이야기하다가 언급한 저의 추천도서 입니다. 줌파 라히리가 쓴 책 표지에 관한 얇은 산문집이에요. ☑️ 사이토 린(글), 요시다 히사노리(그림) <가을에게, 봄에게> (미디어창비, 2020) : <단명소녀 투쟁기> 5장에 언급되는 동화입니다. 책을 읽던 저는 작가님이 작명한 가상의 책 제목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구구님이 소장하고 있는 동화책이었어요. ☑️ 올리비에 푸리올, <노력의 기쁨과 슬픔> (다른, 2021) : 이 책의 특징 중 하나인 '대조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언급한 도서입니다. 제가 요즘 뼈에 새긴 이 책의 한 문장을 소개 했어요. "휴식은 활동의 반대 상태가 아니라 ‘가능'해지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행동하고 싶다면 완전한 휴식 상태에 들어설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휴식 상태를 거쳐야 벼락처럼 폭발적인 에너지로 행동할 수 있다." (p.129) ㅡ 모아보기 페이지를 오픈했어요! 믹스테이프 픽션의 과월호와 팟캐스트 지난 에피소드를 들으실 수 있는 모아보기 페이지를 오픈했습니다. >> 모아보기 페이지 구경하러 가기 🟠 <콘텐츠 로그> 구독 페이지로 가기 🟠 이 레터를 읽고 후기 쓰기 🟠 발행인에게 제안이나 질문하기 🟠 이번 호까지만 읽고 해지하기 오늘까지 3,381분의 구독자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10월 2일(토)에 콘텐츠 로그로 다시 만나요! Copyright © 2019-2021, ㅎ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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