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ㅇ 《파과》의 '조각'은 65세의 여성이고요. 본명은 아니고 닉네임입니다. 그는 이야기 속에서는 '방역업자'로 불리는데 청부 살인 의뢰를 받은 후 그 일을 수행하는 킬러입니다. 제목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김다희 ‘파과'는 ‘으깨진 과일’이라는 뜻인데 (여자 인생에서 가장 좋을 때를 의미하는) ‘16세 여자’라는 의미도 있다고 해요. 작품 내에서도 과일에 관한 상징적인 장면들이 많죠. 복숭아가 냉장고에서 썩는 장면이라든가, 마지막에 주인공이 의미 있게 관계를 맺는 ‘강 박사’라는 인물이 과일 가게에 자주 들른다거나 그런 것들이요.
ㅎㅇ 그래서 복숭아라는 과일을 그동안 나는 너무 얕게 알고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천도 복숭아랑 물복 딱복 얘기만 했는데, 이 소설에 ‘수밀도’라는 단어가 나오잖아요. ‘수밀도가 뭐야? 칼 이름인가?’ 했는데 “껍질이 얇고 살과 물이 많으며 맛이 단 복숭아”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글리프]에는 구병모 작가님이 사용하는 조금 어려운 단어들만 모아서 소개하는 코너도 있더라고요.
김다희 구병모 작가님이 다양한 작품 속에서 사용한 한자어들을 모아놓은 코너인데요. 작가님은 평소에 국어 사전 읽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신다고 해요. 그래서 독자 입장에서는 조금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한자어가 작품 속에 여럿 등장하는데요. 그것들의 사전적 의미들을 찾아서 국어 사전 콘셉트로 구성을 해보았습니다.
ㅎㅇ 《파과》를 읽으면서 제가 정말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단어들은 시러베장단?* 지남력?** 이것은 국어 사전을 평소에 즐겨보는 자의 소설이다….
* 시러베장단: 실없는 말이나 행동을 낮잡아 이르는 말. ex)“시시껄렁한 태도는 시러베장단에 호박 국 끓여 먹을 기세이고”(《파과》, p.36)
** 지남력: 시간과 장소, 상황이나 환경 따위를 올바로 인식하는 능력. ex) “자기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 잠깐이라도 지남력을 상실해본 적이 없다.”(《파과》, p.62)
김다희 이런 식으로 생소한 단어들을 만나면 감각 환기가 된다고 해야 할까요?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표현들은 점점 밈화 되고 있고 있잖아요.
ㅎㅇ 갈수록 언어가 빈약해지죠.
김다희 그럴 때 구병모 작가님의 소설을 읽으면 비어있던 부분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언어적 인풋'이 필요하실 때 구병모 소설을 읽으시길!(웃음)
ㅎㅇ 처음 《파과》를 읽었을 때 어떤 점이 가장 좋았나요?
김다희 “이거 60대 할머니 킬러가 나와. 여성 킬러 이야기야.” 그럼 끝이죠. 너무 읽어보고 싶은 서사잖아요. 도대체 어떻게 할머니인데 킬러고, 그걸 어떻게 묘사했을까? 그런 호기심으로 시작하신다면 만족스러운 독서가 되실 거라 강력 추천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캐릭터가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는데요. ‘할머니 킬러’라는 직업이 다소 현실성 없게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노년 여성이 겪는 불안감이나 일상적인 차별을 잘 그려냈다는 점, 노화의 과정을 겪으며 그가 스스로에게 느끼는 몸의 변화 같은 걸 다루었다는 점이 의미있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구병모 작가님 문체의 특징이기도 한데, 정말정말 긴 장문들이 있거든요. 어떤 문장은 한 페이지를 다 채우도록 끝나지 않고요. 장문의 문장을 작가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쓰신 부분이 매력적이어서 읽고나면 희열을 느낍니다.
또 하나는, 덕력이 있으신 분들이 보시기에, 뭐랄까요? 작품 속에 떡밥이 너무 많아요. 조각을 중심으로 여러 관계들이 이 소설 속에 나오는데요. '류'나 '강 박사' 같은 남성 캐릭터들은 어떻게 붙여놓더라도 나름대로 케미가 있어요. 그래서 《파과》는…… 연성이라고 하죠? 각자의 취향대로 연성을 고르실 수 있다는 것.*
* 연성: 특정 콘텐츠를 재해석 하여 소비자가 다양한 2차 창작물을 만드는 일. 콘텐츠 속의 최애캐 또는 차애캐가 연성 대상이 된다.
ㅎㅇ 저도 덕후의 관점으로 바라볼 때 캐릭터들의 이름이 되게 재미있다고 느꼈는데요. 류가 조각을 킬러의 세계로 입문시킨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소설 속에서 류 부인의 이름은 '조' 잖아요? 류와 조? 저한테는 약간 기시감이 드는 거예요. 혹시 다희 님도 같은 부분을 느끼셨는지 모르겠는데 뮤지컬 덕질 하시는 분들이 류와 조 얘기를 그렇게 많이 하시거든요. 류정한, 조승우… 아니 작가님 혹시 뮤덕이신가?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