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모든 이야기들의 안식처 '안전가옥'
오늘은 봄날의 나들이에 들고 나가면 좋을 책 네 권을 소개한다. 스토리 프로덕션이자 출판사 안전가옥에서는 지금까지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로 총 스물 여덟 권의 책을 출간했다. 르세라핌 허윤진이 읽은 책으로 알려진 김청귤 작가의 판타지 소설 《재와 물거품》이 라인업에 포함 된 바로 그 시리즈다.
이 중, 안전가옥에서 2권, 콘텐츠 로그에서 2권을 선정해서 소개한다. 스물 여덟 권 중 네 권만 고르는 과정은 제법 쟁쟁 했는데, 안전가옥 팀과 미팅을 하면서 팔이 안으로 굽는 이유에 대해 들어보았다. 소갯말에 약간의 미팅 후기를 녹여보았으니 즐겁게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각각의 책 소개가 끝날 때마다 '읽고 싶어요' 버튼도 눌러보시길. 안전가옥으로부터 함께 읽어보면 좋을 다른 책 추천까지 특별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
|
|
🌴 안전가옥 PICK 🌴 안전가옥 PICK 🌴
|
|
|
시리즈 no.24
백승화 《성은이 냥극하옵니다》
#역사소설 #고양이 #232p
지난 달 종영한 KBS2 대하 사극 <고려 거란 전쟁> 첫 화가 방영되었을 때, 모두가 '촬영 감독의 사심이 담긴 고양이 컷'에 대해 이야기 했다.* 대량원군이 현종이 되기 전까지 칩거하던 신혈사에서 뒹굴거리던 고양이가 약 6초간 공중파에 송출되자 애묘인들은 술렁였다. 나는 애묘인은 아니다. 고양이를 귀여워하지만 책임져본 적은 없으므로. 때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고양이에게 간택 당한 적 없는 나의 생활 감수성 중 어떤 부분은 치명적으로 비어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본래 이 소설은 영화를 위한 트리트먼트 였는데, 담당 PD는 원고의 매우 초반부에 해당하는(도서 기준 9쪽에 나온) "애옹"만 보고도 출간 계약을 결정했다고 한다.** 나는 안전가옥과의 미팅에서 이 얘기를 들었을 때 그 "애옹"을 사람이 발음한 게 아닐까 잠시 의심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이야기는 아니었다. (참고로 이 책에는 "애옹"이 총 4번, 유의어인 "매애옹"이 총 5번 등장한다.) 미팅에서 크게 리액션을 하지 못한 게 못내 마음에 걸렸고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이 소설이 애묘인들이 무조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라면 나처럼 고양이와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이 책을 소개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 남겨진 몫이라고.
이야기는 이렇다. 임금이 사랑하며 궐 내에서 함께 기거했던 고양이가 사라진 뒤로 궁궐이 발칵 뒤집힌다. 임금은 '구묘공고'를 건다. "금빛 털의 꿀묘로, 걸을 때의 길이가 한 자에 달하며, 오색 줄로 된 목줄에는 '금손'이라는 제 이름이 쓰였고…." 그 때부터 온 백성이 금손을 찾기 시작한다. 그 중에는 고양이를 향한 임금의 애착을 유난이라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알고보니 고양이는 왕실 사회의 권력 암투 속에서 누군가에 의해 납치 당한 것이었다. 극 중 노비 쪼깐이가 들려주는 "좋은 말 같으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하면 되고, 나쁜 말 같으면 '망극하옵니다~' 하면 됩니다요."는 계급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처세술이 얼마나 허술한지 보여준다. 고양이 금손은 그냥 "애옹"만으로도 상대의 마음을 녹일 뿐이라는 걸 떠올려보면 더욱. 그러니, 고양이의 자리에 다른 무엇을 넣어도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이 빈칸은 처음부터 고양이의 것이었고, 고양이만이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문인 김시민의 <금묘가>(1761, 『동포집(東圃集)』에 수록된 시)가 이 책 후반부에 인용되어 있다. 이는, 조선 시대의 가장 유명한 애묘인이었던 숙종의 고양이 사랑에 대한 시다. 어쩌면 《성은이 냥극하옵니다》는 현대인이 금묘가를 제대로 읽기 위해 쓰여진 232쪽의 대서사시인지도 모른다. 도서 팟캐스트 <책읽아웃>에서는 이 책의 명대사로 "윗물이 똥물이라도 아랫물은 맑아야 하지 않겠습니까"를 꼽았다. 유권자로서 우리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2024년 4월, 책장을 넘기다 이 문장을 만난다면 깊이 공감하게 될 것이다.
* 신혈사 뒹굴 고양이는 영상 클립 기준으로 1분 16초부터 1분 22초까지 등장한다.
** 트리트먼트란, 이야기의 등장인물과 주요 사건 등을 써 놓은 원고를 말한다. 트리트먼트에 대사를 첨가하면 우리가 잘 아는 시나리오가 된다.
|
|
|
🌠 안전가옥 PICK 🌠 안전가옥 PICK 🌠
|
|
|
시리즈 no.26
이하진 《마지막 증명》
#SF로맨스소설 #양자역학 #188p
먼저 이 얘기부터 해야겠다. 이 책을 읽는 건 내가 문과생이라는 걸 끊임없이 자각하는 일과도 같다. 도서 팟캐스트에서 호스트인 내 의지로(어째서?) 과학책을 선정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두 번이나 있다(아니 왜?). 책을 요약하는 대본을 쓰거나, 이를 말로 할 때마다, 매 번 문이과 통합형 인재가 되기에 나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는 걸 깨달았는데, 이번에도 여지 없이 그 점을 느꼈다. 안전가옥과의 미팅에서 퍼블리싱 담당자 님은 《마지막 증명》 더러 "제가 문과생이라 무슨 말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 말이 맞다. 부디, 소설 속에 나열된 양자 역학의 세부 사항에 너무 오래 붙들려 있지 말 것. 대담하게 넘어가도 된다.
천체물리학자 '백영'과 외계 문명을 탐구하는 '양서아'. 평화로운 어느 날, 지구에 닥친 대재앙을 겪고도 운좋게 살아남은 백영은 재앙 직후 자취를 감춘 양서아에게 끊임없이 메일을 보낸다. 양서아는 우주 어딘가에 있을까? 내가 보낸 메일을 열어 볼 확률은 얼마나 되는 걸까? 상대를 향한 그리움인지 세상을 향한 호기심인지 모를 정체 불명의 감정을 안고 있던 백영은 지구에 떨어진 운석으로부터 미지의 신호를 읽어내고는 언젠가 이런 메일을 쓴다. "으, 얘길 꺼낸 건 저지만 양자역학의 존재론적 논의는 이제 지겨우니까 더 하지 않도록 해요. 저도 그만할게요. 머리 아프니까요." 거짓말이다. 그러고도 계속해서 양자역학 얘기를 한다(그만… 제발 그만………!) "계획은 간단했다. 대공의 시공간 일방성을 이용한다."는 구절부터 이어지는 양서아의 계획 또한 하나도 간단하지 않다.
그래도 나는 이런 말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이토록 짧은 찰나를 스쳐 가는 우리에게도, 이렇게 마음을 전할 기회를 주는 이 우주는 참 너그럽네요." 평소에 나의 사소함과 세상의 거대함을 감각하지 못한다고 해도,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사고하지만 "마음 같은 걸 믿게 되다니. 정말 별 일"이라고 여기는 이들의 사랑이 얼마나 절절한지 알 수 있어서. 그러니까, '로맨스' 같은 건 관심 없다고 말하는 내가 생각하는 로맨스의 범위가 얼마나 협소한지를 이 말 앞에서야 깨달을 수 있으므로. 손수현 배우가 《마지막 증명》에 실린 편지 중 일부를 낭독했고(📎백영 ver / 📎양서아 ver) 이하진 작가는 이 이야기를 위해 직접 테마곡을 만들었다.
|
|
|
⚽ 콘텐츠 로그 PICK ⚽ 콘텐츠 로그 PICK ⚽
|
|
|
시리즈 no.9
류연웅 《근본 없는 월드 클래스》
#블랙코미디소설 #축구 #180p
올 1분기를 돌이켜보면 AFC 카타르 아시안컵을 응원하던 기억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공을 찬 건 아니지만, 국민으로서 이토록 에너지를 털어 썼던 시즌이 또 있었나 싶다.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후반전의 추가 시간을 이례적으로 9분이나 받아내고는 99분에 조규성 선수의 헤딩골이 터지는 걸 볼 때, 승부차기 끝에 8강 진출이 확정되었던 짜릿한 순간을 목격할 때, 그리고 어떤 하극상 논란으로 선수들의 입장문과 사과문이 연달아 올라오는 걸 볼 때까지도. 지금은 2024년 4월이며, 《근본 없는 월드 클래스》가 2021년에 나온 책이라는 걸 믿을 수 없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이건 1) 대한민국 축구 국대 감독이 경질되는 이야기이자 2) 그 전에 대한민국 국대 축구 선수가 후반전 88분에 헤딩으로 결승 골을 넣으며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게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장르는 블랙 코미디이지만 시대를 초월하는 하이퍼 리얼리즘에 가깝다.
책을 펼쳐보면 웬 강의 계획서가 실려있다. 앞으로 인물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조별 과제를 수행하야 하는 미디어학부 재학생들의 16주가 펼쳐질 예정이다. 8주차에 중간고사가, 16주차에 기말고사가 있지만 수업이나 시험은 별도로 없고, 조별로 다큐멘터리 최종 완성본을 제출하는 것으로 갈음한다. 주인공 한채연은 "과제란 창작물이 아니다. 외주 작업물에 가깝지. 철저히 교수님 취향에 맞춰 제작한단 소리다."라는 생각을 탑재하고 있을 정도로 진정한 학문과 무관한 학점 취득용 과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극 중 대한민국에서 축구란 정부가 선정한 5대 사회악 중 하나로 지정되어 있으며, 조금 전에 말한 '후반전 88분에 헤딩으로 결승 골을 넣은' 전직 축구선수 김덕배는 축구 근절 센터에 감금되어 있는 중이다. 이번에도 무난하게 조별 과제를 해치우려던 한채연은 다름 아닌 축구에 씌워진 누명을 벗겨야 한다는 의무를 떠안는다. 미디어의 힘을 빌려서 말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결국 사람들의 관심을 이용해서 일을 되게 만드려는 주인공은 이렇게 다짐한다. "내가 근본을 잃고 뇌절을 하는 미디어 소녀라면, 기왕 이렇게 된 것 끝까지 뇌절을 해 보겠다. 뇌절 소녀 되겠다. 남들에게 근절당하고 근본 소녀 될 바에야." 이는 신혜선 배우가 쿠팡플레이 코미디 쇼 <SNL 코리아>에 출연해 상대를 도발하기 위해 읖조렸던 랩 "어쩔티비 저쩔티비 안물티비 안궁티비 뇌절티비"를 소환한다. 한 네티즌이 이런 조어들의 모음을 궁금해하는 해외 시청자들을 위해 이를 "whatever TV, so what TV, nobody asked TV, not curious TV, i’m shocked TV"라고 친절하게 번역 한 틱톡 영상을 제작한 것까지가 너무나 미디어 세상의 일면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
|
|
🐻 콘텐츠 로그 PICK 🐻 콘텐츠 로그 PICK 🐻
|
|
|
시리즈 no.28
청예 《수빈이가 되고 싶어》
#청소년소설 #아역배우 #184p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장난을 잘 치는 타카기 양>을 보고 있다. 지난 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에서 초등학생 미나토 역으로 섬세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배우 '쿠로카와 소야'의 주연작이다. 쿠로카와 소야는 벌써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는데, 말 그대로 장난을 잘 치는 같은 반 여학생 타카기 양에게 관심을 가진다. 하루하루 얼굴 선이 또렷해지거나 눈빛이 우수에 차는 아역 배우를 볼 때면 그저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만 하염없이 들 뿐이다. 그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이어가기 위해 어떤 격동의 시간을 보내는지는 거의 짐작하지 못한다.
《수빈이가 되고 싶어》는 당대 가장 잘나가는 아역 배우 '수빈'이 영화에서 중도 하차하면서 그 자리를 노리게 된 두 10대 여성 아역 배우들의 분투기다. 일단, 소설 속에서 극 중 아역 배우의 삶은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감독의 디렉팅을 찰떡같이 소화하는 법은 알았지만, 친구들이 떡볶이를 먹을 때 어떤 튀김을 추가해서 먹는지는 몰랐다." 둘 중 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연기력이 좋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비주얼이 좋다(고 대세에 의해 평가된다.) 캐스팅 권한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은 "요즘 것들은 애매하게 하나만 갖고 있다니까요."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들은 수빈이에게 주어진 배역을 대신 연기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 배역을 따냈을 때 달라질 어른들의 태도를 더 궁금해한다. 그렇게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는 주인공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악의만큼은 완성된 작은 어른"으로 자라나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악플을 구두로 읽어주면서도 사적으로 친한 관계를 연기해야만 하는 인기 유튜브 채널에 출연 하는데, 저자가 혹평을 받았던 JTBC <악플의 밤> 포맷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이렇게 조악하게 제작된 극중 프로그램을 보며 악플에 시달리다 우리 곁을 떠나게 된 이들을 다시 한 번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스캔들, 과호흡, 다이어트 약까지 연예계의 뿌리 깊은 문제들을 다룬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게 결국 하나의 배역을 놓고 대립하는 두 사람의 질투 때문이라고?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질투에는 휴일이 없다"고 했고,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는 "질투하는 사람은 이웃이 살찔 때 마르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수빈이가 되고 싶어》를 쓴 청예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우리의 지난 날을 이렇게 격려한다. "질투 좀 하면 어때요?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서 성장하는 것도 청춘의 미션입니다." 원하는 배역을 거머쥐기 위해 달려나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 중간중간에, 20대가 된 두 사람의 패션지 인터뷰가 교차하는 구성이다. 속편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보고 싶다. 그들이 어떤 배우로, 또 어른으로 살아갈지 궁금하니까.
|
|
|
월요일에는 대중문화를 큐레이션 하고
목요일에는 못다 한 이야기를 보냅니다.
지금까지 5,610분의 구독자와 함께하고 있어요.
COPYRIGHT © CONTENTSLOG. ALL RIGHTS RESERVED.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