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리스트> 저자 인터뷰 + 가즈오 이시구로 단편소설 <녹턴>을 읽으며 떠오른 음악들 ㅡ
진행. ㅎㅇ
10일에 한 번씩 뉴스레터 <콘텐츠 로그>를 보내고, 격주로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에서 말한다. |
EP34. "스트리밍 시대에 음악 주변을 서성거리는 일"
ㅎㅇ 《플레이리스트》는 제게 있어 '2022년 2분기의 책'이었는데요. 제목만 듣고는 이게 어떤 책이고 장르는 뭘까 하고 궁금해하실 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 작가님께 직접 책 소개를 부탁드려요.
김호경 이 책은 저의 석사학위 논문을 단행본으로 고쳐 쓴 책이고요. 엄청 딱딱하긴 하지만 논문 제목은 '스트리밍 시대의 새로운 음악 감상 방식의 출연과 그 의미'입니다. 스트리밍 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가 되면서 과거와는 다르게 생겨난 새로운 감상법과 감각 경험이 있는 것 같다는 전제 하에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 책이에요. 구체적으로는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채널들의 문화를 관찰하고 또 감상자 개개인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ㅎㅇ 논문이 단행본이 된 경우의 가장 큰 장점은 더 많은 독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말씀하신 제목을 가진 논문을 제가 우연히 보게 됐다고 하더라도, 아마 그 논문을 끝내 열람하지는 않았을 것 같거든요. 이렇게 단행본으로 나와서 온라인 서점에서 보게 된 거고 오늘 여기까지 오게 된 건데…. 그래서 저는 논문의 독자와 단행본의 독자는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데, 당연히 작업한 이의 입장에서도 달리 느껴지는 부분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책으로 만드는 과정은 어떠셨나요?
김호경 제가 단행본을 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출판사에 연락을 드려서 시작 된 일이예요. 내용은 그대로 두고 구조를 전부 다 뜯어 고치는 과정을 거쳤는데요. 논문의 틀을 벗어나서, 읽는 분들이 보다 더 편하게 읽으실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이 이루어졌어요. 다른 것 보다도 책 디자인이 정말 아름답게 나왔기 때문에….
ㅎㅇ 정말 표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표지에 지금은 많은 분들이 쓰지 않는 줄이어폰이 있는데요.
김호경 근데 줄이어폰 요즘 다시 유행하고 있는 거 아시죠. (웃음)
ㅎㅇ 아니 언제 다시 그 유행이 돌아온거죠? 아무튼, 줄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어딘가를 바라 보고 있는 사람이 담긴 표지입니다. 원색이 쓰이거나 한 것도 아닌데, 꽤 강렬한 인상이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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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리스트: 음악 듣는 몸》(2022, 작업실유령)
ㅎㅇ 《플레이리스트》는 스트리밍 시대에 쓰여진 책이죠. 그래서 이 책에서는 플레이리스트를 "스트리밍 시대에 최적화된 도구"(p.19)라고 정의하고, "모호하고 임의적인 합의되지 않은 기준으로 형성된 음악 묶음을 사고파는 현상"(p.25)이라고 묘사하고 있어요. 저는 후자가 특히 많이 공감이 되더라고요. 물론 세상에는 정교하게 짜여진 플레이리스트도 있지만, 그 안에 굉장히 여러 가지 곡이 들어있다보니 가끔 선곡과 배치 기준이 모호하게 느껴지는 음악들이 포함되게 마련이니까요.
김호경 '합의되지 않은 기준이라는 게 제게도 흥미로운 지점이었어요. 예전에는 댄스, 힙합, 알앤비 같은 식의 장르 구분이 있었죠. 물론 지금도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분류 기준이 더 모호해진 것 같아요. 책에서 제가 예로 들었던 게 '라운지 음악'인데요. 라운지 음악은 공간을 중심으로 음악을 구분하는 거죠. 또 하나는 '시티팝'이에요. '시티팝이 뭐야?'라고 모두 한 번씩 질문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명확하게 정의 내리지 못하더라도 그게 어떤 무드의 음악을 말하는지는 알고 있죠. 그런 식으로 공간 중심, 환경 중심, 상황 중심의 구분이 점점 더 이루어지고 있지만, 지금은 합의되지 않은 기준으로 음악이 나뉘는 것 같다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한가지로는 제가 '둘러 입는 음악'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했는데요. 사람들이 음악을 집중해서 감상한다기보다는, 외투를 둘러입듯이 어떤 무드를 둘러 입는 거예요. 내가 지금 되고 싶은 상태로 만들기 위해 음악을 감상하는 현상이 있는 거죠. 물론, 저 또한 그렇게 하고 있고요.
ㅎㅇ 저는 왜 사람들이 '둘러 입는' 식으로, 또 이 책의 또 다른 표현에 따르면 '환승하는 승객들'처럼 음악을 듣게 된 것인지 궁금해하는 중인데요. 특히 케이팝 아티스트들을 보면 정규 앨범을 냈을 때 그 자부심이 엄청나잖아요. 10곡이 수록되어 있으면 이렇게 트랙 순서를 배치한 이유가 있으니 이 순서로 들어주면 좋겠다고 리스너들을 향해 이야기 하죠. 한편으로는, 이 앨범에 포함될 수 있는 후보곡이 엄청나게 많았음에도 최종적으로 지금의 버전이 고심 끝에 발매된 것임을 강조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제는 한 장의 앨범이 나오면, 리스너들이 하는 행동은 1번 트랙은 시티팝 무드의 음악이네, 2번 트랙은 라운지 음악이네 하는 식으로 앨범이 다 개별 단위로 해체되는 것부터 시작 되는 것 같아요. 결국, 앨범 한 장을 듣는 게 아니라 나한테 맞는 무드의 곡만 남겨서 골라 듣는 것 같달까요.
김호경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런 방식으로 음악을 듣죠. 그런데 여러 가지 방식이 뒤섞이는 것 같아요. 제가 책을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것도,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진지한 감상이라고는 없이 오로지 흘려듣듯이 감상을 하고 있다는 건 아니었거든요. 여러가지로 다양하고 새로운 음악 감상 방식이 생겨났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실제로, 현재의 우리는 자신이 듣고 싶은 건 거의 다 들을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잖아요. 그래서 그 망망대해에 어떤 닻을 내릴 수 있는가에 관한 방식이 굉장히 다양해진 것이라고 보고 있어요. '드라이브하면서 듣기 좋은 음악'이라는 닻을 내리고 음악을 들을 수도 있는 거고,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특정 아티스트'에 깃발을 꽂고 그 안에 파고드는 방식으로 음악을 들을 수도 있는 거고요. 감상자들의 자유죠. 재미있는 것 같아요.
ㅎㅇ 정말 그렇네요. 망망대해에 닿을 내리는 방식이 각자 다르다 라고 정리하면, 좀 더 현재의 음악 감상 방식을 둘러싼 현상들이 쉽게 이해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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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2021, 민음사)
ㅎㅇ 오늘 호경 님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눌 소설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집 《녹턴》입니다. 이 소설집은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고, 다섯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저희는 표제작 '녹턴'에 대해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아무튼, 클래식》을 쓰신 분이니까 '이 소설이 딱이지 않을까'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함께 읽자고 말씀드린게…… 사실이고요. (웃음)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무명의 색소폰 연주자인 ‘스티브'가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부심은 물론이고 명예까지 지켜내는 스타 연주자가 되려고 고군분투 하는 이야기인데요. 그는 음악가로서의 자부심이나 가치관은 확고한 편이지만, 소위 매력이 없습니다. 그런 스티브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담당 매니저와 아내로부터 듣게 되는 말의 요지는 '네 음악이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당신이 못 생겼기 때문이다' 라는 거예요. 그러니 성형수술을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진지하게 받게 되고, 그는 가장 유명한 외과 의사 '닥터 보리스'의 집도를 받게 되죠. 재미있는 건, 같은 의사로부터 비슷한 시기에 수술을 받은 헐리우드 스타들이 회복기간동안 같은 고급 호텔에 격리 된다는 설정이에요. 여기서 스티브는 ‘린디 가드너'라는 TV에서만 보던 스타의 옆방에 묵게 되는 설정이고요. 그들이 호텔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각종 사건사고를 벌이는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무명의 연주자 스티브라는 캐릭터는 어떠셨나요. 너무 찌질했죠.
김호경 정말 찌질하긴 한데, 그와중에 저와 좀 비슷한 모습을 스티브에게서 보았던 것 같기도 해요. 고고하게 자신의 예술성을 지키고자 하지만, 실은 성형수술을 해야 한다는 남의 말에 질질 끌려다니는 거죠. 그리고, 자신보다 유명한 색소폰 연주자가 상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그리고 내가 아는 한 누가 됐든 색소폰 연주자가 상은 받는 건 좋은 일이야."(p.208)라고 말하는데요. 하지만 속으로는 '별로 실력도 없는 사람이 상을 받다니?' 하고 부글부글해 하는 사람이에요. 제가 완전히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어느정도는 비슷했어요. 솔직하지 못한 모습에 연민이 가기도 하고, 재미있는 캐릭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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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도시에 있는 대부분의 뮤지션들보다 두 배는 더 재능이 있다. 하지만 요즘 중요한 것은 재능이 아닌 것 같다. (...) 나는 이 모든 것에 염증이 난다. 나는 뮤지션이다. 어째서 이런 게임이 동조해야 하는가? 어째서 내가 아는 최고의 방식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것으로 부족하단 말인가? 내 골방에서만 연주하는데도 내 음악은 점점 나아지고 있지 않은가? 언젠가는 순수한 음악 애호가들이 내 노래를 즐기고 내 방식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성형수술 따위로 얻는 것이 뭐란 말인가?"
-《녹턴》 (p.182-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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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경 저는 '녹턴'이라는 제목이 주는 인상과는 달리 전혀 다른 결의 이야기가 펼쳐져서 깜짝 놀랐어요. 좌충우돌한 한바탕 소동극처럼 내용이 전개되는데, 그 모든 게 주인공 '스티브'의 상상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고요. 성형수술 후 옆방에 있는 린디를 만나 저지른 일부터였을까? 아니면 성형수술을 한 지점부터일까? 그것도 아니면 누추한 골방에서 음악을 만들며 지내던 뮤지션 스티브로서의 삶 전체가 상상인 건 아닐까? 싶었어요.
이 소설을 보면서 떠오른 곡은 AKMU의 'HAPPENING'이에요. 악뮤의 이 노래는 곡 전체가 일종의 반어법 같아요. 우리의 만남은 일종의 해프닝이고, 우린 그렇게 진지한 건 아니고, 다음에 만나면 그냥 모른 척 하자 라는 식의 가사를 가지고 있는데요. 사실 이게 엄청 많이 사랑했고 엄청 진지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저는 《녹턴》의 스티브가 린디에게 하는 말처럼 이 노래를 들었어요. 소설 속 두 사람은 물론 로맨스 구도로 그려지지는 않는데요. 그럼에도 그보다 더하다면 더한 만남이 그들 사이에 이루어진 것 같아요. 로맨스만큼의 스릴 있는 사건을 함께 경험한 사이라는 점에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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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PPENING' MV
김호경 그리고, 이 뮤직비디오에 '해피 엔딩(HAPPY ENDING)'이라는 전광판 중 일부가 고장나서, '해프닝(HAPPY ENDING)'으로만 불이 들어오도록 연출 된 장면이 있거든요. 《녹턴》의 스티브는 본인의 해피 엔딩을 바라면서 끝을 향해 가지만, 과연 이것이 그에게 정말 해피 엔딩일지 해프닝일지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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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ㅇ 저는 《녹턴》의 스티브가 '음악가로서의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는 여정을 지나친다는 점에 집중해서, 뱀뱀의 'Who Are You'를 골랐습니다. 이 곡은 갓세븐 뱀뱀의 솔로 2집 앨범 선공개곡인데요. 아이돌이 팀으로만 활동하다가 솔로 앨범을 내면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고들 하잖아요. 팀의 색깔과 솔로로서의 색깔은 달라야 하고, 자신이 더 음악적으로 하고 싶었던 걸 선보이게 되죠. 'Who Are You'라는 제목은 뱀뱀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고 가사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자신에게는 아직 다 보여주지 못한 잠재력이 있고, 그게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라는 것인데요. 피쳐링으로 참여한 레드벨벳 슬기가 뱀뱀과 두가지 자아를 표현해내요. 앨범 커버부터 잘 드러나있죠.
그런데 제가 정말 의외였던 건, 이런 설정대로라면 또 다른 남성 아티스트를 찾는 게 쉽지 않았을까 싶은데 성별이 다른 레드벨벳 슬기와 협업을 했다는 거예요. 뮤직비디오를 보면 두 사람이 맨발로 퍼포먼스를 하는데 두 개였던 자아가 하나로 포개졌다가 다시 흩어지는 식의 표현을 너무 잘 해놓았어요. 전반적인 안무 스타일은 현대 무용에 가까운데, 두 가지 자아를 연출한 뮤직비디오도 무척 감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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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 시간: 1시간 12분
지금까지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에서 누적 약 50곡의 케이팝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이렇게 목록이 마구 길어지는 또 하나의 플레이리스트가 생겨버린 오늘날. 저는, 우리는 어떤 감상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플레이리스트'의 저자이자, 스트리밍 시대에 음악 주변에서 다양한 커리어를 거쳐오신 김호경 작가님을 모시고 음악 감상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그러나 너무 '플레이리스트' 이야기를 열심히 나누다보니, 소설 이야기는 아주 조금 곁들여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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