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일본 드라마로서 일본어의 장점이나 일본어의 재미, 어떻게 보면 잔혹함 같은 것을 쓰고 싶기 때문에 전혀 해외 같은 것에 흥미가 없다. 외국에서 방송이 된다고 해도 엄청 기쁘다던가 그런 건 없다. 일본인이나 일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봐줬으면 한다.”
- “일본어가 아니면 연결되지 않는 것을 사용하고 있다. 같은 말이지만 다른 의미로 쓴다든가, 사람마다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말이라든가. 그건 일본어가 아니면 의미가 없어서, 만약 해외에서 번역되어 나온다면 이 의미는 해외인에게는 전달되지 않는구나라는 슬픔이 있을 정도다.”
<사일런트> 관련 한 인터뷰에서 우부카타 미쿠 작가가 같은 말이지만 다른 의미로 쓰이는 일본어의 동음이의어를 외국인 시청자는 (일본어를 모국어로 쓰는 시청자와 달리)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인데요. 그런데, <사일런트>는 관계와 소통에 있어서 언어가 장벽이 될 수는 없다는 주제를 그리고 있는 드라마거든요. 이런 메시지를 담은 각본을 써놓고서 그런 발언을 하니 드라마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시청자들이 깊이 실망을 하게 된 거예요. 작가가 일본어만을 고집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드라마 제목이 <Silent>에요. 제목이 일본어가 아니고 영어잖아요.
이 뿐 아니라, 이 드라마의 에피소드별 엔딩마다 흐르는 OST가 오피셜 히게단디즘(Official髭男dism)의 ‘subtitle’인데요. 이게 ‘자막’이라는 뜻이잖아요. 자막으로 일본 드라마를 보는 우리는 황당해지집니다. 이렇게, 우부카타 미쿠 작가가 드라마에서 전하는 메시지와 드라마 바깥에서 말하고 있는 바가 전부 맞지 않은 탓에 부정적인 여론이 일었습니다. 작가의 인터뷰 직후, <사일런트>를 그만 보겠다고 한 사람들도 있었고요.
물론, 작가의 일본어 고유의 동음이의어에 대한 사랑은 서로 다른 입장에 있었던 사람들을 절묘하게 포개는 <바다의 시작> 연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입니다. 나츠가 미즈키와 연인 사이일 때 바다에 놀러가서 찍은 영상을 보면 미즈키가 “바다가 제일 좋아, 바다야 사랑해”라고 외치는 장면이 있어요. 그런데 바다가 일본어로 ‘우미(うみ)'이고, 이후 자신의 딸 이름을 ‘우미’로 지은 걸 알 수 있죠. 8년 후에 보니, 자기 딸을 향해 제일 좋아, 사랑해라고 외친 거라는 걸 알 수 있게 돼요.
마찬가지로, 죽은 미즈키의 스마트폰에 생전에 찍어뒀던 영상이 남아있는데요. 그 영상에는 미즈키가 우미에게 “엄마는 추운 게 싫어. 엄마는 여름이 제일 좋아.” 라고 대화하는 장면이 남아 있어요. 근데 일본어로 여름이 ‘나츠(なつ)’ 거든요. 시간이 지난 후에 보니, 이게 계절에 대한 선호 뿐 아니라 전 남자친구이자 우미의 아빠를 향한 말이라는 걸 알 수 있죠. 드라마 초반부에 아빠와 딸인 나츠와 우미가 각자 가지고 있던 영상을 서로에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러면서 몰랐던 엄마의 마음, 몰랐던 전 여자친구의 마음을 알게 되는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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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시작>(2024)의 주요 포인트
미화리 이 드라마에서 임신을 다루는 방식이 좋았어요. 나츠의 전 여자친구인 미즈키, 현 여자친구인 야요이는 모두 결혼 전에 임신을 경험하는데요. 이 둘을 상반되게 그린달까요. 임신을 하는 것도, 아이를 낳는 것도, 아니면 중절을 선택하는 것도 모두 여성의 몫이지만 여성들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고, 그 중에는 아이를 낳고 싶어도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여성도 있잖아요. 미즈키는 처음에 절대로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고 하다가 생각을 바꾸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의 생부인) 나츠가 결정적인 역할은 하는 건 아니예요. 미즈키의 부모님이 난임 문제로 미즈키를 아주 어렵게 가졌음을 알 수 있는데, 그래서 미즈키에게 ‘그게 아니라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선택지도 있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들면 우리가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하는 거죠. 그렇게 말해주는 부모를 가졌기 때문에 미즈키는 결국 아이를 낳아서 키워보겠다는 결정을 했던 것 같아요.
반면에 야요이는 아이를 낳고 싶었지만, 당시 남자친구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자마자 ‘그래서 수술은 언제 할 거야?’라는 말은 듣게 되죠. 야요이의 엄마 또한 육아를 도와줄 여력이 없는 것 처럼 말하고요. 그런 말들을 들으면서 야요이는 결국 출산을 포기하게 되요. 그게 야요이에게 굉장히 큰 상처이자 죄책감으로 남아 있고요. 그런데 현 남자친구인 나츠가 전 여자친구와의 사이에서 딸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가 알았는데도, 바로 아빠로서의 책임감이 생기는 걸 바라보면서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ㅎㅇ 임신 중절 수술을 하고난 후 야요이가 병원에 있는 방명록에 긴 편지를 쓰는 장면이 있어요. 이건 중절 수술을 할지 말지 고민하면서 혼란에 빠진 분들에게 최소한 자신같은 기분은 안 느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쓰는 편지인데요. 수신인이 없고, 누구나 열어볼 수 있는 편지는 이렇게 마무리 됩니다.
“너무 남을 먼저 생각하지 마시고, 눈치가 빠른 사람인 척 연기하지 마시고, 다소 치사하게 느껴지더라도 직접 결정하세요. 어느쪽을 선택하든 당신의 행복을 위한 선택입니다.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바다의 시작>
이 편지를 누가 보게 될까요? 아이를 지울 결심으로 병원에 온 미즈키가 보게 됩니다. 그 방명록을 우연히 펼쳐봐서 읽게 되고 마음이 바뀌게 되요. 낳아서 키워야 겠구나. 이 편지는 이후 드라마 속에서 또 기가 막힌 방식으로 활용되는 걸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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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트>(2022)의 주요 포인트
ㅎㅇ 기존에는 태어날 때부터 청각 장애를 가지게 된 인물들이 헤쳐나가야 되는 세상의 차가움, 소통의 단절됨을 다루었다면, <사일런트>는 중도실청인 캐릭터가 메인이니까 보는 내내 다각도로 오해가 깨진다고 해야 할까요?
미화리 맞아요. 중도실청인을 다룰 때, 소리가 들리다가 안 들리는 상태라서 그걸 슬프게만 표현할 수도 있거든요. 그걸 잡아주는 요인이 바로 ‘수어’입니다. 청력을 잃은 직후의 사쿠라는 인연을 다 끊어버리는 선택을 내리잖아요. 여자친구였던 아오바에게도 사실을 말하는 대신 “나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어”라며 문자로 이별을 통보하고요. 그런 선택을 했던만큼 갑자기 소리를 듣지 못하는 상태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해요. 그럴 때 사쿠라에게 새로운 언어인 수어를 알려주는 ‘나나’(카호)라는 친구가 생기는데요. 나나가 사쿠라에게 해주는 다음 대사가 균형을 잡아줬다고 생각해요.
“난 태어날 때부터 못 들었어. 소리가 사라진다는 건 슬픈 일일지도 모르지만 소리가 없는 세상은 슬픈 세상이 아니야. 난 태어날 때부터 항상 슬프진 않았어. 슬픈 일도 있었지만 기쁜 일도 정말 많아. 그건 청인도 농인도 똑같아. 그리고 너도 똑같아.” -<사일런트>
ㅎㅇ 이 대사가 표현되는 방식이 필담이잖아요. 저는 <사일런트>에서 좋았던 게, 두 사람이 소통을 할 때 누군가가 공책에 글자를 쓰는 필담의 시간, 스마트폰에 텍스트를 입력하는 시간, 음성 언어가 앱으로 번역되는 기다림의 시간을 다 보여준다는 거였어요. 그것 때문에 호흡이 느리고, 답답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이 과정들을 빨리 감기 해서 볼 수는 없어요. 메시지를 상대에게 전달하기 전에 쓰고, 입력하고, 변환하는 시간까지가 모두 소통이니까요.
미화리 인물들이 수어를 하고, 필담을 나누는 씬의 호흡이 굉장히 길고, 그걸 지긋이 보여주는 게 배려있는 연출로 느껴졌어요. 개인적으로는 이 드라마에서 수어를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요. 배우들이 수어를 할 때 음악이나 효과음, 생활 소음 같은 것들 없이 엠비언스만 조금 들리게 하는 식으로 수어에만 집중하는 연출이 돋보였죠.
📻 "바다의 시작 vs 사일런트, 답답하거나 아름답거나 꿈에 나오는 메구로 렌" 풀버전은 여기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