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8 - 2024.11.03 안녕하세요. ㅎㅇ입니다. 2024년 11월부터는 매주 월요일 주 1회씩 콘텐츠 로그를 보내드립니다. 2019년 1호 발행부터의 유산을 이어가면서도 약간의 변화를 주었기 때문에 개편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왜 이런 변화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다음주 월요일에 더 자세히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이번호를 다 읽고나서 자유롭게 피드백을 보내주셔도 좋습니다. 😌
01. SNL '2024 Pre-Election Cold Open'
"우리도 이런 웃음을 주고 받을 수는 없는 걸까?"
02. 다큐멘터리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현생 보다 더 복잡한 만남과 오해와 조력과 갈등이 펼쳐지는 게임 속 세계"
03. 블랙핑크 'So Hot'
“주기적으로 봐줘야되는 자기소개”
04. 마이클 핀클 《예술 도둑》
"왜 훔쳤는가? 아니, 왜 훔치기를 멈출 수 없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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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SNL: 2024 Pre-Election Cold Open
#2024미국대선 #코미디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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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5일(현지시간) 2024 미국 대선이 실시 된다. D-1 기준으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7개 경합주가 여전히 치열한 경쟁 상태에 있어서 모든 걸 뚜껑을 열어봐야만 알 수 있다고 하는 중이며 뉴스를 보는 나는 꽤나 긴장상태에 있다.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하호호 웃을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다. 유서 깊은 코미디쇼 SNL(Saturday Night Live)은 그간 카밀라 해리스와 도널드 트럼프 양측 후보를 꾸준히 풍자해왔다. 대선을 앞둔 마지막 토요일 밤의 에피소드에서도 역시, 그들은 정치 이야기를 (기계적 중립 대신) 정치적으로 하기로 선택했다.
현재 경합주 중 하나인 펜실베니아로 선거 캠페인을 나가기 전, SNL의 가짜-카밀라 해리스는 “내 입장이 되어 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어봤으면 좋겠어”라며 거울을 바라보는데, 마주한 거울에 진짜 카밀라 해리스가 등장한다. 6분 4초부터 이들이 나누는 짧은 대화는 손바닥(Palm-al), 새엄마(new step-mamala), 영화 <금발이 너무해>(Legally Blonde-ala),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Rom-Kamala)처럼 대개 카밀라 해리스(Kamala Harris)의 이름을 활용한 언어유희로 채워져 있다. 유튜브에서 우리말로 자동번역 된 자막을 볼 수 있지만, 언어유희의 참맛을 감지하려면 먼저 원문을 그냥 들어보는 쪽을 추천한다.
이번 에피소드 말고도, 10월 13일 SNL 에피소드와 10월 20일 에피소드를 보면 코미디언이자 배우인 마야 루돌프가 얼마나 카밀라 해리스 고유의 목소리 톤과 피치를 잘 묘사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도 뉴진스 하니와 한강 소설가를 조롱하거나 <정년이>를 성적으로 희화화하지 말고, 이런 웃음을 서로 주고 받을 수는 없는 걸까?
02.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WoW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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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에세이스트이자 회고록 작가 비비언 고닉은 어느 날 조문객으로 참여한 장례식에서 인상적인 추도사를 듣게 된다. 고인을 기리는 그 추도사는 장례식의 분위기에 깊이를 더할 뿐만 아니라 그의 심장을 꿰뚫었을 정도였는데, 다음 날 비비언 고닉은 이런 깨달음을 얻는다. “여기서 이야기는 연사나 고인 자체가 아니었다. 두 사람이 함께할 때 그들 각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것이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에도 정확히 이러한 작동 방식으로 인상적인 추도사가 등장한다. 고인은 선천적으로 근육이 위축되는 질병으로 인해 20대에 요절한 ‘마츠’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약 8년간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의 게이머로 살았다. 휠체어에 앉아 모든 인간 관계를 스스로 단절시키며 고립되어가는 현실의 자신과는 달리, 마츠는 게임 속에서 아바타 '이벨린'을 만들어 건장한 몸으로, 두 발로 하루 30분동안 산책을 하며, 자신감 넘치고 때로는 사려 깊은 태도로 상대에게 조언을 건넨다.
이 다큐멘터리는 부모님이 온라인 공간에 아들의 부고를 전한 후, 곧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이벨린이 얼마나 우리의 소중한 친구였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받으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WoW는 누구에게나 “우리가 되고 싶은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곳”이었지만 동시에 그곳은 현생 보다도 더 복잡한 만남과 오해와 조력과 갈등이 펼쳐지는 장이기도 했다. 이블린이 생전에 WoW에서 다른 유저들과 주고 받은 채팅, 그리고 실제로 그곳에서 만났던 다른 유저들과의 인터뷰에 기반한 이 다큐멘터리는 게임 캐릭터 속 얼굴에서 우수에 젖은 눈빛을, 때로는 진실을 숨기는 듯한 표정을 보여준다. 그걸 모두 진짜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 2024 선댄스 영화제 월드시네마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서 감독상과 관객상을 수상한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이 가진 마법같은 힘이다.
* 비비언 고닉 《상황과 이야기》(마농지, 2023)
03.
블랙핑크 'So Hot'
#커버무대 #케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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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아이돌부터 5세대 아이돌까지 좋아하다보면, 분기별 음악방송 특집이나 연말시상식에서 온갖 커버 무대를 보게 된다. 지금껏 얼마나 많은 여자 아이돌이 커버하는 ‘성인식’, 남자 아이돌이 커버하는 ‘We are the furture’를 보았던가. 물론, 여자 아이돌과 남자 아이돌이 합동으로 꾸리는 ‘Honey’ 커버 무대는 셀 수도 없다. 그만. 가요계는 제발 SBN들 히트곡의 기계적인 재현을 멈추어달라. 그렇다고해서 모든 커버곡의 자격요건이 원곡의 아우라를 능가하는 데에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누가 이 곡을 커버하고 있는지 그 색깔이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거다. 그래야만 원곡과 커버곡을 비교하는 관성을 버리고, 원곡은 원곡대로 커버곡은 커버곡대로 즐길 수 있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다들 블랙핑크가 원더걸스 노래를 커버했던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로제 ‘APT’, 제니 ‘Mantra’, 리사 ‘ROCKSTAR’까지 블랙핑크 멤버들이 연달아 “BLACKPINK in your area”를 증명하고 있는 지금, 나는 오랜만에 이 무대를 떠올린다. 2017년은 블랙핑크의 역대 발표곡이 ‘휘파람’, ‘붐바야’, ‘불장난’, ‘STAY’, ‘마지막처럼’까지 고작 다섯 곡 밖에 없었을 때로, 당시 이들은 데뷔한지 갓 2년차에 접어든 신인이었다. 이 커버곡 영상에 달린 베스트 댓글은 “주기적으로 봐줘야되는 자기소개”인데, 모두가 그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 지금 다시 이렇게 당당한 자기소개를 보는 일이 짜릿하게 느껴진다.
04.
예술 도둑
#예술품-절도 #논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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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힘
이 책의 최고 반전 문장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겁니다”이다. 20세기 후반부터 몇 해간 유럽의 각종 박물관과 성당과 골동품샵을 털어 200회 이상의 절도를 실행해 300점 이상의 예술 작품을 훔친 프랑스의 전설적인 도둑 ‘스테판 브라이트비저’이 한 말이다. 그의 생애는 일찍이 대필작가에 의해 쓰여진 책 《Confessions of an Art Thief(미술 절도범의 고백)》으로 2006년에 출간됐다. 이후 같은 내용을 다큐멘터리화 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여러 논의 끝에 없던 일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저널리스트 마이클 핀클이 약 10년간 그의 행적을 탐구하고 주변 인물을 인터뷰한 끝에 논픽션 《예술 도둑》을 출간 했다.
믿기 어려운 실화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을 때, 이 저널리스트가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하고자 했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무엇보다도 희대의 도둑이라는 매혹적인 소재에 압도되지 않을만큼 마이클 핀클은 글을 잘 쓴다. 마이클 핀클은 ‘그 도둑은 왜 훔쳤는가? 아니, 왜 훔치기를 멈출 수 없었는가?’를 집요하게 파고 든다. 여기서 수집광의 사고 방식, 아름다움을 대하는 태도, 유년기의 트라우마 같은 테마들이 와르르 쏟아져나온다. 그러니 적당한 선에서 멈출 수 있었더마면 좋았을 것이다. 브라이트비저는 너무 자주 미술관에 간 덕분에 예술에 대한 식견이 높은데, 너무 자주 미술관에서 예술작품을 훔친 바람에 보안에 관한 지식 수준 또한 높은 사람이 되었다. 모든 경지가 최고조에 오른 그는 자신이 내뱉은 말처럼, 여생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도 있었던 것이다.
며칠 전, 싱어송라이터 캐롤라인 폴라첵의 유튜브 공식 계정에는 그가 오랑주리 미술관에 걸린 모네의 ‘수련’ 앞에서 라디오헤드의 'True Love Waits'를 부르는 영상이 올라왔다. 그러니까, 100년도 더 넘는 시간동안 아름다움을 유지한 존재 앞에 선 동시대의 어떤 인간은 그 아름다움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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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독립영화제(11/28~12/6)가 올 해로 50회를 맞이한다.
눈에 띄는 영화가 두 편 있다. (1) <백현진쑈 문명의 끝>은 작년에 본 공연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백현진쑈: 공개방송>(Sync Next 23)’의 실황 기록 영상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싱어송라이터, 음악 프로듀서, 음향 엔지니어, 화가, 설치 미술가, 비디오 아티스트, 퍼포먼스 아티스트, 배우, 시인, 연출가인 그를 스크린으로나마 만나보길 바란다. (2)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는 “어려서부터 메릴 스트립을 보며 여성 영화인을 꿈꿨던 팬이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페미니스트 영화인으로서 메릴 스트립에게 대화를 청할 것”이라는 박효선 감독의 포부로 시작된 작품이다. 영화의 초기 기획은 2019년에 공개된 바 있으나, 팬데믹과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드디어 오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이게 된다.
<월레스와 그로밋> 시리즈는 유년기의 내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콘텐츠 중 하나인데, 몇 해 전 제작에 필요한 클레이(찰흙, 지점토) 재고가 없어서 영화를 그만 찍을 수도 있다는 선언을 한 바 있지만 결국 19년만에 차기작으로 돌아오면서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2025년 1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독특하게도 왓챠피디아에서 예상평점이 3.5점 이상인 사람들만 입장할 수 있는 ‘제1회 왓챠 블라인드 시사회’를 통해 첫 공개된 영화다. “영화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오직, 내 예상 별점만 믿고 감상하는”이라는 소개글이 알고리즘 시대의 드문 순기능을 보여주는 이벤트를 만들어낸 것 같다. 11월 13일에 극장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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