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30 - 2025.01.05 안녕하세요. ㅎㅇ입니다. 아직까지는 크게 좋은 일이 없는 2025년이 시작 되었는데요. 이번주부터 서울 및 수도권은 최저온도 영하 -12도에 접어드는 본격 한파로 접어듭니다. 수족냉증 사람으로서 지금도 무척 손이 시리는 중입니다. 이번호에는 드라마 한 편, 책 한 권, 리포트 하나, 기고글 하나를 균형 있게 가져왔습니다. 이번주 저의 계획은 SMTOWN LIVE 30주년 기념 콘서트와 영화 <러브레터> 30주년 기념 극장 재개봉을 기리는 것입니다. 한국의 케이팝 엔터사와 일본의 대표 겨울 영화의 역사가 동일하다니 어쩐지 믿을 수가 없네요.
아 참, 앞으로는 레터 제목을 연도-주차로 변경하여 보내드리려고 해요. 올해는 휴간을 가급적 덜 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중간중간 숫자에 구멍을 내기는 싫을 것 같으니까요...) 그럼 이번호를 시작합니다.
01. MBC 드라마 <지금 거신 전화는>
02. 김인정 <고통 구경하는 사회>
03. 밀리 독서 연구소 <독서 트렌드 리포트 2024>
04. #기고 '숏폼'과 '요리 예능'의 유행은 계속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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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지금 거신 전화는
#MBC #12부작드라마 #로맨스릴러 #집착광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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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연예인을 보기 위해 플랜카드와 대포카메라를 들고 달려드는 팬들 틈을 걷다가 하필 보도블럭에 힐이 끼어 넘어질 뻔한 여자(장규리)를 거의 540도 빙 돌아 구해주는 남자(허남준)가 있다. 어디선가 나타난 일시적 왕자님. 2024년에 공중파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지금 거신 전화는>에서? 그런데 몰려드는 팬들을 우습게 여기는 듯한 남주를 향한 여주의 답변이 온전히 2024년 버전이라면? 오케이 일단 조금만 더 보기로 한다. “잠깐만요. 덕질이 민폐요? 유난이라고요?”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둔 MBC 드라마 <지금 거신 전화는>은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먹는 한드 시청자들에게도 영점 조절의 시간을 요한다. 최연소 대통령실 대변인으로서 안정적인 목소리 톤과 딕션을 보유한 백사언(유연석)은 이미 캐릭터 이름 세글자부터 너무나 ‘웹소설적’이다. 정략 결혼한 그의 아내 홍희주(채수빈)의 납치범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백사언은 모든 게 귀찮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한다. “시체가 나오거든 그때 연락해.” 차기 대선 주자의 아들과 보수 언론사 회장의 딸이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 부부가 마치 ‘한남더힐’처럼 실거래가 100억은 가뿐히 넘길 듯한 넓고 말끔한 주거지에서 굳이 각방을 쓰다가 공용 공간에서 마주친 상대를 향해 “너랑 나 사이에 ‘감정’ 섞지마”라고 말하는 장면 또한 역시 ‘웹소설적’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느낌적인 느낌에 속하던 웹소설스러움은 완성형 ‘집착광공’이 되어 다음 대사를 천연덕스럽게 소화해내는 유연석 배우에 의해 정점을 찍는다. “알려줘, 홍희주. 널 미워할 수 있는 방법. 널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 여기까지 보았다면 영점 조절은 끝난 것이다. 말을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기를 스스로 선택한 결과, 수어 통역사로 살아가던 홍희주가 ‘대통령실 전담 수어 통역사’가 되어 백사언의 일터에 입장하는 건 과한 설정이 아니다. 한 쪽은 목소리로, 다른 한 쪽은 스마트폰 메모장으로 늘상 격양된 소통을 해오던 두 사람은 어느덧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수어로 사랑의 은어를 주고 받는다. 걷잡을 수 없는 로맨스가 시작 된다.
02.
고통 구경하는 사회
#논픽션 #저널리스트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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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일북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건 사고 현장을 실시간으로 전하는 ‘고통의 전달자’들은 고통을 더 효과적으로 알리고 있을까? 아니면 우리 사회에 더 많은 구경꾼을 양산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는 것 뿐일까? 광주MBC 사회부 기자 출신이자, <The Nation>, <CNN> 등을 외신을 통해 한국의 참사와 학살을 보도했고, 현재는 미국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는 김인정은 <고통 구경하는 사회>의 논의를 이 물음표에서 출발한다. 실시간으로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 현장을 접할 수 있는 온라인이 있어서 다행스럽지만, 동시에 온라인을 매개로 정치에 활발히 참여하면서 남 모를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은 이 책에서 빠르게 답을 얻을 수 있다. “본 뒤에 무엇을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전달과 전달, 중개와 중개를 통해 유예되어 버린 행동의 가능성이 당신에게 있으니까.”(p.36) 그렇지만, 빠른 앎이 언제나 신속한 행동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굼뜨고, 요령이 넘치는 편이기 때문이다.
올해의 첫 주말, 한남동의 대통령 관저 앞에서 벌어진 집회에 갔다가 시민 수십 명의 자유 발언을 들었다. 단상에 오른 사람의 자기 소개, 그가 주어진 3분의 시간동안 집중하고자 하는 주제를 파악하는동안 나는 주로 ‘듣는 데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곱씹었다. 그건 <고통 구경하는 사회> 속 이 구절을 마음에 품고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많은 경우 언어와 기술, 자원은 동등하게 주어져있지 않다. 자신의 고통을 더 잘 말할 수 있는 계층과 계급, 무리가 정해져 있게 마련이다. 고통을 잘 말한다는 건 그러니, 때로 부족한 자원을 두고 벌이는 각축전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는 방법론이 되기도 한다.”(p.223) 자신의 고통을 더 잘 말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서, 공평한 경청을 거듭 시도하는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03.
독서 트렌드 리포트 2024
#밀리의서재 #전자책 #Reading_is_Se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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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리의 서재
전자책 구독 서비스 ‘밀리의 서재’에서 ‘독서 트렌드 리포트 2024’를 발행했다. 점점 성장하는 국내 전자책 시장, 그 중에서도 자사 서비스를 이용한 독자 데이터를 토대로 매해 트렌드 리포트를 발행하고 있는데, 2024년 기준으로 밀리의 서재 누적 가입자 수가 835만 명이라고 하니 모수가 커서 리포트의 신뢰성도 커진 게 사실이다. (그리고 밀리의 서재는 이 점을 초반부터 적극 자랑한다.) <밀리의 서재> 콘텐츠 기획팀 팀원 ‘Louise’는 2024년을 이렇게 요약한다. “올해는 좀 신기한 해였어요. 연초에 성인 연간 독서율이 낮다는 통계가 발표되면서 조금 심란했는데요. 이 통계에 반박이라도 하는 듯 서울국제도서전에 역대 최다 인파가 몰렸다고 하고, SNS에서 ‘텍스트힙’, ‘Reading is sexy’와 같이 젊은 층들의 독서 문화가 계속 확산되기도 했죠.”
다음은 올해의 리포트에서 눈에 띄었던 것들이다.
- 2024년 10월에는 ‘한강’ 작가가 밀리의 서재 내에서 무려 30만 건 넘게 검색되며 역대 최다 검색량을 기록했다. (그런데 밀리의 서재에서 열람할 수 있는 한강 작가 전자책이 없다는 슬픈 사실…)
- 지난 해 밀리는 독서 팟캐스트 <리딩 케미스트리>를 런칭했다. 이다혜 작가가 호스트를 맡았고, 고정 패널로는 황석희 번역가, 김신지 작가, 게스트로는 정유정, 천선란, 김호연, 심채경 작가 등이 출연했다. 밀리는 앞으로도 다양한 오디오 콘텐츠를 선보일 계획이다.
- 밀리는 자체 출판 브랜드 ‘오리지널스’를 2023년 하반기부터 운영중이다. 토스 유튜브 채널 <머니그라피>의 인기 코너 'B주류경제학'을 단행본으로 엮은 <B주류경제학>은 밀리의 5번째 종이책이다. 밀리에서 선 연재 후 오리지널스에서 출간 된 사례다.
- 밀리에서 선 연재 되었던 <장류진 에세이(가제)>는 올해 2월 중 종이책으로 출간 예정이다. 장류진 작가가 “교환학생으로 떠났던 핀란드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15년 만에 다시 핀란드로 떠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밀리에서는 이 책을 오디오북, 챗북(대화 형식으로 책 전문을 각색하여 제공), 오브제북(이미지와 음악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콘텐츠) 등으로 동시 공개 준비중이다.
- 밀리의 서재 독서 트렌드 리포트 팀이 기대하는 2025 트렌드는 ‘반려독서’다. 반려인, 반려동물처럼 책이 인생의 동반자가 되는 새로운 독서 문화를 꿈꾼다.
04.
'숏폼'과 '요리 예능'의 유행은 계속 될까?
#코스모폴리탄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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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ㅎㅇ
<코스모폴리탄> 2025년 1월호의 ‘살아남거나? 사라지거나!’에서 각종 트렌드와 라이프스타일의 존폐를 점쳐보는 기사를 꾸렸다. 2024년을 주름 잡은 텍스트힙, 숏폼, 갓생, MBTI, 요리 예능, 챗GPT, 레트로…. 그 중 나는 '숏폼'과 '요리 예능'의 미래를 내다보았다.
<숏폼> MAYBE!(전망 보류)
옥스퍼드대 영어 사전을 출판하는 옥스퍼드 편집부가 2024 올해의 단어로 ‘뇌 썩음(brain rot)’을 선정했다. 편집부에 따른 사전적 정의는 ‘사소하고 의미 없는 자료, 특히 최근에는 온라인 콘텐츠를 과잉 소비하면서 개인의 정신 또는 지적 상태가 악화되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정신을 보다 더 맑은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인터넷에 덜 접속하라는 요구는 이제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느껴진다. 동시대의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중 아무도 그런 경험을 성공적으로 해낸 적이 없으면서 서로에게 공허한 희망을 전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디지털 디톡스 전격 도입 또는 스마트폰을 꺼두고 진짜 책 한 권 읽는 시간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사례를 모은 것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데에 더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온라인 세상에 접속해 있는 와중에 뇌의 신선도가 걱정된다면, 계속해서 귀여운 동물 영상, 가장 빛나는 순간을 응집한 아이돌의 킬링 파트 숏츠, 얼마 전 릴스 만들기에 도전한 내 지인의 다소 매가리 없는 내레이션이 곁들여진 릴스를 보시길. 그것은 언제나 롱폼으로 된 가짜 뉴스 한 편을 읽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요리 예능> YES!(유행 지속 예감)
한때는 ‘냉털’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프로 자취러로서의 바로미터가 됐다. 시든 재료를 버릴 때만큼 가구주로서 초심이 초라해지는 순간은 없으므로. 냉털이 우리 모두의 숙제처럼 느껴졌던 시기에는 뭐가 들어 있을지 모를 게스트의 육중한 냉장고 속 재료들이 셰프들에게 토스돼 약 15분 만에 먹을 만한 한 상으로 탈바꿈되는 걸 보는 쾌감이 있었다. 그 사이 우리는 다종 분화된 밀키트와 신속한 배달 음식이 가져다주는 편의에 녹아들었으나, 지난 12월 <냉장고를 부탁해 since 2014>가 돌연 부활한 건 팔 할이 <흑백요리사>가 쏘아 올린 요리 예능 붐 덕분이다. 오로지 미각에만 집중하게끔 하는 ‘안대 심사’는 비주얼적으로는 기묘했지만 적어도 이 경연이 공정하게 진행된다는 믿음을 안겨주었다. 탄단지가 고루 균형을 이루는 식단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던 이들은 두부 요리가 27종이나 펼쳐지는 마지막 미션을 보며 혀를 내두르게 됐다. 이 프로그램의 교훈은 다른 아닌 “단백질 섭취는 중요합니다”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스터셰프 코리아>, <한식대첩>, <흑백요리사>까지 이어진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조리 후 깔끔한 뒤처리로 위생적인 주방을 자랑하던 참가자들의 인성과 사생활 논란은 순식간에 도마 위에 올랐다. 그들이 완벽한 한 그릇을 내어놓기 전까지 중간중간 얼마나 자신의 도마를 깔끔하게 세척하는가와는 무관하다는 듯 그런 일들이 자꾸만 벌어져왔던 것이다. 결국 요리도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우리는 여전히 빈 그릇에 ‘무엇’이 담길지보다는 ‘누가’ 주방에서 물과 불을 쓰는지가 더 궁금하다. 약간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안은 채로 요리 예능을 지켜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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