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06 - 2025.01.12 / 나야, 핑크 블러드 안녕하세요. ㅎㅇ입니다. 한주동안 알라딘에서 공개된 '21세기 최고의 책' 리스트를 훑어 보는 것도, <검은 수녀들> 홍보를 하는 송혜교 배우를 쫓아가 보는 것도, 극장에서 본 재개봉작 영화 <러브레터>도 정말 좋았는데요. (마침, 이번호를 마감하고 있는 지금 창 밖에 눈이 오는 게 보이기도 하고요.) 이번호에서는 1월 11일-1월 12일 양일간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SMTOWN LIVE 2025 in seoul> 후기를 전하고자 해요. 저는 11일 공연은 현장에서, 12일 공연은 집에서 온라인으로 관람했는데요. 이틀간의 감상을 버무려서 내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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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TOWN LIVE 2025 in seoul
#H.O.T.부터 #nævis까지 #3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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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M entertainmentㅣNCT 드림, 토니안, 강타
“(제 몸에는) 핑크블러드pink blood가 영원히 흐르고 있고요. 여러분께 헌혈도 가능합니다.”
슈퍼주니어 은혁의 멘트를 듣다가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깨닫게 됐다. 바다의 라이브 무대를 만나고 싶었던 건 단순히 향수 때문이었을까? 데뷔한 지 20년이 넘어가도록 여전히 잘 관리된 한 줌의 오빠들이 불멸의 ‘아이돌성’을 증명하는 걸 지켜보려는 건 의리 비슷한 거였을까? 아니면 라이즈가 커버하는 동방신기의 데뷔곡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나의 내면에서 무슨 화학작용이 일어나는지에 관한 호기심이라도 생겼던 걸까?
답은 하나였다. 그날의 우린 '혈연'이라서 모인 거였다. 양일간의 공연 중 첫날, 고척스카이돔 4층 측면. 어렵게 얻어낸 내 자리의 왼쪽에는 보아 팬이, 오른쪽에는 레드벨벳 팬이 앉아있었다. 초면이지만 8촌 같은, 경조사가 아니고서야 영원히 만날 일 없는 먼 친척 같은 그런 사람들 사이에 앉았다.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나의 이야기다. 이제부터 '우리' 라는 말은 가급적 줄이고 그동안 내가 그들의 자장 안에서 쌓고 또 허물기를 반복한 역사에 기반해서 말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편협하게 돌아볼 때도 됐다. SM타운의 30주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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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M entertainment
이 공연에 출연한 아티스트들은 토크 시간마다 이후에도 다른 SM 선후배동료들의 놀랍고 멋진 무대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점을 반복해서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연의 러닝타임이 5시간 30분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무대를 해도, 영원히 무대가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이건 부분을 놓치면 전체를 볼 수 없도록 기획된, 부분만 본 사람과 전체를 본 사람의 감상이 완전히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공연이었다.
전반적인 구성은 한없이 단조로웠다. 간이 구조물이나 곡 콘셉트에 맞는 소품을 거의 무대에 세우지 못했고, 아티스트는 중앙의 돌출 무대와 메인 무대를 잇는 유일한 길을 부지런히 오가며 유산소 운동을 해야 했다. 여러 아티스트들을 묵직하게 태운 이동식 차량 토롯코는 최소한의 선의라는 듯 엔딩곡이자 그날 공연의 무려 58번째 곡인 ‘빛’에 다다라서야 등장했다. 기나긴 러닝타임에 걸쳐 대형 스크린의 그래픽과 레이저 조명에 의존하는 무대들은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예측 가능해졌고, 아티스트별로 무대의 차별점을 찾아내기란 어려웠다.
애초에 세상의 그 어떤 일에도 5시간반동안 집중해본 적은 없었지만, 공연장에서 집중력이 흐려지는 건 낯선 감각이었다. 흥은 어느 시점에서 타올라야 하는가? 지금? 아니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하나? 그런 질문을 하는동안, 출연팀 각각의 개성을 일부분 깎아내더라도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원활한 흐름으로, 딜레이가 적은, 즉 실무적으로는 큰 무리가 없어보이리라 추측되는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가장 좋았던 건 전곡의 우리말 가사를 대형 스크린에 자막으로 띄워 줬다는 점이다. 모든 아티스트들의 노랫말 속 괄호는 따라불러보면 대개 안전한 응원법의 역할을 해냈다. 중앙 제어 시스템으로 연동된 응원봉의 불빛을 통해 관객은 핑크블러드 혈족 구성원으로서의 몫을 다했다. 지금 빨강이어야 하면 내 덕질색과는 상관 없이 빨강이어야 했고, 지금 펄 네오 샴페인이어야 하면 고분고분히 펄 네오 샴페인이 되어야 했다. 내가 뭔가를 켜고 끌 필요가 없었다. 중앙 제어 시스템이 알아서 다 해줬다.
에스파가 ‘Next Level’이나 ‘Black Mamba’가 아닌 ‘Whiplash’를, 레드벨벳이 ‘Rookie’나 ‘Dumb Dumb’ 대신 ‘Cosmic’을 들고온 건 다분히 의도된 선곡이었다. 30주년을 기념하는 콘서트인만큼 신곡 보다는 발매된지 오래된 곡을 더 많이 배치할 거라는 건 나의 순전한 착각이었다. 추억이 서린 곡은 원곡자가 아니라 대개 다른 아티스트의 재해석을 거쳐야만 무대로 출력될 수 있었다. 세트리스트 상으로는 46번부터 57번까지, 시간상으로는 공연이 시작된 지 4시간 30분이 넘었을 때부터 내 노래를 네가 부르는 리메이크 무대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리메이크 세션이 이 공연에서 최초로 공개된만큼 조금 더 구성을 전반부로 옮기거나, 곳곳에 배분했더라면 더 흥미를 잃지 않고 따라갈 수 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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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A_Official, nctwishofficial
보아가 ‘아시아의 별’이라 호명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았던 나는, 이제 보아의 총괄프로듀싱을 거쳐 데뷔 11개월에 접어든 NCT WISH의 유우시(토쿠노 유우시, 메인댄서, 리드보컬)의 모든 직캠을 챙겨 본다. 얼마 전 '탄핵'이라는 두글자로 선명하게 꾸민 샤팅스타(샤이니 응원봉)의 테이핑을 떼어내기가 귀찮아서, 공연장에는 아별봉(보아 응원봉)을 들고 향했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이번 공연에 대해서는 바라는 것도, 바라지 않는 것도, 어느 것 하나 분명하지 않았다. 다만, 익숙한 듯하지만 생경하고, 새로워 보이지만 아는 맛인, 그 모든 게 거기에 있을 거라는 것만을 알았다.
그렇지만, ‘켄지’ 전용 세션이 꾸려졌다면 이 공연에 좀 더 가산점을 주었을 거다. 켄지가 작사작곡한 수많은 곡들 중 전 세대를 사로잡은 각 아티스트들의 히트곡을 4-5곡 이어 붙였다면 한 눈에는 공통점을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우연히 그 비밀을 알게 된 자가 당장 무대가 아닌 어딘가에 있는 켄지의 이름을 연호하는 그런 즐거운 상상. 혹은 그룹별로 지금까지 단독콘서트에서나 볼 수 있었지만 음악방송에는 한 번도 송출된 적 없었던 ‘숨은 수록곡’ 세션이 펼쳐졌다면 또 어땠을까.
고연차 아티스트들의 토크에서는 헤아릴 수 없는 쓸쓸함, 그러나 곧장 그 쓸쓸함을 감추어버리는 능숙함이 읽혔다. 있었지만 없었던 셈 치고 넘어가야 하는 것들이 수두룩해서, 암전 후에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와도 나는 쉽게 그 노래 속으로 빠져들지 못했다. 이 곡에 얽힌 추억 중 현재 시점에서 살려두어도 괜찮은 조각을 머릿속으로 열심히 발라냈다. 내가 학습한 이 사랑의 문법은 그런 거였다.
간혹 슈퍼주니어의 ‘Sorry Sorry’나 동방신기의 ‘Rising Sun’ 같은 곡들은 다른 누구에 의해 리메이크 되지 않고 원곡자의 실연이 허용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그 노래로 활동할 당시를 기록한 영상이 스크린에 흐를 수는 없는 거였다. 열두명의 멤버로 데뷔했던 팀에서 둘만 등장하고, 다섯이 활동중인 팀에서 넷만 등장할 때면 그간 속속들이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각 그룹별 계약 현황이라든가 제대까지 남은 일자, 또는 가장 최신의 이슈들이 주변 관객들 사이에서 날선 목소리로 중계되곤 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는 SM 3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소중히 다루어 볼 법한 유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노래는 희망을 잃지 않은 군중이 모여있는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지만, SM의 3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는 재생되지 않는다. 'SuperM (백현, 태민, 카이, 태용, 텐, 마크)'이나 'GOT the beat (보아, 태연, 효연, 슬기, 웬디, 카리나, 윈터)' 같은 프로젝트 그룹들은 SM이 만들어 온 견고한 헤리티지에 속하지 못한 채, 한 시절의 기획으로만 남았다. 한편, 이번 공연에서 25인의 남자 연습생들이 웅장한 분위기와 함께 등장해 일단은 몸이 부서져라 춤을 추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던 것이나, 오는 2월에 데뷔할 신인 여자 아이돌 '하츠투하츠 (Hearts2Hearts)'의 VCR을 최초 공개한 건 지난 과오를 수습하지 못한 채 미래로 나아가기로 한 SM의 의지를 보여준다.
잘한 것과 잘하지 못한 것을 차분히 검토하는 일이 지금까지의 케이팝 엔터테인먼트 역사에는 없다. 이렇게 계속 해도 괜찮은 건지 서로 묻고 답하기 좋은 골든 타임이 속절 없이 흘러간다. 그럼에도, 자신의 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울러서 말하면 모든 게 잘못된 건 아니라고 믿게 된다. 이들이 만들어낸 복잡하고 거대한 문화를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하는 바다가 관객들 앞에서 손편지를 낭독하는 시간이 그것을 다시금 확인시켜주었다. 그러니 나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시작 됐고, 이제는 어디에나 있는 것 같은 케이팝을 당분간은 조금 더 좋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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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M entertainmentㅣ윈터, 바다, 카리나
"안녕하세요. 한국 최초의 여성 아이돌 바다입니다. 너무 반갑습니다. 오늘 SM 30주년, 이 의미있는 멋진 콘서트에 와주신 모든 팬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
제가 소녀였던 시절부터 지금 우리 후배들이 소녀인 시절까지 SM 음악과 함께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
저희의 음악은 지나간 유행가가 아니고 꿈 꿀 때, 용기 내고 싶을 때 늘 여러분 곁에 있는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우리 후배들의 음악, SM의 모든 음악이 여러분의 긴 인생의 바다에서 흐르고 또 흐르길 바랍니다.
S.E.S. 리드보컬 바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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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1. “역시 사장님 팬싸는 다르다." SM 30주년 콘서트 후기에 JYP 얘기를 덧붙이는 게 좀 배덕하긴 하지만... 이김에 옆동네도 축하하고 싶다. 지난해 박진영 씨가 솔로 가수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이 영상은 JYP 소속 밴드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이하 엑디즈)의 팬싸에 간 한 팬이 자신의 최애 멤버 준한의 소원이 '박진영 프로듀서님께 마루는 강쥐 밈 시켜보기'라는 걸 알게된 후, 그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직접 박진영 대면 팬싸에 다녀 온 여정을 담은 브이로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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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2. "저희는 서로가 서로의 꿈이었어요." 지난 해 연말, SM 창립 30주년 프로모션의 시동을 걸었던 '출장 십오야xSM' 편. 각 팀에서 대표로 한 사람씩 출연했는데, 썸네일부터 각자의 활동 연차가 표기되어 있는 진기한 장관을 볼 수 있다. 연습생 기간은 제외한 것으로, 그 기간까지 합하면 선후배 족보가 다소 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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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3. "니가 주는 마딛는 우유와 부드러운 니 품 안에서" SM이 다음달에 30주년 기념 앨범 [2025 SMTOWN :THE CULTURE, THE FUTURE]를 발매한다. SM 아티스트들의 역대 히트곡을 원곡자가 아닌 다른 팀이 리메이크 하는데, 이 프로젝트의 선공개곡은 라이즈가 리메이크한 동방신기의 'Hug'(2004)였다. 이 곡의 라이브 무대를 보며 구겨져 있는지도 몰랐던 나의 지난 20년이 활짝 펴지는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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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 wildwan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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