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4 - 2025.03.09 / 제니 'RUBY', 매직필, 영원에 빚을 져서 안녕하세요. ㅎㅇ입니다. 아침에 SNS에 접속하니 '2025 전국 벚꽃 개화 지도'가 보이더라고요. 아마 그보다 먼저 "올해 대한민국은 4월부터 여름이다" 라는 믿고 싶지 않은 뉴스를 보신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경칩이 지난 봄이 왔음을 이렇게 실감해보는데요. 저에게 초봄은 조금 의미심장한 시기입니다. 왜냐하면 언젠가 저에게 이상할 정도로 확실한 에너지가 움텄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예요. 어떤 기획안을 쓰던 날들 말이죠. 2025년 3월 11일, 내일은 그렇게 시작된 <콘텐츠 로그>의 5주년 입니다. 저는 늘 하던대로... 이번호도 시작해보겠습니다! 😵
01. 제니 정규 1집 [Ruby]
02. 요한 하리 <매직필>
03. 예소연 <영원에 빚을 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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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제니 정규 1집 [Ruby]
#it's #JENNIE #JENNIE #JEN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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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umbia Records
내 옷장에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옷들이 여기 다 모여 있구나. 2024년 10월부터 2025년 2월까지 제니 정규 1집을 예고하는 MV들을 보는동안 아마도 나는 이런 생각을 가장 자주 했을 것이다. 신라 시대 여성 리더 원화를 모티브로 한 ‘ZEN’부터 빈티지 체어 카달로그북의 페이지마다 수놓은 인간 모델을 보는 것과도 같은 ‘ExtraL (feat. Doechii)’까지 런웨이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정재형처럼 묻게 되는 것이다. “아니 이게 다 제작비가 얼마야? 제니... 계산기 뚜들긴 거 맞니?"
* 'Mantra' MV, 'ZEN' MV, 'Love Hangover(feat. Dominic Fike)' MV, ‘ExtraL (feat. Doechii)’ MV 순으로 선공개 됐고, 정규 1집 발매와 동시에 'like JENNIE' MV가 공개 됐다. 'Handlebars (feat. Dua Lipa)' MV는 3월 11일 자정 공개를 앞두고 있다. 제니 씨, 도대체 뮤직비디오를 몇 개나 찍은 거예요...?
‘샤넬 앰베서더’라는 얇은 막을 걷어낼 필요는 없었을지 모를 제니의 진가는 이제부터다. 선공개곡이 앨범의 6번~9번까지 나란히 수록 됐는데도 여전히 들을 신곡이 열한곡이나 남아 있기 때문이다(이번 앨범에는 총 15곡이 실려 있다.) 타이틀곡 ‘like JENNIE’에서 이제 그는 누가 “얼말 줘도” 하지 않을 일이 있고, 자신의 가치가 “값을 매길 수 없을만큼 귀중(priceless)” 하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새로운 자기 소개가 필요한 시점에는 차라리 셀프 유죄 판결을 내린다. “그래 난 유죄야(Yes I’m Guilty) 잘난 게 죄니.”
데뷔 10년차 가수의 신보를 들을 때 벌어지는 가장 흥미로운 일은 지난 시간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종류의 목소리가 있음을 발견하는 일이며, 이번 앨범은 정확히 그런 역할을 한다. 자신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드러내기로 작정한 마지막 트랙 ‘twin’은 그가 노랫말의 출발점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데 성공한 게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문제를 겪고 있음을 드러낸다. 제니와 나는 옷장도 다르고, 겪고 있는 문제도 다를테지만, 그래서 나는 난장판이 된 마음을 여기에 포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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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크로스
얼마전 인스타그램에서 간헐적 단식보다 20배는 효과가 좋고 이용자의 재구매율이 80%나 된다는 다이어트 약품 A의 광고를 보았다. 매일 사과 30개를 먹어야 섭취할 수 있는 유기산이 하루에 먹을 이 약 3알에 담겨 있다고 했다. 2주동안 복용할 분량은 29,800원에 판매중이었다. 요한 하리의 고백처럼 “미심쩍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음에도 나는 궁금했다.”
당연히 나는 약이 아니라 음식을 먹고 싶다. 한 끼를 먹더라도 맛있게 먹어야 한다고 믿는데다가 세 끼를 거르지 않는 편인 내게 먹는 일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지난달에 삿포로에 가서 그냥 라멘말고 ‘제철 식재료인 굴을 활용해 프렌치 터치를 더한(?) 라멘’을 줄 서서 먹었고 후식으로 ‘적절한 산미의 후란보워즈 무스를 더한 초콜렛 타르트’를 포크로 천천히 잘라보고는 그 정교한 단층에 감탄하며 ‘영원히 이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내게. 동시에 나는 지난해에 검진을 받았다가 조심하며 신경써야 할 몸의 문제가 있음을 알게된 ‘잠정적 위험군’이고, 당면한 과제는 포만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밥을 먹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본 다이어트 약을 ‘주문하기 직전까지만 호기심을 갖는 정도’ 로 궁금해하는 것이다.
요한 하리의 <매직필>은 이렇듯 음식과 내가 맺는 관계를 되짚어보게 만드는 힘을 가진 책이다. 요한 하리도 자기 얘기부터 오픈하고 시작한다. 자신은 동네 KFC 매장에서 “저희 매장 1등 고객님께” 라고 적힌 카드를 받아본 적이 있다고. 그리고 만나기만하면 ‘뚱뚱한 몸’을 주제로 둘만 아는 농담을 주고 받던 절친한 사람을 먼저 떠나보냈다고.
비포 앤 애프터부터 말하자면, 다이어트 신약을 복용한 첫 6개월간 요한 하리는 9.5kg을 감량했고, 체지방률은 32%에서 22%로 떨어졌다. 그는 이 약을 먹는동안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을 면밀히 살피고, 자신을 아껴주고 걱정하는 지인과 격렬한 말다툼을 하고, 오래도록 버리지 못한 습관이었던 과식이 자신의 인생을 어떤 식으로 도왔는지 뒤늦게 발견하기도 한다. 그 모든 여정이 흥미진진하면서도 괴롭다. 다만, 저자가 ‘비만 치료제가 필요 없는 나라’로 정의내린 일본을 취재하고서 쓴 이 책의 마지막 챕터에는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이 담겨 있어 비판적 읽기가 필요하다. 살을 찌우거나 빼는 문제보다는 ‘더 먹거나 덜 먹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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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영원에 빚을 져서
#예소연 #소설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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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문학
“모든 예술은 전적으로 무용(無用)하다”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 뉴스레터를 보는 분들은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술(이라든가 콘텐츠 같은 것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무슨 쓸모가 있는가? 이것은 소설과 시를 쓰거나 읽는 이들이 마주한 파생 질문이다. 그들이 세월호 이후의 문학은 어떠해야 하는가, 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동안 이태원 참사 이후의 문학은 어떠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그들 앞에 속절 없이 도착해버렸다.
예소연 소설 <영원에 빚을 져서>의 석이는 “참사는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반복될 거야. 이렇게 잊히기만 한다면 말이야.”고 말한다. 잊지 않으면 앞으로는 좋은 일만 일어나는거야? 난 그렇게 석이에게 되묻고 싶지만 답을 알고 있다. 그럴리가 없다. 상실은 반복될 테니까. 이 이야기는 다 큰 어른인 석이가 실종된 상태로 시작 되는데, 대학 시절 그와 캄보디아 봉사활동을 함께 떠났던 동이와 혜란은 사라진 친구 석이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수두룩한 쪽이다. 잃어버린 걸 찾아나가는 추적기라는 장르가 으레 그렇듯 결국 대상을 되찾는가보다 더 중요한 건, 그걸 되찾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이다.
내가 기성 세대가 되었다는 깨달음은 각종 밈을 따라가는 게 힘에 부칠 때가 아니라 모르는 얼굴들에 빚을 졌다는 기분이 들 때 온다. (와 이런 얘기 너무 진부한데! 내 마음은 아직도 22세쯤 된단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영원에 빚을 져서>를 읽으며 지금의 내 나이가 마음에 들었다. 책임감과 부채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더이상 서늘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 그런 감각들과 이전보다 조금은 친밀해졌다는 것이. 이 책을 함께 읽으며 잊지 말고 기억하자고 한 번 더 말해볼 수 있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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