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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13세 소년 ‘제이미’가 동급생 소녀 ‘케이티’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붙잡힌다. 제이미에 의하면 자신은 케이티를 죽이지 않았다. 또한 제이미에 의하면 그들은 얼굴만 알 뿐 친한 사이는 아니었는데, 케이티는 종종 제이미의 인스타그램 포스팅에 댓글을 달았다. <소년의 시간> 1화가 시작되고 44분이 지나서야 제이미와 아빠는 다른 사람들 없이 둘이서만 독대한다. "괜찮아?" 그럴리가. 그렇게 묻는 아빠부터도 전혀 괜찮아보이지 않는다. 제이미의 아빠 에디는 배관공으로 일하는 성실한 노동 계급 가장이며, 경찰서에 와본 게 처음이라 잘못한 게 없는데도 쫄린다. 우리는 곧 경찰서 취조 현장에서 녹음기에 현재 시각을 읊는 ‘베스컴’ 형사를 통해, 아직 오전 7시도 채 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남들은 아직 본격적인 하루를 시작하기 한참 전이지만 제이미네 가족들은 무장한 경찰들이 집문을 부수며 들이닥친 순간부터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2화에서 베스컴 형사는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기 위해 제이미와 케이티가 재학중이었던 학교를 방문한다. 베스컴은 이 학교에 다니는 15세 소년의 학부모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베스컴과 그의 아들이 빈 교실에서 독대 하는데, 그는 아들로부터 자신이 완전히 헛다리를 짚고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인스타그램 봤지? 케이티는 제이미를 ‘인셀’이라고 했어 아빠." 아들의 입에서 고유명사와 알듯말듯한 비유가 쏟아지는 가운데 베스컴의 뇌에는 과부하가 온다. "제이미는 13살이야. 어떻게 비자발적 독신이 돼?" 그래서 죽은 소녀 케이티가 제이미를 괴롭혔다는 걸까? 친구들 사이에서 이 주제로 얘기를 주도 하면서?
여기까지 읽으면서 15세 소년이 쏟아내는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 베스컴 형사가 되어 아득한 기분이 든다면, 잠시만 ‘인셀’ 얘기를 하자. 2019년, <조커>의 극장 개봉 당시 국내 언론이 이런 보도를 한 적이 있다. “현재 미국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집단은 ‘인셀(incel)’입니다. 인셀은 외모나 성격 탓에 이성과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외톨이 남성을 의미하는데요, 자신을 이성으로 받아주지 않는 여성과 사회에 대해 증오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이들에 의한 총기 난사, 차량 돌진 등의 테러가 발생하면서, 북미 지역에서 인셀은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3화가 되면 새로운 어른이 등장한다. 임상 심리학자로 일하는 성인 여성 애리스턴. 그는 자판기에서 뽑은 핫초코 위에 개인 락앤락에 소분해온 마시멜로우를 듬뿍 올려 제이미와의 면담 장소로 향할 정도로 준비성이 철저하고 사려 깊다. 그러나 핫초코를 건네 받은 제이미는 상대에게 “(마시멜로우를 토핑으로 띄우는 거) 안 까먹으셨네요”라는 첫 인사를 건넴으로써, 그들이 이미 이전에도 대화를 나눈 적이 있음을 드러낸다. 재판 전까지 청소년 보호센터에 머무르게 된 제이미와 애리스턴이 나누는 기나긴 대화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무엇이 인셀인가를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에피소드다. 제이미 역할을 맡은 배우 '오웬 쿠퍼'는 <소년의 시간>이 데뷔작이고, 3화에 접어들면서 경이로운 연기를 보여준다. <가디언>에 따르면, “그를 보는 것은 실시간으로 최고 수준의 재능이 등장하는 것을 보는 것”과도 같다. 오웬 쿠퍼 같은 놀라운 아역들은 지구 곳곳에서 계속해서 튀어나온다.
4부작에 회당 평균 50~60분의 러닝타임인 드라마 <소년의 시간>은 모든 에피소드를 원테이크로 촬영했다는 점이 알려지며 공개 즉시 입소문을 탔다. 여러 사람이 릴레이로 하나의 카메라를 주고 받으며 끝까지 촬영을 이어간다는 건데, 보고 있으면 이야기 뒤에 존재할 카메라 스태프들의 고군분투를 자꾸만 잊게 될 정도로 몹시 매끄럽게 촬영 됐다. 아이들이 다닌 학교에서 화재 경보가 오작동하는 장면이 있는데, 원테이크 촬영 방식을 보여주기에 기술적으로 좋은 설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화재 경보가 울리고 아이들이 우르르 대피 장소로 움직일 때 교실부터 운동장까지, 실내부터 실외까지 카메라가 공간을 구석구석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벨이 울렸기 때문에 여기와 저기를 잇는 서사 없이도 다양한 동선을 보여주는 데에 설정상 큰 무리가 없어진다.
동시에, 잘못 울린 화재 경보는 이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에게(청소년기의 소년 소녀 뿐 아니라, 선생님, 보안요원 같은 어른들에게도) 언제든 거대한 비극이 덮쳐올 수 있음을 암시한다. 도대체 누구 때문에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진 걸까? 책임 소재를 찾으려 들면 허탈해질 것이다. 1화의 제이미 아빠 에디, 2화의 베스컴 형사, 3화의 임상 심리학자 애리스턴, 그리고 말하지 않은 4부의 인물들까지. 어떤 어른에게 이입하며 드라마를 보든 결국 우리는 드라마 제목인 ‘소년의 시간’ 앞으로 돌아오게 된다.
🕐 '인셀'이 더 알고 싶어진 분들은 'Everyday Sexism Project'의 설립자 로라 베이츠가 쓴 <인셀 테러>(위즈덤하우스, 2023)을 읽어보시면 좋겠다.
🕥 그런데 <소년의 시간>을 본 직후 내 머릿 속에 떠오른 책은 다른 거였다. (보호자의 젠더를 떠나) 자신의 이해가 오만에 가까웠다는 걸 인정하는 시간을 밀도 있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내게 이 드라마는 수 클리볼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반비, 2016)의 후속작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 'Netflix UK & Ireland'가 말아준 촬영 관련 재미있는 비하인드가 많은데, 그 중 가장 놀라운건 2화의 45분부터 엔딩까지의 촬영에 대한 것이다. 이들은 손에 있던 카메라를 드론에 매달았다. 이 사실을 알고 다시 이 구간을 보면 유일하게 신호등 앞에서만 시야가 기우뚱 하는 것이 느껴진다. 아마 이 때 카메라가 드론에 장착되면서 살짝 흔들림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사실을 알고 보더라도 눈치채지 못할 수 있다. 나도 같은 구간을 여러번 돌려보다가 알게 됐다.
🕠 꼭 드라마를 다 보고나서 비하인드 영상까지 즐겨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