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미 대중음악평론가 님과 나오미 크리처의 소설 <캣피싱>을 읽으며 떠오른 음악들
일러두기 Guide to read
📻 이번 호는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의
2022년 3월 8일자 에피소드 일부를
재가공한 버전입니다.
- YOUTUBE, VIBE 링크를 통해
소개 된 음악들을 함께 들어보세요.
- 별도 페이지로 보시려면, 여기서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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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ㅎㅇ
10일에 한 번씩 뉴스레터 <콘텐츠 로그>를 보내고, 격주로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에서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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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랜선친구는 진정한 친구를 꿈꾸는가"
ㅎㅇ '미디어중독자의 행복한 삶'(《한편 7호: 중독》 수록작)을 보면, 에픽하이와 예미 님의 일상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짜임새 있게 연혁이 정리되어 있어요. 저나 제 주변 사람들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누구를 덕질하기 시작했고 그 땐 이 음악이 타이틀곡이었다' 정도로만 기억을 나누었던 것 같거든요. 그런데, 예미 님의 이번 글은 '에픽하이 앨범 몇 집이 나왔을 때 나는 어떤 삶의 전환기를 맞았다'라는 식으로 상대적으로 짧은 분량 안에서도 마치 대하소설처럼 읽히는 면이 있었습니다.
예미 이 글은 대중음악 소비자가 평론가가 된 과정을 저의 시점에서 풀어본 글인데요. 제가 살면서 가장 열심히 좋아했던 가수인 에픽하이를 중심으로 글이 꾸려지게 됐어요. '중독' 혹은 '몰입'이 직업으로 이어지게 되는 포인트에 대해 쓰고 싶었고요. 그리고 말씀하신 것 처럼, 대하소설 또는 전기처럼 짜임새 있게 얘기할 수 있게끔 희한하게 여러 일이 벌어졌달까요. 저는 에픽하이의 신곡이 나올 즈음 되면, 이제 내 인생이 바빠지겠구나 하고 생각해요. 일종의 징크스 같은 거죠.
① 먼저, ‘BORN HATER' (ft. 빈지노, 버벌진트, B.I, 바비)가 있는 8집 [신발장]이 나왔을 때 제가 중학교 3학년이었거든요. 고등학교 입시 한 달쯤 앞두고 앨범이 나온 거예요. 그 앨범이 엄청 잘 됐잖아요. 잘 된 앨범을 보면서 저까지 힘을 받았고, 가고 싶었던 고등학교에 합격을 했어요. ② 수능 보기 한 달 전에 9집 [We've Done Something Wonderful]이 발표 됐어요. 아침마다 멜론에 들어가서 음원순위를 체크 했던 기억이 있고, 점수와 상관 없이 행복한 수험생활이었습니다. 8집이 중3, 9집이 고3에 나왔으니, 그럼 10집은 취업 준비할 때 즈음 나오려나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어버렸어요. ③ 에픽하이의 10집은 上, 下 두 장으로 나뉘어 발매 되었는데요. [Epik High Is Here 上]이 나왔을 때 즈음 평론가 데뷔 제안을 받았고, 그 사이에 《한편》을 비롯한 글들을 꾸준히 쓰다가, [Epik High Is Here 下]가 나왔을 때 이 팟캐스트로부터 게스트 섭외가 왔던 거예요. 돌이켜보면, 16살부터 24살 사이의 나이대 자체가 원래 한 해도 똑같을 수가 없는 시기인 것 같긴 해요. 우연히 일들이 엮여서 벌어졌다고 생각해요.
ㅎㅇ 우연이라고 하셨지만 듣는 입장에서 정말 신기하기는 하거든요. 굳이 나이대를 특정해 주셔서 말입니다만, 에픽하이 8집이 나왔을 때 중3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때 'BORN HATER'로 세로 버전 MV라는 걸 처음 보게 되면서 '아 에픽하이는 완전 천재 기획자들이야!' 라는 대화를 회사 사람들과 나누었던 기억이 있어요. 2003년 데뷔 후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 팀인만큼, 그들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마다 각자 다양한 시기에 다양한 삶의 우여곡절을 겪어 왔겠구나 싶어요. 그럼, 혹시 에픽하이 8집이 나오기 전의 예미 님은 어떤 생활을 하고 계셨을까요.
예미 많이들 기억해 주시는 'Fly'나 'Fan'이 나왔을 때 저는 10살 이전이었기 때문에, 그 노래들의 감성을 이해할 나이가 아니었고요. 8집을 통해 입문했고, 그 때부터 구체적으로 기억이 시작된 느낌이에요.
ㅎㅇ 저는 에픽하이 음악을 가장 열심히 들었을 때가 'Fan'(4집 [Remapping The Human Soul] 타이틀곡)이 나왔을 때에요. 4집 전후로 단독콘서트도 여러 번 갔었는데, 당시 제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20대 초반이었더라고요. (웃음)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갈 때 너무 많은 생각들이 드는데 그 때 에픽하이의 노래가 가진 특유의 감성과 가사가 많은 위로가 되었던 것 같아요. 아마 많은 분들이 비슷하게 느끼셨을 테고요.
예미 에픽하이를 좋아한다고 한 후로, 저보다 조금 더 사회생활을 오래 한 선배들을 만나게 되거든요. 근데 그분들이 전부 에픽하이더러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는 시기를 함께 한 가수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시기의 청자에게 어필하는 가수가 맞나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ㅎㅇ 그나저나, 저는 에픽하이 4집이 나왔을 때 20대 초반이었다고 말씀을 드렸고, 예미 님은 에픽하이 9집이 나왔을 때 수능 한 달 전이라고 하셨으니까 대충 숫자가 계산이 되는 분들도 있으실 것 같아요. 오늘의 선정 도서와 함께 저희 세대의 차이를 조금씩 느끼며 이야기를 이어가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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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ㅇ 오늘 이야기를 나눌 도서는 나오미 크리처의 장편소설 《캣피싱》(2021, 허블) 입니다. 저한테는 조금 낯선 작가였는데요. 나오미 크리처는 20년 동안 SF 및 판타지 소설을 써왔고,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는 소설집 《고양이 사진 좀 부탁해요》(2020, 리프)가 유일합니다. 오늘 저희가 다룰 책이 두 번째로 국내에 번역된 작품이에요. "현재 미네소타 주에서 고양이 4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고양이 마릿수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작가 소개 란에 써 있어요. 발표한 작품 제목에도 계속 '캣'이 들어가 있는 걸 보니 고양이를 정말 좋아하는 작가 같죠? 애묘인 독자 분들이라면 나오미 크리처라는 이름을 알아두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작품에는 AI가 등장하는데, 특이점은 '인격이 있는 AI'이지 않을까 싶어요. 극 중, 10대 소년인 '스테프'는 전학을 너무 많이 다녀서 다섯 번째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근데 전학을 너무 많이 다니다 보니까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나도 계속 우정관계를 지속하기가 어렵다는 개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고요. 그러다가, 다섯 번째 고등학교에서 '레이철'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돼요. 레이철을 만나기 전까지의 스테프는 '캣넷'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난 친구들과 마음을 잘 나누고 있어요. 서로 정확히 나이도, 사는 곳도 모르지만 소중한 온라인 친구들 입니다. 스테프가 계속 전학을 다니는 이유는 이혼한 아빠가 엄마와 자신을 계속해서 쫓아온다는 합리적인 의심 때문이에요. 그래서 엄마가 자다가 갑자기 이사를 가자고 하면, 짐 싸들고 바로 떠나야 하는 생활을 하고 있고요. 사실, "MZ세대에게 최적화된 SF스릴러"라는 띠지카피 하나 때문에 읽기 시작했는데요. 불안정한 10대의 이야기이면서, 온라인 커뮤니티를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으면서, AI를 중심으로 한 스릴러 SF 소설이라, 이야기 해볼 거리가 꽤 많은 소설입니다. 이 작품 어떻게 읽으셨나요.
예미 처음에 읽을 때는 스릴러라고 해서 장르명이 당황스럽게 느껴졌어요. 전반부에는 인터넷을 사랑하는 청소년 스테프의 일상생활을 중심으로 전달되는 정보들이 있잖아요. 서서히 이야기가 진행 되다가 어느 순간 떡밥이 딱 회수되고 절정으로 달려가는 순간이 있어요. 그 달려가는 순간부터 책을 읽는 속도가 두 배로 뛰는 좀 희한한 경험을 했습니다.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다른 재미를 주는 책이었습니다.
ㅎㅇ 뒷부분으로 갈수록 읽는 속도가 더 빨리 붙는다는 점을 저도 비슷하게 느꼈습니다. 저희가 제목 얘기도 같이 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캣피싱'이라는 단어에 대해 이전에도 알고 있으셨나요?
예미 아니요. 사실 책을 통해서 처음 이 단어를 알았어요. 물론 이전에도 '캣'과 '피싱'은 알고 있었지만요. (웃음) 인터넷에서 사람을 사귀고, 그 과정에서 자아를 꾸며서 드러내는 행위라고 책에 정의되어 있더라고요. 실제로 사용 되는 단어이기도 하고요. 근데 소설 속의 친구들이 고양이 사진을 매개로 소통을 하기도 하니까 중의적 의미를 가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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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미 제가 첫 번째로 떠올린 음악은 방탄소년단의 'Whalien 52'입니다. 52 헤르츠 고래라는 게 있는데요. 이 고래는 망망대해에서 자기와 주파수가 맞는 동족을 찾아다니는 실존 생물이에요. 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가질 법한 불안정함과 외로움이 담겨있는 노래입니다. 소설 속의 스테프나, 저나 이런 감정을 느껴봤고, 그런 보편적인 정서를 담은 노래여서 선곡했습니다. 단, 52 헤르츠 고래는 끝내 동족을 만나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지만, 동시대의 인간은 인터넷이 생기면서 전혀 다른 곳에 있는 사람과 연결될 수 있고 또 그런 걸 통해서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잖아요. 그래서 저는 인터넷 세상에 희망을 걸어보는 편이에요.
가수의 선정의 변을 조금 더해보자면, 에픽하이의 활동 이력이 오래 되어가면서 이제 에픽하이의 팬들이 가수로 데뷔하는 사례가 많이 늘어났어요. 그 중 세계적으로 제일 유명한 사례가 방탄소년단일텐데요. 자신들이 에픽하이로부터 받은 영향력을 음악에 녹여낸 티가 관찰할수록 보여요. 에픽하이의 노래에 아무한테도 이해 받지 못할 것 같지만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식의 정서가 있는데, 방탄소년단도 막막함과 희망 사이에 있는 정서를 잘 전달한 음악들로 큰 호응을 얻어왔던 팀이니까요. 더불어, 이제 해외 케이팝 팬층의 존재도 어느정도 알려졌잖아요. 소설 속에서 캣넷에 모일 법한 친구들을 묶어주는 매개체가 어쩌면 현재 미국에서는 케이팝 아이돌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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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ㅇ 저는 KEY의 'imagine'을 골랐습니다. 이 소설 속에 AI가 등장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인물 이름을 말하지는 않겠지만) 캣넷에서 대화를 주고받는 친구들 중에 AI가 있고, 이 AI가 자신의 존재를 스테프에게 최초로 커밍아웃 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전에 자신이 인간이 아니고 AI라는 걸 드러내도 괜찮을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요. 인공지능의 고민을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읽는 경험을 준다는 게, 어쩌면 인공지능을 다룬 수많은 작품들과의 차별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노래는 전체가 영어가사지만 한마디로 ‘자신에게 솔직해진다면 정말 필요한 것을 알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어요. 거기에 "new start with a new heart (새로운 심장으로 새로운 시작을 해)"라는 가사가 리드미컬하게 반복되는 구간이 있고요. AI가 자신의 존재를 꼭 드러내야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 했지만,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했을 때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니까 너무 고민이 됐던거죠. 그럼에도, AI 캐릭터가 커밍아웃을 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건, 새로운 심장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자는 다짐을 용기있게 밀고가는 것 처럼 보였고요. 그리고 이 노래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인공지능 시점에서 이야기를 읽을 때의 몰입을 돕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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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미 끝으로, 제가 소개할 곡은 에스파의 'savage'입니다. 에스파 세계관과 이 소설은 명시적으로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요. 이 노래를 들으면 가사가 구구절절 소설의 스포일러처럼 느껴져요. 어떻게 이렇게까지 한국 노래와 미국 소설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놀라웠습니다. AI가 있는 세계관 속에서 적을 무찌르고 친구를 구한다는 기본 설정이 비슷해서 그럴텐데요. 다음 가사의 디테일들이 특히 이 소설과 맞닿아 있어요.
- "My victory 하나의 SYNK DIVE 모두 네가 만들어준 기회란 거"
- "알아 우린 반드시 네 기억들을 찾아줄게 우린 만나"
새삼 이번에, AI를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 이전에 비해 얼마나 보편성을 가지게 되는지, 또 얼마나 친숙하게 느껴지길래 많은 사람들이 에스파를 활용한 '밈'을 만들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됐어요.
ㅎㅇ 예미 님 덕분에, 에스파 노래를 드디어 저희 팟캐스트에 처음으로 소개해드리게 됐네요. 에스파는 주로 '메타버스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로 소개 되는 팀이죠. 'savage'가 머금고 있는 거대한 세계관이 있긴 하지만 일단, 노래가 재밌고 좋잖아요. 그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 지금 케이팝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에스파가 다음 앨범에서 보여줄 음악적인 색깔과 스펙트럼을 기대하고 있으시겠죠. 동시에, 과연 다음에는 얼마나 복잡하면서도 동시에 설득력 있는 세계관을 우리에게 가져올지 궁금해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시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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