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달라지려는
겨우 '나 하나'
(point 1)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 패키지에 담긴 호호히의 샴푸바는 처음 사용할 때부터 다 쓸 때까지 새로운 쓰레기를 만들지 않아요. (point 2) 호호히는 “내가 매일 사용하는 것 중에서 지속가능성을 위한 다른 선택은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됐어요. (point 3) 샴푸바의 팔각형 모양은 기존의 습관들과 마주하는(“지금은 각을 세울 때야"라고 말하는) 우리를 상징해요.
레스 플라스틱(Less Plastic)을 지향하는 브랜드 제품을 쓰기 전에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 하나가 덜 쓰는 게 진짜 도움이 될까?’ 우리를 끈질기게 따라붙는 질문은,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품고 있는 영향력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소하다는 걸 전제하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 같아요. 그럼, 플라스틱 문제를 두고 잠시 인간관계를 예로 들어 볼게요.
진화심리학 분야의 로빈 던바 교수는 “3-5명 정도의 가까운 친구가 당신의 건강을 위해 가장 좋다"고 했어요. 하지만, 《다정함의 과학》의 저자 켈리 하딩은 “친한 친구가 아니더라도 동네에서 만나는 이웃과 나누는 눈인사 등의 미세 친절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어요” 라면서, 잘 알지 못하는 타인과의 교류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어요.* 저는 이렇게 미세하게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이 플라스틱을 덜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집니다. 이제는 제가 하는 말과 행동이 제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믿어보는 쪽이에요. "플라스틱을 쓰지 말자"는 메시지에 동의하는 확실한 아군을 찾고 마음을 놓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쓰는 대신 말이죠.
처음 만나는
'쪽'이라는 이름의 식물
(point 4) 로컬에서 재배해 건강하고 강인한 생명력이 담긴 원료, 나주의 쪽 추출물 20,000 ppm로 만든 샴푸바예요. (point 5) 콩기름으로 프린팅 되어 있는 제품상자는 패키지 상단 칼선을 따라 절취 후 책갈피로 재사용 가능해요.
그렇게 만나게 된 ‘호호히 나주 인디고 샴푸바' 택배를 열면서는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나주 배가 아주 달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 지역의 또 다른 특산품인 쪽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정말 하나도 없다고요. 이 식물은 쌍떡잎식물 마디풀목 마디풀과의 한해살이풀로, 거기서 추출한 푸른빛의 천연염료는 주로 청바지 등 섬유 염색에 사용 된다고 해요. 아마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산강에 놀러 갔다가 쪽을 보더라도 그게 쪽이라는 걸 식별하기가 어려울 거예요.
“식물이 만들어 낸 색은 꼭 식물 같다. 자연스럽고 눈에 설지 않으며 우리가 사는 배경에 어우러지는 편안한 색을 띤다. 어릴 적 이모가 내게 준 선물 중에는 쪽으로 염색한 손수건이 있다. 이모가 직접 염색해 만들었다는 그 손수건은 꼭 바다와 같은 빛깔을 띠었고, 쪽이라는 식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나는 이것이 쪽의 색이라고 연상할 수밖에 없었다.”**
이소영 식물세밀화가처럼 소중한 선물을 받은 기억이 있지 않고서는 쪽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도 쉽지 않겠죠. 물론 이 샴푸바를 다 쓰고나면, 제게는 선물처럼 푸르른 쪽 사진이 프린팅 된 책갈피가 생길 예정이에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사용하는
우리의 '라이프스타일'
(point 6) 코코넛을 통해 얻은 계면활성제로, 3초 롤링만으로 풍성하고 크리미한 거품을 만들어요. (point 7) 자연유래성분 98%를 통해 두피 장벽을 튼튼하게 자극 없이 세정하는 pH 5.5 약산성 샴푸바예요.
어느 날, 샴푸바를 문질러서 거품을 충분히 내고 두피를 3분간 마사지하는 것까지 마쳤는데 갑자기 수압이 약해집니다. 조금 기다려보다가 계속 이럴 것 같으면 일단은 적응하기로 합니다. 잔여 거품이 남아있지 않도록 약한 수압으로도 할 수 있는 선에서 세정 작업을 부지런히 마무리 해봅니다.
로컬 원료의 생명력이 깃든 지속가능한 제품에 정착하려 하는데, 이런 식으로 인생에는 선의로 시작한 일에 개입되는 외부 요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 앞에서 얼마나 당황스러워하는지, 혹은 얼마나 태연한지가 한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해요. 이제껏 화장실에서 물줄기가 갑자기 약해지는 순간과, 냉수와 온수 사이에서 변덕을 부리는 물 온도가 정신 차려주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아침들을 보내왔습니다. 그럴 때면 짜증을 내기보다는 오늘도 모든 일이 내 맘같이 될 수는 없겠다는 걸 또 다시 예습한다고 여겨봅니다. 매일 하는 일이 매일 잘 풀릴 수는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매일 눈 뜨고, 매일 커피를 마시고, 매일 달력을 바라보듯, 거의 매일 머리를 감으면서, 변수가 많은 일상을 살아가봅니다. 오늘도 산뜻한 하루를 보내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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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좋은 의사보다 좋은 상사가 건강에 더 중요” 켈리 하딩" (2022.2.12, 조선일보)
** "이소영의 도시 식물 탐색: 치자나무의 노란색과 봉선화의 다홍색" (2021.9.1, 서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