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유
2020년 4월에 차우진 님이 보내는 뉴스레터 첫 호를 받아보았다. 당시에는 FM 라디오를 콘셉트로 한 <TMI.FM>이라는 이름의 뉴스레터였고, 내가 <#ㅎ_ㅇ>이라는 이름의 아무도 읽을 수 없는 이름의 뉴스레터를 보내기 시작한지 딱 한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가장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독자군은 ‘뉴스레터로 월천을 벌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나잖아요….) 왜냐하면, 이건 뉴스레터로는 월천을 벌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제도권을 벗어나 자기만의 일을 3년 이상 해 본 사람이다. 유튜브든, 개인 사업이든, 흥미와 열정으로 밀어붙였던 초반 시기를 지나 계속 하고는 있는데 그 일에 대한 온도가 조금은 '뜨뜻미지근' 해졌다면 말이다.
이 책은 몹시 구조적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이 미디어 산업의 변천사 속에서 어떤 기회로 찾아오거나 혹은 위협을 받았는가(2013~2020)를 연 단위로 살피고, 또 뉴스레터를 시작하고 슬로건을 변경하고 유료 구독료를 상/하향 조절하며 착실히 구독자를 쌓아왔던 뉴스레터 발행기(2020~2025)를 또 한 번 연 단위로 돌아본다. 이건 뭔가를 계속 많이 해 본 사람만이 취할 수 있는 방정식이다. 뉴스레터 얘기를 하고 있지만 그걸 한 사람이 보내는 거니까 나도 일단은 보내는 사람 얘기를 할 수 밖에 없다.
지난 5년간 내게 차우진 님은 ‘숲을 보는 사람’의 전형이었다. 차우진 님이 자신을 밤새 갈아서 보냈을 ‘지금 한국과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를 메일함에서 읽는동안, 가끔 이 분은 “나무를 안 봐도 불안하지 않으실까…?” 같은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지난 날 나는 종종 내게 주어진 한정된 자원 속에서 숲과 나무 중 무엇을 택일해서 보아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그런데, 차우진 님이 보여주는 숲은 빨랐다. 빨라서 달랐고, 다르다보니 가끔은 생경하게 느껴졌고, 생경하다보니 다시 좀 더 시간을 들여 알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차올랐다.
관점을 '산' 경험
“그런데 관점이란 무엇인가. 바로 보는 사람의 위치다.”라는 책 속의 정의처럼, 이제 세상의 사람을 숲을 보는 사람과 나무를 보는 사람 둘로 나누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나뭇잎의 엽록소에 침투해 있고, 또 다른 사람은 뿌리를 살펴보는 중이다. <관점을 파는 일>을 보면, 우리 모두가 저마다 다른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진부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생태계를 이루고 서로에게 배우며 동료가 된다.
"내가 원하는 독자는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와 함께 성장해야 할 동료였다." p.65
이 책의 흥미로운 지점은, 자신이 팔고 싶은 게 뭔지 알지만 거기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통용되는 수익화 문법이 매끄럽게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저자가 깨끗이 인정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이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었다. 내 딜레마는 바로 거기에 있었고(...)”
하지만, 나도 차우진 님이 파는 무언가를 사 본 경험이 있다. 작년 연초에 뉴스레터 구독자만 참여할 수 있는 오프라인 유료 행사 ‘타운홀 미팅’에 갔던 것. 차우진 님은 그 날을 이렇게 회고한다. “한국에는 왜 이런 자리가 없을까? 어째서 수천 명이 모여야 의미 있는 컨퍼런스라고 생각할까? 그래서 직접 해 보기로 했다. 3시간 정도 참여자들이 깊이 고민하고 대화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고, 외부 연사도 섭외하지 않았다. 원맨쇼처럼 나 혼자 3시간을 이끌어 가는 행사였다.” 나는 그와 내가 뉴스레터를 주요 수단으로 삼은 1인 미디어라는 점 빼고는 모든 게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날 음악 업계 종사자와 업계 입문 희망자 등등 수십 명 사이에 섞여있는동안 내가 산 것을 다른 어느 곳에서도 살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게 뭔지, 알아차리는 데 시간은 조금 걸렸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