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플루엔셜ㅣ2025년 11월 17일 출간
1.
가보지 않았지만 선명하게 보이는 풍경이 있다. 《나를 부르는 숲》의 빌 브라이슨이 내내 투덜거리면서 애팔라치아 트레일을 횡단하는 동안 미국의 동부를 알게 되고, 《와일드》의 셰릴 스트레이드가 엄마의 부재 이후 영원히 걸을 것처럼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위를 걸을 때면 미국의 서부를 알게 된다. 그런가 하면,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델리아 오언스 덕분에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주의 갈라진 해안선 사이에 자리 잡은 습지의 아름답지만 쓸쓸한 분위기를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직접 가보지 않고도 미국의 구석구석을 가깝게 느낀다. 그러다가, 정이삭 감독의 눈을 통해 미국 남부 아칸소주에 부는 바람의 결을 맛 보게 된다. 정이삭 감독이 영화 <미나리>를 만들지 않았다면, 나는 영영 아칸소주라는 땅에 관심을 두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알게 된다. 내가 2020년대에 접어들면서 백인들이 허용하는 상상력의 범위를 넘어서, 다른 이의 눈으로도 미국을 바라보는 경험을 종종 하고 있다는 것을.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유년기를 보낸 베트남계 미국인 작가 오션 브엉이 하는 일도 바로 그런 것이다. 오션 브엉은 모든 걸 풍경부터 시작했다고 말한다. 자신이 자란 강과 계곡이 있는 마을에 대해 먼저 9페이지에 걸쳐 손으로 써 내려갔고, 그것이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 소설 《기쁨의 황제》로 완성됐다. 그는 2020년 대선 다음날부터 이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자신과 같은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배척하는 트럼프의 시대를 지나, 그제야 그는 이민자로서 ‘미국’이란 어떤 곳인지 진심으로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전한다.
오션 브엉은 19세 소년 하이를 통해 자신이 자랐던 그 도시가 “우리는 당신이 탄 기차나 미니밴이나 시외버스 창밖으로 흐릿하게 스치는 풍경이다. 차창 너머 우리 얼굴은 난파된 뭉크 그림처럼 바람과 속력에 망그러진다.”( p.14-15)라고 묘사한다. 이곳은 인천에서 직항으로 갈 수 있는 뉴욕이나, LA 같은 대도시가 아니다. 그럼에도 《기쁨의 황제》를 끝까지 읽고 나면, 난파된 뭉크 그림과도 같았던 도시의 풍경이 다비드 조각상처럼 선명한 이목구비로 변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물론, 이 소설은 가상의 도시인 ‘글래드니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여러 인터뷰를 보면 오션 브엉이 유년기에 거주했던 지역을 소설에 묘사해 두었다고 봐도 좋다.)
2.
1988년생인 오션 브엉은 2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그들의 가족은 베트남 전쟁의 자장권 내에서 살아왔다. 베트남계 미국인인 이 소설에서 그는 자전적인 인물인 19세 청년 ‘하이’를 등장시킨다. 주인공은 베트남 전쟁이 종전되고 10년이 훌쩍 지나 태어났고 가족 중 유일하게 고등 교육받았다. 하지만, 전쟁은 하이의 일이 아니다. 80년대생인 오션 브엉이 그렇듯, 비슷한 연배의 하이 또한 직접적으로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고 언제나 듣기만 했다.
이처럼, 제2차 세계대전이나 유럽, 세계사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고 봐도 무방한 하이가 어느 날 제2차 세전대전을 겪고 살아남은 리투아니아 출신인 노년의 여성 ‘그라지나’와 한집에서 살게 된다. 알츠하이머를 겪고 있는 할머니가 기억을 잃을 때마다 하이가 미국 보병 2사단의 ‘페퍼 병장’이 되기를 선택하는 건, 그게 할머니를 돕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 할머니의 환각을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완전히 다른 세계(전시 상황의 유럽)에 속해 할머니를 안심시켜 주는 것이다. 하이는 그녀와 함께 실내에서 가상의 모의 총격전을 하거나 가상의 어수선한 바깥소식을 전해준다. 조금만 있으면 위협적인 군인들이 이 마을을 빠져나갈 것이고 당신은 안전할 거라고 말한다. 기억이 돌아온 그라지나는 이렇게 말한다. “오래전에 너를 알았더라면 좋았을걸. 그랬다면 서로를 도울 수 있었을 거야. 안 그래?”(p.240)
3.
하이가 한 사람을 위해 그렇게까지 성심성의껏 행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라지나를 만나기 전까지 하이에게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이는 “실수의 조각들 속에서 살아 있을 뿐이었고 중력은 그 조각들을 모아 현재라는 이름의 구명정을 지었다.”(p.178) 그러느니 차라리 코네티컷강에 빠져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다리 위까지 올라갔다가 우연히 그라지나를 만나서 죽음을 유예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이가 하루 종일 노년의 여성을 돌보는 건 아니고, 곧 동네 대형 마켓에서 일을 한다. 그런데 그 일터가 다소 너저분하다. 그것은 하이가 “모든 것이 깔끔했고 예의가 질서가 묻어”나는 다른 마켓에 들렀다가 “웨스앤더슨 영화의 등장인물처럼 지나치게 활짝 웃고 있는 남자와 여자”에게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다시 그 너저분한 세상에는 “아름답고 키 작은 패배자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