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1 - 2025.12.07 / 플루리부스, 그럼 네가 만들어 봐, 한 곡 쓰기의 기술
© 애플 TV+ ㅣ2025년 11월 7일 - 에피소드 공개중 (9부작)
영화 <돈 룩 업>(2021)과 <놉>(2022), 그리고 애플 TV+ 드라마 <플루리부스>까지. 아메리칸 창작자들은 왜 자꾸 인물들이 위를 쳐다보게 만들까. 이번에도 역시 불길한 구석이 있어 떨면서 재생 버튼을 눌렀지만, 1화만 봐도 대작이라는 감이 온다. 로판 소설가인 ‘캐럴’은 인터넷이 잘 터지지 않는 빙하 지역으로 파트너와 여행을 가서도 신작의 베스트셀러 순위를 궁금해하며 소설가로서 자신의 명예를 신경 쓴다. 그러다 하루아침에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바이러스라기엔 다소 애매한 ‘정신적 접착제’로 연결되어, 이제 개인은 없고 ‘우리’만 있다고 주장하는 세계에 속하게 된다. 그들은 소름 돋게 솔직하고 거짓말을 못하며, 캐럴이 원하는 모든 걸 가져다준다. 그러나 파트너를 잃은 캐럴이 화를 내면 그들은 죽는다. 벌써 캐럴의 부정적 감정 때문에 약 8억명이 죽었단다. 캐럴은 자신의 감정 상태에 영향을 받는, 긍정주의가 평화를 가져다준다고 믿는 새로운 세상에 신물이 난다. 캐럴 역으로 분한 배우 레아 시혼은 이렇게 말했다. “이건 답을 떠먹여 주는 게 싫은 사람들을 위한 드라마예요.”
염세주의를 한 숟갈 타 넣은 sf 드라마는 현재 전체 9부작 중 2/3까지 공개 되었는데, 캐럴이 속한 혼란한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매 에피소드마다 너무나 조금씩만 알려준다. 참신한 설정을 감질맛 나게 풀어가는 게 거의 신의 경지에 오른 제작진과, 카메라가 ‘우리’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촬영하는 감도 높은 부감샷 때문인지, 애플 TV+ 역대 드라마 중 최고 재생수를 보유하고 있던 내 사랑 <세브란스: 단절> 시즌2(2025)의 기록을 넘어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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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bsㅣ2025년 10월 7일 - 방영중(10부작)ㅣ웨이브, 티빙에서 시청 가능
번듯한 직장인 ‘카츠오’(타케우치 료마)는 저녁을 차려준 여자친구에게 오늘의 반찬이 전체적으로 갈색이라며 조금 더 색감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여자친구 ‘아유미’(카호)가 싸준 수제 도시락을 펼쳐놓고 회사 후배와 점심을 먹던 중, 상대방이 먹는 된장국에 연두부 대신 단단한 두부가 들어가 있으니 진짜 된장국이 아니라며 트집을 잡는다. 그러다 여자친구에게 프로포즈를 대차게 거절 당하면서 그는 어느 날 귀가하여 여자친구가 특히 잘 만들어주던 ‘닭고기 채소 조림’을 직접 만들기 시작한다. 장보기의 번거로움, 요리의 세부 공정들, 끝나지 않는 뒷정리까지. 그렇게 요리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본 후에야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럼 네가 만들어 봐>는 이렇듯 예상 가능한 장면을 엔딩에 배치하는 대신 비교적 초반부부터 보여준다.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이야기다. 드라마 제목은 여친이 남친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 속 한마디다. 이미 말 하는 데 쓸 에너지가 아깝다고 느껴질 지경이 되었기 떄문이다.
한 남자를 거울 치료 시키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닭고기 채소 조림’에 거의 집착하는 카츠오는 데이팅 앱으로 만난 여자와의 애프터에서 직접 요리를 만들어주었다가 까탈스러운 피드백을 받고, 잘 알지 못하는 그 여자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각성과 함께 부어라 마시는 술,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의 낫또 치즈 토스트. 웃기도 잘 웃고, 최선을 다해 질질 짜는 카츠오를 미워하긴 힘들다. (이 드라마 속의 타케우치 료마는 약간 젊은 날의 남궁민 배우 느낌이랄까?) 관념적으로 카츠오는 너무나 어리석지만, 그런만큼 그에게는 더 늦기 전에 실수로부터 배우는 일도 허용되어야 한다. <그럼 네가 만들어 봐>를 보고 있는 나도 그것을 간절히 바란다. 실수를 저지른 후에 똑같은 실수를 또 저지르지 않기를. 누군가에게 내가 어제보다는 오늘이 손톱만큼이라도 나아진 사람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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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라칼ㅣ2025년 5월 26일 출간
이무진이 다비치를 위한 ‘타임머신’의 가사를 쓰는 과정이 강민경 브이로그에 공개되고, 하이브의 신인 아이돌 코르티스는 작업 과정을 위버스 라이브로 생중계한다. 전자에는 창작의 고통이, 후자에는 영감을 구체화하는 즐거움이 담겨 있다. 그 모든 것이 한 곡을 쓰는 사람의 면면일 것이다.
케이팝이 나라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자 도파민의 최종 집결체라는 그동안의 믿음은 이 책 앞에서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무뎌진채로 음악을 소비하는지, 감상자의 자아를 제대로 유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시도조차 하지 않는지) 알아차리는 것으로 바뀐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간다는 이유로 많은 것에 심드렁해지고, 새롭고 신선한 작품이 아니면 과소평가 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1967년생. 미국 6인조 록 밴드 윌코(wilco)의 보컬리스트 및 기타리스트. 2004년 [a ghost is born] 앨범으로 그래미 어워즈에서 수상했고, 2025년 9월인 최근까지도 솔로 앨범 [Twilight override]을 발표한 저자 제프 트위디는 아직도 지구에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안다(그건 바로 나….) 그리고 자신이 노벨상 수상자인 밥 딜런 같은 음악가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다만, <한 곡 쓰기의 기술>에서는 더 유명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음악의 세계로 초대하고 싶어하는 그의 순전한 선의가 읽힌다. (물론, 중간에 ‘그럴 거면 꺼지세요’ 라며 급발진을 하는 지점도 있지만.) 많은 비판과 많은 자기 검열 속에서 제프 트위디는 곡을 쓰는 현역 아티스트로서 그렇게 생존해나간다.
그리고 궁금해진다. “저는 제가 만드는 모든 노래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노래들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좋아합니다.”(p.208) 라고 말하는 아이돌을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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