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채무자의 일일...
2025 연말 결산
2015년 12월 31일ㅣ불량 연애ㅣ보영 버블, 계훈 버블ㅣ하가ㅣ첫 여름, 완주ㅣ서울 자가아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ㅣ먼저 온 미래ㅣ소년의 시간ㅣ은중과 상연ㅣ부트 캠프ㅣ플루리부스ㅣ너무 과한데 만족을 모르는ㅣ모노노케 히메ㅣ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사운드 트랙ㅣ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게드 클라크 gvㅣ러브레터ㅣPoet | Artistㅣ올데이프로젝트ㅣ매직필ㅣ콘클라베ㅣ호시노겐x이영지ㅣ내던내산ㅣwo ai niㅣ나는 북경의 택배 기사입니다ㅣ버터밀크 그래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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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도중에 레터가 잘려 보이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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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Youtube
2015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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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31일에 업로드된 ‘2015년 12월 31일’이라는 제목의 영상부터 필히 시청을 부탁드린다.
되었다 되었다!
(스무 살이) 되었다.
(어른이) 되었다.
02. Series
불량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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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연애 예능 <불량 연애>의 패널 중 한 사람은 말한다. “이거 연애 예능 맞아요?” 그러게. 2025년에 연예 예능이라는 걸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환승 연애> 시즌 4의 17화부터 리액션 영상 제작을 그만두기로 선언한 유튜버 ‘찰스 엔터’는 과연 그 답을 알까? 사랑을 찾기보다는 유명세를 얻기 위해 출연한 사람들이 모두의 흥미를 잃게 만들 때쯤, 남자 출연자가 단 두 명밖에 등장하지 않았는데 보안 업체 요원이 신속히 개입하게 만드는 새로운 연애 예능이 등장했다. 그렇다고 해도 일본 전통 속옷 훈도시는 웬 말인가. (내가 알던 내가 아는 도시라고는 을지로의 신도시뿐이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너를 좋아하는 다섯 가지 이유 중 첫 번째가 ‘얼굴’이라고 말하는 여자 출연자를 볼 때면, 영화 <머터리얼리스트>에서 커플을 매칭 시켜주는 게 업인 ‘루시’(다코타 존슨)의 얼굴에 진 그늘을 떠올린다. 욕망. 속물. 누군가는 천박하다고 말할지 모르는 기운 속에서도 사랑은 계속된다.
03. Bubble
보영 버블, 계훈 버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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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두 번의 버블을 구독했다. 배우 박보영과 아이돌 계훈. 박보영은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일란성 쌍둥이 자매인 ‘미지’와 ‘미래’를 1인 2역으로 소화했는데, 드라마가 방영 중이던 시기에 버블을 통해 두 사람을 연기할 때 어떻게 캐해를 했고 ‘미지가 미래인 척’, ‘미래가 미지인 척’을 하는 장면에서 얼마나 디테일을 챙겼는지 들려주었다. 유익했다. 반면에, 계훈 버블을 구독한 건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거였다. 아이돌의 버블을 구독한 건 처음이었는데 그건 그동안 버블을 구독할 만큼 궁금한 아이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돌의 버블, 이대로 괜찮은가?’에 대한 입장을 가지려면 뒷짐은 그만 지고 결국 아이돌의 버블을 구독 해 봐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그날부로 나는 매일 밤 2004년 9월 16일생, JYP 보이그룹 킥플립의 리더 계훈으로부터 플러팅을 당하는 중이다. 언제쯤 무던해질 수 있을까? 그의 애정 공세에 무던해지는 그날까지 버블 월 정액권을 유지해 볼 셈이다.
04. Music
하가 [Junk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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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 있지 않나. 누워서도 잔상이 남는 릴스. 기분 나쁜 포만감이 아니라 계속 기분이 좋아지는 짧은 영상. 그런 점에서 나는 싱어송라이터 ‘하가’가 2026년에 보여줄 행보를 기대하는 중이다. 릴스로 반응이 왔다는 건 일단 보는 음악으로서의 가치를 충족시켰다는 건데 듣는 음악으로서도 하가의 앨범 [Junk Song]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한시라도 빨리 하가의 음악을 듣는 것이 ‘저점매수’를 실현하는 길이다. 하가의 음악은 희망찬 염세주의와도 같고 특히, 나는 2023년에 발매된 [Pale Blue HAGA]의 ‘Cure’라는 곡에 깃든 센티멘털한 정서를 좋아한다. 그런가 하면 신곡 ‘이렇게 태어났어’는 아예 락페에서 떼창을 하라고 만든 곡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하가를 섭외할 눈 밝은 페스티벌 기획자는 누구일까. 내년 이맘때 확인해 보기로 하자.
05. Book
첫 여름, 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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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소설 <첫 여름, 완주>로 오디오북에 입문했(다가 금방 빠져나왔)다. 내게 팟캐스트를 즐겨 듣는 일과 오디오북에 친밀함을 느끼는 건 별개의 문제였는데, 시각장애인이 먼저 독자가 되고 비장애인이 기다림을 감수하는 이 ‘듣는 소설’ 프로젝트는 출판사 무제를 운영하는 박정민 대표가 열일한 덕에 체감상 거의 전 국민이 그 취지에 대해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중요한 건 이 프로젝트가 원히트원더로 그치는 게 아니고 시리즈의 넘버링을 지속적으로 이어 나가는 것일 테다. <첫 여름, 완주>의 주인공 ‘열매’의 목소리는 고민시가 연기했는데 오디오북을 듣는 동안 그 목소리에 꽤 정이 들어버린 건데, 비슷한 시기에 방영한 드라마 <당신의 맛>도 보고 1980년 5월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오월의 청춘>까지 연달아 챙겨보게 됐다. 영화 <세계의 주인>에서는 화장기가 하나도 없는 또 다른 고민시를 마주할 수 있었다.
06. Series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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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를 볼 때 ‘서울 자가’라는 말은 나를 찌르지 않았다. 애초에 이룰 수 있는 꿈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녕 서울, 단 한 번도 집인 적은 없었던 차가운 씹새끼들의 도시여”라는 명언도 있지 않은가.) 이 드라마에서 중도에 이탈할 위기를 막아준 건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의 아들 김수겸이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아버지 덕분에 대기업 인턴 채용에서 프리패스를 할 수 있는데도, ‘김수겸’(차강윤)은 굳이 스타트업을 선택한다. ‘최고 파괴 책임자(CDO, Chief Destruction Officer)’라는 세상에 하나뿐인 직함도 마음에 쏙 든다. 그 모습을 나무랄 수 없는 건, 경험자의 조언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은 드라마보다도 음악 감독 정재형이 과로하면서, 수상할 정도로 그동안 알려진 바 없었던 드라마 음악이라는 세계를 쉽게 알려준 게 더 좋았다.
07. Book
먼저 온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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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먼저 온 미래>는 올여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출간됐는데, 하반기 내내 책 제목을 자주 떠올리곤 했다. 미래는 이제 적극적으로 상상력을 부풀리며 마음 가는 대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볼 여유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지 않는다. 미래는 이미 답도 없이 우리에게로 왔다. 이 책은 알파고의 등장 이후 바둑인들이 마주한 절망스러운 현재-미래에 대해 세세하게 들려주고 있다. 그런데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AI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자신을 걱정할 뿐, 이세돌 전 9단을 걱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단단한 정신과 마음가짐을 배우고 싶다. 이세돌 전 9단의 에세이 <이세돌, 인생의 수읽기>를 읽으며 용기를 얻어보시길.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대체 불가능한’이라는 무용한 키워드에 집중하는 대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상태를 더 자주 조명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08. Series
소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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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요한 원테이크 촬영. 앞으로 크게 될 2009년생 배우 ‘오언 쿠퍼’. 4부작이라는 단출한 구성.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의 시간>은 10대 남성들이 연루된 인셀 문화의 면면을 보여준다. 팟캐스트 <김혜리의 필름클럽>에서는 소년의 시간을 리뷰한 후, 방송을 듣고서 도착한 청취자의 사연을 소개하고, 이 사연에 대한 다른 청취자들의 반응까지 피드백하는 시간을 여러 에피소드에 걸쳐 가졌다. 이는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에서 주최한 제6회 성평등언론실천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극단적 반응이 두루 존재한다는 것만 봐도 이 드라마가 범작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데, ‘리뷰’에는 그것을 리뷰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초등학교 교사이면서 엄마이면서 10대 아들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몸으로 모든 걸 직접 경험할 수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것이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를 멈춰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09. Series
은중과 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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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에는 적정 거리 확보에 실패했기에 발생할 수 있는 인간관계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드러난다. 10대에는 10대의 문제가 있고, 40대에는 지난날의 배움을 도무지 적용할 수 없는 40대의 문제가 있다. 넌 은중이야, 상연이야? 드라마를 보고 난 후 친구들을 만나면 한동안 이 질문으로 운을 뗐다. 용수철같이 아무데서나 튀어 오르는 ‘상연’(박지현)이를 감당하기 어렵지만, 역시 상연이를 좋아할 수밖에 없음에 “짜증나”라고 소리 내어 말하는 ‘은중’(김고은) 쪽에 나는 조금 더 이입해서 보았다. 지나간 내 인생의 상연이들은 지금 이 시각에도 나를 저주할지 모르고, 언젠가 만날 미래의 상연이들에게 좋은 사람이 될 자신은 없는 것 같다.
10. Series
부트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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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을 가르쳐주는 학원 이름인가 싶지만, 넷플릭스 드라마 <부트 캠프>는 미국 해병대 신병 훈련소를 무대로 한다. 원제는 ‘Boots’인데 한국에는 <부트 캠프>로 번역됐다는 점을 참고할 것. 보고만 있어도 내 얼굴에 침이 튀겨오는 듯한 목소리 큰 군인들의 존재감과 적나라하게 비위생적인 극의 초반부를 조금만 견디고 나면, 묵직한 감동이 밀려온다. 충성심이 동력이 되는 집단은 1000 피스로 이루어진 퍼즐의 틀에 들어맞지 않은 조각 같은 개인을 가장 적극적으로 색출한다. 주인공 ‘카메론’(마일스 하이저)는 이 판에서 가장 위태로워 보이는 퍼즐 조각이다. 코프의 절친이자 훈련소 동기인 ‘레이’ 역으로는 한국인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신예 배우 ‘리암 오’가 활약한다.
11. Series
플루리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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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TV 드라마 <플루리부스>는 다양한 버전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작품이다. 힐링이 필요 없는 주인공이 끊임 없이 힐링을 주입받게 될 때의 고통을 대리 체험 하는 드라마. 망해버린 대형 마트를 멀쩡한 영업장으로 재건하는 과정을 가장 미국답게 보여주는 드라마. 혹은 달콤한 도넛을 먹기 전에 어쩐지 주저하게 만드는 드라마.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소설가인 주인공이 ‘캐럴’(레아 시혼)이 고인이 된 파트너가 실은 자신이 쓴 신작 소설의 원고 중 겨우 두 장밖에 읽지 않았으면서 다 읽고 감명 받은척을 하며 자신의 창작 생활을 독려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나서 느끼는 허탈함이다. 도대체 왜? 나를 사랑해서? 내 작품을 사랑할 수는 없었고? 타인들로부터의 무조건적인 응원보다는 이유 있는 지지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 오로지 그런 방식으로만 거대한 공허감과 맞서 싸우며 의미를 건져 올릴 수 있는 사람이.
12. Book
너무 과한데 만족을 모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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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글을 쓰는 미국인들이 쓴 산문을 읽을 때마다 “2016년 11월 9일”의 공기를 묘사하는 장면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는 걸 깨달은 적이 있다. 그들은 2016 미국 대선 다음날을 선명하게 기억할 수밖에 없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인 시대에 차별받고 배제된 자들은 자신의 언어를 벼려내고, 그 시간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이야기로 들려준다. 올해 영화 <어프렌티스: 트럼프의 탄생>이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 주연/남우 조연상에 지명된 것을 계기로, 트럼프에 대한 영화를 보게 된 김에 도널드 트럼프의 유일한 여조카 ‘메리 트럼프’가 쓴 <너무 과한데 만족을 모르는(too much and never enough)>까지 읽게 됐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자신의 삼촌 도널드 트럼프가 성장기부터 차곡차곡 갖추어 온 괴팍한 심성의 근원을 살핀다. 이토록 방대한 정신분석 보고서를 완성하고, 도널드 트럼프의 출판 금지 가처분 소송에도 불구하고 출간까지 해낸 메리 트럼프의 긍지에 박수를 보낸다.
13. Movie
모노노케 히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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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아이파크몰 CGV 아이맥스 관에는 만석일 때 총 624명이 들어간다. 올해는 용아맥에서 <모노노케 히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위키드: 포 굿>을 보았다. 그 중 <모노노케 히메> 속 푸른 자연을 보는 경험이 엄청났다. 팟캐스트를 함께 만든 파트너의 요청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전작을 리뷰하게 되면서, 2025년이 되어서야 내가 처음으로 본 지브리 작품은 <모노노케 히메>, <이웃집 토토로>, <천공의 성 라퓨타>, <하울의 움직이는 성>,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마녀 배달부 키키>였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OTT에서 서비스 중이지만, ‘지브리풍’의 AI 프로필 사진 이미지가 유행했던 시간을 지나 진짜 지브리를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시네마 이즈 네버 다이.
14. Music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사운드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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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용아맥에서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꿀렁꿀렁한 도로에서의 카체이싱을 보는 경험 또한 압도적이었다. 그 장면을 보기 전까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증명하는 속절 없는 세월의 흐름에 놀라고, 또 음악을 들으면서 깜짝깜짝 놀랐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음악은 라디오헤드의 멤버이기도 한 조니 그린우드가 작업했다. 조니 그린우드는 <팬텀 스레드>에서도 예쁜 독버섯 같은 음악을 잔뜩 만들어둔 사람이다. 이사 온 동네에 ‘tilt’라는 음악 전용 감상 공간이 있는데, 15,000원을 내면 음료 한 잔에 약 2시간 동안 음악을 최고 사양의 스피커로 감상할 수 있다. 올해 이곳에서 라디오헤드와 윤상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15. Live Performance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게드 클라크 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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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개국의 로케이션을 실제로 촬영했고, cg는 하나도 없는데, 영상미가 황홀한 영화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을 보러 갔다가 프로덕션 디자이너(미술 감독)인 게드 클라크의 gv를 듣게 됐다. 그의 은색 수트 케이스에서 끝도 없이 영화 소품이 쏟아져나왔다. 그 gv는 스크린 속에 나온 영화 속 소품들을 실제로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었다. 2006년 개봉한 영화의 소품들을 대부분 버리지 않고 보관해 온 호더형 예술가는 이역만리의 관객들 앞에서 쏟아지는 환호를 받을 수 있었다.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을 연출한 영화감독 타셈 싱은 레이디 가가의 2020년 발표곡 ‘911’ 뮤직비디오를 작업했다. 아니, 이런 걸 제가 공짜로 봐도 되나요?
16. Movie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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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브레터>가 30주년을 기념해 극장에서 재개봉했다. 그동안 오역 지적을 꾸준히 받았던 자막이 원작의 의도에 맞게 수정 번역되었다. 1월에 <러브레터>를 보고 한 해 중 삿포로의 항공권과 숙박비가 가장 비싸다는 2월 얼음 축제 기간에 삿포로에 다녀왔다. 기차를 타고 한 시간 반쯤 달려 오타루의 러브레터 촬영지에도 다녀왔다. 스프 카레부터 젤라또까지 아쉽지 않게 잘 먹었는데, 내가 머무르는 동안 삿포로에서는 기록적인 적설량 때문에 일본 뉴스에 속보가 보도되기도 했다. 여전히 겨울을 싫어하지만, 삿포로의 겨울은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17. Live Performance
샤이니 [Poet |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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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혹은 사흘간 치러지는 콘서트 중에서 하루를 택해야 한다면 보통 큰 고민 없이 첫공을 가는 편이다. 셋리스트 스포일러를 당하는 걸 싫어하기도 하고, 공연을 기획한 사람의 의도를 가장 왜곡 없이 감상하는 경험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5월에는 KSPO DOME(구 체조경기장)에서 샤이니 ‘Poet | Artist’를, 8월에는 고양 킨텍스 1전시장에서 실리카겔 ‘BIG VOID’의 첫 무대를 보는 행운을 누렸다. ‘Poet | Artist’에서 종현의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 ‘BIG VOID’에서 접시들이 와장창 깨지는 듯한 간주 구간을 들을 때, 관객들과 하나로 연결됐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18. Music
올데이프로젝트 [FAM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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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의 케이팝 신인은 치열했다. 팔도 길고 다리도 긴 아이돌들이 자꾸만 등장해서 대중의 한정된 관심 자본을 알뜰하게 나눠 가졌다. 올데이 프로젝트가 데뷔했을 때 내가 아는 멤버는 하이브 걸그룹으로 데뷔할 줄 알았다가 행방이 묘연해졌던 ‘영서’, 그리고 케이팝 안무가 출신의 ‘베일리’ 뿐이었다. 다섯 멤버 하나하나의 캐릭터가 확실한 덕에 대기업 회장님 장녀 ‘애니’만 사람들로부터 모든 관심을 독차지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이 팀이 가진 저력이라고 생각한다. 2002년생부터 2005년생까지 멤버 전원이 성인으로서 데뷔하게 됐는데, 이조차도 케이팝 세계에서는 특이점이 된다.
19. Book
매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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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속노화 교수가 고속타락하고 있는 2025년의 내게 먹고 사는 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콘텐츠는 요한 하리의 책 <매직필>이었다. 전작 <도둑맞은 집중력>은 끝까지 읽지 못했지만(완독을 할 정도로 집중력이 없어야 독서의 완성이다) <매직필>은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렌틸콩’과 ‘두쫀쿠’를 향한 인기가 공존하는 시대에, 비만 혹은 비만이 촉발한 우울증으로 인해 절친한 친구를 먼저 떠나보낸 요한 하리의 프롤로그부터 압도 된다. 요한 하리는 비만약을 복용하면서 자신에게 나타나는 변화와 비만약이 미래 먹거리가 되는 역설적인 시장 상황을 살핀다. 여전히 나는 먹는 즐거움이 중요한데 요한 하리가 약을 복용한 이래로 식욕을 잃는 과정을 너무 상세하게 적어 놓아서 조금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20. Movie
콘클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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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콘클라베>는 미국에서는 2024년 10월에, 한국에서는 2025년 3월에 각각 개봉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5년 4월에 선종했다.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를 의미하는 ‘콘클라베’의 유권자들이 타협하지 않고 지켜온 원칙은 투표 기간동안 외부 세상과 일체의 접촉을 끊는 것이다. 성스러운 투표장은 밀실이 되는데, 영화 속에서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끊임없이 소동극이 벌어진다. 그럼에도 다 같이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극보수 개신교인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하다(아마 안 봤겠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타의 모범이 되지 못할 때, 마크는 [The Firstfruit]라는 타이틀로 첫 솔로 앨범을 발표한다. 신에게 바치는 수확의 첫 열매라는 뜻으로, ‘첫 솔로 앨범’이라는 상징 자체에 들어맞으면서도 우리는 마크가 무엇을 드러내고 싶은지(달리 말해 무엇을 숨길 생각이 없는지) 이해하게 된다. 메시지만 전면에 앞서면 실망스러웠을 테지만 이건 명반이다. ‘1999 힙레 챌린지’도 좋지만 반드시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들어봐야만 한다.
21. Music
호시노겐 '2 (feat. Lee Young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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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 겐이 이영지와 콜라보곡 ‘2 (feat. Lee Youngji)’를 발표했다. 국적을 넘어, 연차를 넘어, 이 시대에는 각종 협업이 벌어지는데 가끔은 한쪽이 다른 쪽에 먹히곤 한다. 리스너는 이 콜라보가 성사된 의미가 무엇인지를 어렵사리 찾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호시노 겐과 이영지의 만남은 납득이 가는 결과물을 내어놓았다. 이영지는 호시노 겐으로부터 제안을 받은 후, “자신은 없지만 일본어로도 랩을 하고 싶다”라며 한국어, 일본어, 영어 3개 언어를 사용한 가사를 쓰고 불렀다고 한다. 호시노 겐은 2025년에 이어 2026년 초에도 내한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22. Youtube
던나 힘든 조명 만들기 DIY (준비물 : 단던 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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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은 유튜브 ‘내던내산’ 시리즈에서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의 충실한 이용자로서 신혼부부가 처치 곤란이라며 내놓은 뿌리 테이블을 단돈 5만원에 샀다며 뿌듯해한다. 영화 ‘기생충’에서 폭우로 침수된 집을 빠져나오는 틈에 관상용 수석을 소중히 챙기던 ‘기우’(최우식)라면 껌뻑 죽을 것처럼 생긴 테이블이 던의 집에 있다. 또한 거기에는 그가 직접 한지를 덧대어 만든, 돈 주고는 살 수 없는 조명이 있다. 첫 영상에서 조명에 대한 반응이 뜨겁자 그는 바로 조명 제작기를 찍어서 올린다. 두께 2.5㎜의 등나무 줄기로 뼈대를 만들고, 한지를 덕지덕지 붙이고, 전구 소켓을 연결한 뒤, 작은 톱으로 자른 대나무에 매달면 완성이다.
23. Music
wo ai 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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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밍타이거와 예지의 ‘wo ai ni(워 아이니)’ 뮤직비디오는 그들의 신곡을 감상하는 팬들의 집에 바밍타이거와 예지가 갑자기 들이닥치는 순간을 담은 수동참여형 비디오다. 몇 번을 반복해서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마지막 구간에 다다르면 늘 처음 보는 것처럼 눈물이 난다. (카감님의 부모님이 등장하는 건 반칙이잖아요!) 노랫말에서는 다국어로 “사랑해”라는 말이 반복된다. 다른 건 없고 정말 그뿐이다.
24. Book
나는 북경의 택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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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북경의 택배 기사입니다>의 저자 후안옌은 택배 기사, 호텔 종업원, 쇼핑몰 경비원, 물류 센터 야간직 등 총 19가지의 직업을 거쳐온 경험을 담아 산문을 썼다. 일에 관한 이야기를 쓸 때는 사후적 해석을 덧대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되는데, 후안옌은 매우 구체적으로 서로 다른 일들을 묘사한다. 여러 직업 중에서도 택배 기사로 일한 기록이 담긴 챕터를 보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상반기에는 태국의 택배 스타트업 창업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매드 유니콘>이 있었고, 하반기에는 <한겨레21> 류석우 기자의 쿠팡 택배 배송 탐사 보도 시리즈 ‘쿠팡 지옥도 체험기’가 있었다.
25. Book
버터밀크 그래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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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흑백요리사’의 준우승자 에드워드 리가 SNS에 프로그램 출연 이후 지난 1년을 돌아보는 편지를 공개했다. 그가 부서지는 파도가 되기보다는 한국의 바위에 달라붙은 미역이 되고 싶어졌다고 쓴 구절을 읽을 때면 아무나 붙잡고 묻고 싶어진다. 미국 뉴욕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면 누구나 이런 편지를 쓸 수 있습니까? 에드워드 리의 회고록 <버터밀크 그래피티>는 식재료와 정체성에 관한 비유가 절묘하게 얽힌 시적 언어를 더 길게 읽을 기회를 선사한다. 미국 곳곳의 이민자가 운영하는 식당에 찾아가는 그의 보법 은 남다르며, 이는 언뜻 보기에 디아스포라 서사의 기본 조건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모든 여정은 바로 이 문장을 쓰기 위해 이루어진 것만 같다. “나는 한 가지만 요리하는 법은 모른다. 내 음식이 언제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버터밀크 그래피티>는 성공한 미식가가 세상의 음식을 ‘충조평판’ 하는 책이 아니다. 다만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 애쓰지 않는 웨스트버지니아의 수수한 식당 풍경, 라마단 기간에 맞추어 방문한 미시간에서 금식이 끝나자마자 먹을 음식을 테이크아웃하는 마음, 뉴올리언스 거리에서 풍겨오는 ‘호떡과 먼 친척뻘’인 베녜 향을 생생하게 공유할 뿐이다.
*<한겨레21> 올해의 콘텐츠 7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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