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1 - 2026.01.11 / 듀나 신작 소설 '몰록' 펀딩중!
듀나에 대한 조각글 10
➊ - ➌ 듀나와 영화 ➍ - ➎ 듀나와 SF 소설
➏ - ➓ 듀나의 <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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➊
대중문화를 좀 치는(?) 사람들은 둘로 나뉠 것이다. 듀나의 단편소설 nnn개를 읽다가 듀나의 신간 소식을 듣게 되는 사람과, 영화를 보고 와서 듀나의 평론을 챙겨보는 사람. 나는 후자 쪽이었다.
➋
“굉장히 교포 영화이고 한국 관객들에게는 이 때문에 호오가 갈릴 수 있는데, 교포가 주인공이면 당연히 교포스러워야 하고 당연히 그런 작품은 문화와 언어의 움벨트를 반영해야죠. (움벨트란 단어는 이번에 딱 한 번만 쓸게요.)” _ 2024년, 듀나 x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에 대한 듀나의 감상을 좋아한다. 내게는 이미 현재의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무언가를 더하거나 덜어낼 필요가 없다고 느껴지는데도, 다른 버전의 영화들을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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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24ㅣ패스트 라이브즈ㅣ2024년 3월 6일 개봉
한국에서 서로 얕은 호감을 가지고 있던 두 친구 ‘해성’(유태오)과 ‘나영’(그레타 리) 중 한 사람의 조기 유학을 계기로 연락이 끊긴 후, 성인이 되어 다시 미국에서 재회한다. 이 영화의 개봉 직후, ‘한국에서만 산 한국 남자’ 배역을 연기하는 유태오 배우가 구사하는 한-영 대사의 발음과 억양이 어색해 몰입을 깬다는 반응이 국내 한정으로 나타났다. 잘하지만 못하는 척, 때로는 못 하지만 잘하는 척 연기하는 배우를 바라보아야 하는 이물감이 어떤 관객들에게는 꽤 컸던 모양이다.
이러한 반응을 놓고 듀나는 문어체와 구어체의 차이에 관해 이야기한다. 수많은 영화에서 물 흐르듯 들리는 구어체는 사실상 우리 일상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짚어주는 것이다. 우리가 친구와 대화할 때 엄청나게 많은 비문을 사용하듯이. 그것을 굳이 교정하지 않아도 상대가 내 진심을 알아듣듯이. 때로 상대로부터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야 할 때 키보드로 뜨는 배틀이 더 편하게 느껴지고 울며 겨자먹기로 상대 앞에 서면 내 입에서는 갈 길을 잃은 단어들만 드문드문 이어지듯이.
그러니까 움벨트가 무엇이든 간에, 듀나의 감상을 읽는 동안 나는 (1) 자연스러운 (2) 어눌한 (3) 문어체 (4) 구어체가 각각 다른 비율로 조합되었을 수도 있었을 또 다른 버전의 <패스트 라이브즈>를 상상해볼 수 있었다. 이렇게, “만약에”를 적극적으로 가늠해보는 비평을 SF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➌ “인터넷 문화가 날로 발달하게 될 21세기는 또 다른 듀나가 나올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다. 듀나라는 성공 전례가 있기 때문에 더 가능하다.” - 2008년, 주간경향
18년 전 국내 언론사의 한 기자는 이렇게 진단한 적이 있다. 듀나는 1990년대 초반부터 하이텔에서 소설을 쓰고 영화 이야기를 해왔고, 공식적인 안식년 없이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왔다. 2026년 현재 검색 가능한 기사만 보아도 영화 주간지 <씨네21>에 200건이 넘는 글을 썼고, 1999년부터 운영 중인 홈페이지 ‘듀나의 영화낙서판’에는 2,400편이 넘는 영화 리뷰가 축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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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듀나 x
귀여운 토끼 프로필 사진을 고수하며 자신의 신원을 드러내지 않는 듀나를 보면, 활동 기간 내내 헬멧을 쓰다 은퇴한 ‘다프트 펑크’나 활동 초기에 항상 얼굴을 가리는 가발로 신비주의 콘셉트를 유지했던 ‘시아’를 떠올릴 수 있다. <나의 눈부신 친구>를 비롯해 나폴리 4부작을 쓴 ‘엘레나 페란테’처럼 필명을 사용하고 모든 인터뷰를 서면으로만 진행하는 작가도 있다. 그런데, 가끔은 호기심이 무례함으로 번지기도 해서, 2016년의 한 문예지는 듀나와 서면으로 대화를 나누며 ‘익명성을 고수하는 작가로서의 듀나’에만 치중한 나머지, 작품에 관한 질의를 다루지 않은 인터뷰를 진행한 것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 (이 인터뷰는 문예지 편집부의 공식 사과로 마무리됐다.)
➍ “예를 들어 듀나는 1990년대에 활동을 시작했고, SF 농도가 짙고, 세계 중심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다. 반대로 정세랑은 2010년에 데뷔했고, SF 농도가 비교적 옅고, 인물 중심의 이야기를 쓴다.” _ 2022년, 심완선 SF 평론가
심완선 평론가는 인터뷰집 <우리는 SF를 좋아해>를 쓰기 위해 어떤 기준으로 한국의 수많은 SF 작가들 중 최종적으로 인터뷰이 목록(김보영, 김초엽, 듀나, 배명훈, 정소연, 정세랑)을 짰는지를 말하면서, 듀나의 위치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듀나가 누구인지를 이해하는 데에 꽤 실용적인 가이드다.
➎ “정말 00년대 초에 듀나 작가님 영업을 더 뻐근하게 안 했던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은 워낙 SF 불모지니 듀나도 대단해 보이지만 진수는 영미권SF 어쩌고 저쩌고죠” 이런 말 하는 고수들에 나는 쫄아서, ‘그런가?’ 하면서 충분히 영업 못 했음. 정말 후회되고 후회됨.” _ 2019년, 곽재식 작가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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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읻다ㅣ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ㅣ2024년 2월 11일 출간
신상을 공개하지 않고 글을 쓰기로 함. 이 부분에 대한 호기심을 걷어낸 후에 다가오는 듀나에 관해 과제는 역시 양적으로 압도되기 쉽다는 것이다. 2024년은 듀나가 소설가로 데뷔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였는데, 그해에는 듀나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첫 단편인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가 포함된 동명의 소설집이 출간됐다. (현재는 절판됐다.) 또, 같은 해 여름에는 30주년을 기념하는 포럼 ‘시간을 거슬러 온 듀나’도 열렸다. 100여 명의 독자, SF 소설가, 비평가들이 모여서 오로지 듀나 얘기만을 나누었다는 자리에서 한 세션을 담당한 곽재식 작가는 언젠가 SNS에서 좋아하는 작가를 더 힘껏 영업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고 또 후회했던 적이 있다.
각자 언제 처음으로 듀나의 소설을 만났느냐에 따라 영업하고 싶은 작품은 다를 텐데, 나는 신작을 소개할 것이다. (신작인데 이제 듀나가 수십 년 전에 온라인에 연재했던 첫 장편 소설인.)
➏
2026년 1월에 출간되는 듀나의 소설 <몰록>에는 36페이지까지 총 10명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이무혁, 부닌, 강정환, 세르게이 베네딕토프, 이정, 이무영, 안넬리제, 미향, 김진석, 강문혁… 한국인과 러시아인의 이름이 교차하는 가운데, 정말 한 페이지에서만 언급되고 다시는 등장하지 않는 인물들도 있기 때문에 초반에는 적당히 속도감을 붙여서 읽어도 괜찮다.
주인공은 가상의 도시 ‘의천’을 배경으로 마약상 살인마 수사에 관여하는데, 문득 이 사건이 4년 전에 ‘머리 도둑’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졌던 연쇄살인마와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을 품는다. 어느 날 누군가가 화성에서 가져온 생물의 표본에서 강력한 마약 성분을 뽑아내서 유통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화성 마약이 가진 상업적 가능성을 점점 회의하게 되는 지경까지 나아간다.
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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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래빗홀ㅣ몰록ㅣ2026년 1월 21일 출간 예정
“<몰록>을 다시 낼 기회가 왔을 때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이 장편을 미완성 원고로 보고 새로 쓸 것인가. 아니면 당시의 원고를 존중할 것인가. (...) 이 책은 20여 년 전의 딱 그 시대의 나에 맞추어져 있어서 고칠수록 이상해진다. 지금의 나는 이런 소설을 쓰지 않는다. 나는 천진난만하던 당시의 나를 작정하고 죽일 생각도 없다.” - <몰록> 작가의 말
듀나는 이 소설을 내기 전에 몇 가지 이유를 들어 과거의 자신을 보존하기로 선택한다. “천진난만하던 당시의 나를 작성하고 죽일 생각도 없다”라는 작가의 말은 선언적이다. <몰록>이 지금의 듀나가 쓰지 않는 소설이라는 건, ‘특정 시기에만 가질 수 있었던 세상을 보는 태도’를 독자에게 집요하게 밀어붙여 보이겠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➑
소설 속 세계에서는 시시한 범죄에 고급 인원과 자원이 투입되는 것처럼 보이고, 시체에서 머리만 없어지는 연쇄 머리 도둑 살인이라는 과잉된 상황을 모두가 거의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사건들이 하나하나 속보로 보도되며 무게감 있게 다루어지지도 않고, 수사팀원들이 나날이 피해자가 늘어나는 점에 대해 압박을 느끼지도 않는다. “세상이 미쳤거나 내가 미쳤거나 둘 중 하나”라는 인물의 자각은 있지만 세계는 바뀌지 않는다. 시위가 일상이 되었고, 남는 것은 늘어난 쓰레기 처리 작업에 분노하는 청소부들의 짜증뿐이다.
➒
이 소설이 끝까지 설명하지 않는 게 있다. 제목 ‘몰록(Μόλοχ)’은 고대 가나안 지방에서 사람을 제물로 받았다는 신으로, 소설에서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소설 후반부에 ‘몰…’로 시작되는 문장이 있길래 재빠르게 동그라미를 쳤는데 그건 ‘몰락’이었다.
➓
1월 21일 정식 출간에 앞서, 현재 <몰록> 펀딩이 진행 중이다. 책과 함께 래빗 짐색(토끼 굿즈)도 받아볼 수 있다. <몰록>을 시작으로, 데뷔 40주년이 다가오는 그날까지 천천히 같이 듀나를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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