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 저는 요즘 이 책을 주변에 추천하고 다니는 게 일이거든요. 인생이 잘못됐다고 느끼는 열 명의 각기 다른 사람들이 어떤 연기 워크숍에 모이게 돼서 각자 나름의 성장을 하기도 하고, 이상해지기도 하고, 그렇게 일상에 균열이 생기는 이야기라는 말과 함께 사람들에게 추천을 하거든요. 그런데 큰 관심을 보이지는 않더라고요.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연기 수업’이라는 것에 대한 마음의 벽이 생기는가봐요.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라고 많이들 생각하더라고요.
ㅎㅇ 제가 그 벽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에 한 명인 것 같은데요. 개인적인 여유의 시간이 있다고 한다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들 중에 ‘연기 수업 가기’를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나는 극장에 가서 배우가 연기를 하는 걸 보는 사람이지, 내가 어떤 역할을 연기 하는 사람이 된다고? 근데 아키님은 연기하는 배우로 지내보신 적이 있다고요.
아키 저는 20대 때 독립 영화 작업을 했었고 간혹 연극도 했었어요. 원래는 연출이나 작가의 역할을 하려고 시작을 했던 건데, 보통 아마추어 작업들은 이런저런 역할을 하게 되잖아요. 사람이 없어서 혹은 돈이 없어서요. 품앗이 하듯 다른 사람들의 작업에 배우로 몇 번 출연을 했었어요. 근데 너무 좋은 거예요. 오히려 카메라 뒤에 있을 때 보다 그 앞에 있을 때, 무대 뒤에 있을 때보다 그 위에 있을 때 더 행복하다는 경험을 몇 번 하게 됐거든요. 그런데 배우는 누군가에게 선택을 받아야 하고 자기만의 작업을 해나가기가 너무 힘들죠. 경제적인 문제, 현실적인 이유도 있고요. 그래서 그 작업을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을 못했거든요.
그래서 저한테 연기란 약간 미련이 남아 있는 작업 중 하나인데요. 이 책에 가슴에 다시 불을 질러준 거예요. '나 연기 수업이 너무 싶어' 하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알아봐서 참여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듣고 있는 수업에는 이 책처럼 정말 다양한 세대와 성별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 오는데요. 일상적인 이야기는 거의 안 하고 그냥 충실하게 연기 수업에 참여하면서 자기 안에 있는 걸 다 꺼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들을 계속 가지고 있어요. 지금 두 번 정도 참여 했는데 너무너무 좋아하고 있고요. ㅎㅇ님한테도 그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ㅎㅇ 저는 한 일이 아무것도 없고 이 모든 공은 미국에 있는 닉 드르나소에게 돌리기로 해요. (웃음) 저는 아키 님이 연기 혹은 연출에 대한 관심이 있으신지 전혀 몰랐고, 또 마침 어떤 연기 수업이 모집 중인데 그걸 찾아서 등록 하셨다는 말씀을 들려주셔서 재미있다고 생각 했어요. 그럼, 아키님이 그 수업을 수료하고 나면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실까요?
아키 그건 모르겠지만, '연기는 왜 이렇게 취미로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중이예요. 그래서 아예 제가 그런 장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어요. 직업 배우로 살거나 작품에 참여하지 않아도, 참여하는 그 순간에 휘발되고 놀이처럼 임할 수 있는 연기의 장이 생기면 좋겠더라고요.
ㅎㅇ 만약 취미로 연기를 해보는 장이 펼쳐지면, 그곳에 모여드는 분들한테 어떤 감정을 전해주고 싶으신 거예요?
아키 연기는 자기 안에 있는 어떤 상태에 대한 몰입이라고 생각해요. 뭔가에 몰입하는 경험들을 다들 좋아하잖아요. 그런 걸 정말 세게 과몰입할 수 있는 기회랄까요. 어디 바깥에서 가져온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이미 있는 어떤 상태들에 대한 몰입인 거예요. 또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해요.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 공감해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이요. 그래서 저는 연기가 정반대에 있는 것들의 조합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지극히 나에게 집중하면서 동시에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해 몰입을 하는 시간이니까요. 또, 지극히 내면으로 침잠하면서 외면적으로는 남들이 보기에 아름다워야 하는 표현이기도 하고요. 해보면 정말 재미있는데, 구미가 당기시지는 않나요?
ㅎㅇ 눈에 지금 불이 붙으셨는데요. 저도 사실 타의로 연기를 해본 적이 있는데, 어학연수를 갔을 때 ‘English Speaking’ 기초 수업에서 대본을 외워서 모놀로그 시연을 하는 과제가 있었어요. 그게 되게 엉망인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그 때 느낀 공포가 다음 도전을 못하게 하는 것 같기도 해요.
아키 너무 어려운 과제였던 것 같아요. 고차원적인 레벨까지 가야 할 수 있는 건데 수업을 위해 하는 거였으니 안 좋은 기억만 남았겠네요.
ㅎㅇ 당시 교수님한테 피드백을 받았는데 다른 말씀은 없으셨고요. "너는 참 마임을 잘한다."라고 하시더라고요. 말은 잘 못한다는 거죠.
아키 아닌 것 같은데요. 뭔가 행동을 되게 재밌게 하셨나 봐요.
ㅎㅇ 잘 기억은 안 나는데요. 모놀로그 대본에 대사 말고도 “콜라 캔을 따서 잔에 따른다” 같은 지문이 있었어요.
아키 지금 제 앞에서 보여주셨는데 진짜 캔을 따는 것 같았어요.
ㅎㅇ 제가 영어 회화 기초 수업을 들을 때 연기 과정이 포함되어 있을 거라는 건 전혀 몰랐거든요. 근데 반대로 생각해 보면, 연기가 그만큼 일상적으로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한 거예요.
아키 언어를 배울 때 그런 식으로 약간의 연기가 가미가 되기도 하니까요. 내 말이 아닌 말을 한다는 점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