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 에넬은 아역배우였던 자신을 성폭행한 영화 감독 크리스토프 루지아를 고소했다. 한 해가 지난 2020년이 되어서야 크리스토프 루지아는 구속 수감 됐지만 재판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프랑스 영화제 세자르상에서 <장교와 스파이>로 로만 폴란스키가 감독상을 수상했을 때, 관객석에 있던 아델 에넬이 분을 못 이긴듯 자리를 박차고 나간 일까지도 모두 같은 해에 벌어진 일이었다.
올 해 5월, 아델 에넬이 배우 은퇴를 선언한 걸 보고 영화계가 인재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프랑스 영화계가 성범죄자에게 관대하기 때문에 더는 영화계의 일원으로서 일할 수 없다며 자신의 입장을 전했다. 분노를 행동으로 옮긴 건 대단한 용기다. 아역 배우 출신이므로 그가 하루 이틀 이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지속 하지 않음'과 '계속 하지 않음'이 가장 적극적인 의사표현 방식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줬다.
그를 지지한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됐다. 영화인이 모인 자리를 박차고 떠나는 일과 아예 영화인으로 살기를 포기해버리는 일 사이에 보이는 어떤 간극 때문이다. 나는 그가 지쳤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음주부터 개최되는 제 8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 로만 폴란스키가 신작 <더 팰리스>로 또 한 번 초청 되었다는 뉴스를 아마도 챙겨보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지쳤다고 말할 때, 상대에게 그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내 머릿 속에서는 빠른 검토가 이루어진다. 별로 좋은 버릇은 아니지만, 이러한 사고 과정에 따라 나는 이미 톰 홀랜드와 아델 에넬에게 지칠 자격이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변하지 않는 산업의 일부라는 걸 인식한 결과 K.O. 될 수 있고, 가해자에게 관대한 세상이 쉽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나가 떨어질 수 있다. 계속 그 안에서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게 능사는 아니다. 두 사람은 잠시든, 기약 없이든, 멈춰야한다고 생각할 때 멈췄다.
나는 나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지쳤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글로든, 말로든, 이미 무언가가 많은 세상에서 또 새로운 걸 만들어보겠다고 한 사람들. 그들은 왠만한 일들에서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지만 일이 끝이 보이지 않고 지속되는 상태에 직면하면서 애를 먹는다. 다 놓고 멈추는 게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를 아는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