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국제 + 부락제에 다녀와서 (1)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산락페스티벌과 부산 약간 여행이 버무려진 이번 가을 휴가 때, 광안대교가 정면으로 보이는 숙소에 6일간 머물렀으면서 바다에 처음으로 발을 담근 건 여섯 번째 날이었다. 대책도 질서도 없었다. 오션뷰가 보이는 숙소 테라스에 앉아 컵라면을 먹으면서 막 공개된 NCT 127 정규 5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고, 영화제가 열리는 극장 근처의 폴바셋에서 세시간동안 팟캐스트 다음 에피소드 편집을 했다. 바다락페가 열린 삼락생태공원은 생태적으로 습지가 있는 곳이었고, 중간에 비가 오기도 해서 사용한 돗자리에 잔디와 진흙이 많이 엉겨 붙어 있었다. 그것들을 한 번 더 확실히 털어내야 했다. 그렇게 여섯 번째 날 아침 해변에 돗자리를 털러 갔다가 기분이 좋아져서 신발을 벗게 됐고 발바닥에 모래를 묻혀서 돌아왔다. 샤워를 하는 데 끝도 없이 몸에서 모래가 쏟아졌다. 그렇게 집까지 온 것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완제품 같아 보이지만 끊임없이 모래를 흘리고 있는 모래시계와도 같은 인간….
첫 영화가 상영되는 'CGV센텀시티'는 신세계센텀시티 백화점 9층에 있었다. 입간판이나 미니현수막 등이 부려져 있어 영화제 분위기가 한껏 느껴지는 영화의전당 거리를 지나 들어선 백화점은 non-영화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오직 부산에만 있지만, 백화점은 프랜차이즈 상점들로 가득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점점 9층에 가까워질수록, 에스컬레이터를 둥그렇게 에워싸고 있는 난간 구조물에 팔을 걸치고 있는 무더기의 씨네필들이 보였다. 다들 하나같이 표정이 초조해보였다. 아마도 부산국제영화제 예매 사이트에 접속해서 뭐가 됐든 취소표를 잡고 있거나 SNS와 오픈채팅방을 드나들며 티켓을 양도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난 여름에는 객원 에디터로 참여중이던 온라인 서점 매거진에서 원작 소설이 드라마화 또는 영화화 되는 경우를 중심으로 네 편의 기획기사를 꾸리는 작업을 했다. 이미 국내외로 영상화된 사례를 다각도로 조명했는데, 그중 2023년 하반기 이후로 볼 수 있는 작품을 싹 다 모아서 소개하는 공개예정작 코너가 있었다. (다른 모든 일이 그렇듯) 이 일은 끊임없이 도파민을 분출시켰다. 수많은 아이템 중에서도 이 기사를 쓰면서 과장을 조금 보태 "아, 조금만 더 힘내서 살아봐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이미 원작 소설로 접한 것들중 스크린에서 만나고 싶은 작품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장강명 작가의 소설 중 《한국이 싫어서》(민음사, 2015)와 《댓글부대》(은행나무, 2015)는 영상 판권이 팔렸다는 소식을 들은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개봉 시기가 미정이라는 게 조금 아리송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기사를 마감하고 일주일 즈음 지나니, <한국이 싫어서>가 올 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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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테이션
계나는 한국이 싫다. 매일 속으로 울면서 출퇴근을 한다. 버스에서 지하철로, 지하철에서 또 다른 노선으로, 환승을 거듭한 후 회사에 도착한다. 그렇게 꼭두 새벽부터 동네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버스 기사님께 읍소하듯 뛰어오며 하루를 시작하는 계나의 여정은 마치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2022)에서 "서울을 감싸고 있는 계란 흰자"라는 여자친구의 빈정거림에 충격을 받은 산포시 거주자 염창희의 그것과도 같아 보인다. 계나는 출근을 하고도 딱 한 번만 눈 감고 하면 되는, 작은 비리가 섞여 있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아할 뿐 아니라, 하고 싶지 않다고 표현한다.
일가족이 도란도란 모여 사는 집은 단열에 취약한 구조라 한겨울이 영원하게 느껴지고, 오래 사귄 남자친구는 자신이 취업만 하면 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며 조건부 다정함을 실천하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 가치관이 다르다. 그나마 말이 통하는 동생은 노랫말을 따라부르기 어렵고 그렇다고 리듬을 타기도 도통 어려운 음악을 하는 비주류 밴드의 멤버들에게 곁을 준다. 술을 마셔도 담배를 태워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으므로(아니 정확히는 상황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으므로) 계나는 뉴질랜드로 떠난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이런 얘기다. 원작과 가장 직관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소설 속 주인공은 호주로 떠나는 데 반해 영화화 되는 과정에서 뉴질랜드로 배경이 각색 되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시대를 지나치며 극장의 '암전'이 가진 미덕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곤 하는데, 이는 스크린에 비치는 내 얼굴과 아이컨택을 하는 일이 없어진다는 걸 뜻하기도 하는 것 같다. 애초에 집은 영화 관람에 최적화된 환경이 아닌데 이는 화면의 크기나 사운드의 문제보다도, '주구장창 OTT나 유튜브를 보고 있는 나'와 내가 서로 눈이 마주치는 일이 생각보다 비일비재하다는 경험으로 다가온다. 극장에 가면 스크린은 저기에 있고 나는 여기에 있으니까 오히려 자신을 더 쉽게 더 잊을 수 있다. 이를 다른 말로는 '몰입'이라 부른다. 그런데, 뉴질랜드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친구에게 계나가 우리나라에는 '헬조선(Hell-chosun)'이라는 말이 있다고 알려주는 장면에서, 나는 그만 몰입이 깨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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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의 관객인 나는 영화관 바깥에서 한국을 싫어하는 청년층의 마음에 얼마나 복잡한 심리가 끼어 있는지를 짐작하며 고통이라든가 자조라든가 하는 것들에 연대하며 동참하고 싶어하는 사람이고, 그러므로 조선을 수식하는 헬이 얼마나 충분하지 못한 표현인지 인지해버리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어찌 하여 영화 속 계나는 손가락을 겹쳐보이는 K-하트 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처럼 사뿐하게 헬조선이라는 말을 가르쳐줄 수가 있는거지? 원작 소설에 들어 있는 '헬조선'을 그대로 영화 대사로 옮기기로 한 선택을 탓할 수는 없었지만, 고작 대사 하나에 몰입이 깨진다는 것이 이 영화를 보러 부산까지 향한 나에게는 사소하지만 강렬한 좌절이 되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계나는 얼마나, 왜, 어떻게 한국을 싫어하는지 그 마음이 궁금했지만 답을 발견하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 상영 이후 이어진 GV에서 자신을 사회 초년생이라거나 어떤 분야의 지망생이라고 밝힌 두세 명의 관객들이 연달아 이 영화가 위로가 되었다고, 그래서 계나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겠다고, 감독님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이렇게 짐작해보게 되었다고 말하는 걸 듣게 되면서 나는 내 생각이 완전히 틀렸음을 알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을 '헬조선'이라 부르는 게 마뜩잖더라도, 각자의 이유로 꾸준히 한국을 싫어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영화는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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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세대의 고민과 분투와 갈등을 다루는 소위 '청춘 영화'의 타깃은 지금 청춘이었던 사람과 언젠가 청춘이었던 사람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 30대 중반인 나는 습관처럼 시간이 빠르다고 이야기하곤 해도, 내가 나이를 들었다는 걸 자주 실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실은 언젠가부터 지나간 한 시절을 생생하게 눈 앞에 소환시키거나 그립게 만드는 영화, 그러니까 어떻게든 나를 한 자락이라도 끼워줄 수 있는 영화를 청춘 영화로만 간주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이 싫어서>를 꼭 청춘 영화로만 한정할 수는 없겠지만, 이것이 일정 부분 청춘 영화이기도 하다면. 나는 이 영화가 청춘 영화스럽지 않다고 느껴서 아쉬워 했다가, 바로 그 실망감을 회수했다. 그러니까, 영화 <한국이 싫어서>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내가 비로소 기성 세대가 되었음을 인정했다. 이 영화는 나에게 이런 것들을 알려주었다. 싫어하는 걸 계속 싫어하는 과정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될 수 있다고. 몰랐던 내 모습을 직면하게 되어도 여전히 스스로를 싫어하지 않을 수 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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