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24구역에서 2층 2구역으로, 본무대 시야를 조금 더 확보하는 블럭으로 가까워지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확실히 NCT는 god보다 내 현생의 덕질에 더 붙어 있는 그룹이기는 했다.
올해는 별안간 NCT 공연에 꼬박꼬박 지분이 생긴 한 해였다.
•초여름, NCT DREAM의 [THE DREAM SHOW 2] 투어를 마무리하는 앙코르 콘서트를 관람했다.
•초가을, NCT 첫 단체 콘서트 [NCT NATION: To The World]을 관람했다.
•초겨울, NCT 127의 [NEO CITY : SEOUL - THE UNITY]를 관람했다.
이건 1년 간 내가 만난 여러 처음 중 가장 난해하고 난감한 처음들이다. 마치 하나로 공명하기가 무섭게 여럿으로 쪼개져 활동하는 NCT라는 그룹처럼. 평소 그들의 음악을 즐겨 듣기는 해도, 그룹에 대한 내 정서적 유대가 적은, 그런데 어느새 데뷔 8년 차인 아이돌의 공연을 관람하는 일은 마치 어느 시점부터 보다 만 마블 시리즈의 가장 최신편을 갑자기 관람하는 기분과 같았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올해 열린 NCT 산하의 공연을 모두 본 이후였지만). 이번 콘서트도 진입장벽을 각오했는데, 뜻밖에도 특정 멤버를 향한 관심에만 기대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번 관람을 호기심이 승리한 공연이었다고 회상한다.
곧장 눈에 들어온 건 오른쪽을 장악하다시피 세운 전면 전광판이었다. 체조경기장은 전반적으로 좌석마다 시야 확보가 평균 이상은 되는 공간이지만, 조명이나 스피커 장치 등으로 가려지는 부분 없이 매끈하게 드러난 패널이 믿음직스러웠다. 후에 정면에서 바라본 본무대는 트라이앵글 형태로, 양 옆으로는 사다리꼴 모양의 전광판이 퍼즐처럼 맞춰 전체적으로 거대한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었다. 며칠 전 공연에서는 본 적 없는, 돌출 무대로부터 왼쪽, 중앙, 오른쪽 구역으로 올라가도록 설치된 계단에도 자꾸만 시선이 갔다. 아직 그곳에 아무도 서 있지 않았지만, 경험한 공연 레퍼런스가 없으므로 머릿속으로 돌릴 시뮬레이션이 없는데도, 2층 관객석을 둥근 캣워크처럼 에워싼 까만 단상은 이미 설레기 충분한 거리감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오프닝을 채운 'Punch' 'Superhuman' 'Ay-Yo' '불시착'의 연결고리를 알지 못해도 괜찮았다. NCT 127 음악에 대한 몰이해는 문제가 아니라는 듯, 여백 없는 전광판으로 화려한 비주얼이 쏟아졌다. 조명과 연출은 그냥 압도당하면 되는 장치였다. 심장은 아직 어리둥절한데 시선을 휘어잡는 퍼포먼스에 조금 얼얼했던 기억이 난다. 예컨대 'Skyscraper(摩天樓; 마천루)'는 아예 초면인 노래였지만 마천루라는 부제답게 각각의 블럭 위에서 멤버들이 층층이 상승하는 역동성을 보여준 무대라서 감탄하며 보았다.
나는 오랜 NCTzen처럼 NCT 127을 체험한 게 아니라 최근에 학습한 서사를 따라가야 했고, 모든 걸 알지 못해도 그저 공연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관찰할 만한 환경이길 바랐는데 이 공연은 그걸 가능케 한 구성이었다. 전광판이 거대한 카메라 이상의 무대가 돼주었기 때문이다. 화면 설정에 대한 팬들의 입장은 각기 다르겠지만(어설픈 시각 효과로 공력을 낭비하는 것보다야 깔끔하게 멤버들만 담는 게 나을 수 있으니까), 노랫말의 서사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적합한 그래픽이 많았던 것 같아 제법 괜찮은 볼거리였다. 만약 솔로나 유닛이 더해졌더라면 어떤 그림이 나왔을까, 살짝 궁금하기도 했지만 다인원 그룹에서 오직 단체 무대만으로 힘주어 달리는 지금의 장점이 더 컸겠지 싶다. 맞는 해석인지는 모르겠으나 "THE UNITY"라는 주제를 되새겨봐도 NCT 127로서의 결속을 돋보이는 데 초점을 맞춘 것처럼 느껴졌고.
올해 발매한 정규 5집의 수록곡부터 멤버들은 본격적으로 무대 구석구석을 활용했다. 덕분에 가을 내내 흥얼거리던 'Yacht' 때는 가장 관심 있는 멤버의 이목구비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친구가 내 후기를 듣고는 '극왼블(공연 시 주로 왼쪽 블럭에서 퍼포먼스를 한다는 뜻)'인 멤버가 웬일로 오른쪽 구역을 갔냐며 축하한다고 했다. 저마다 고정된 무대 동선이 있을 텐데 이번 공연에서는 변경된 것 같다고 덧붙이면서. 그런데 이런 건 부수적인 행운이었다. 내게 진짜 행운은 이런 것이었다. 총 6회로 예정된 공연의 첫 회차를 관람했으므로 셋리스트 스포를 당하려야 당할 수 없어서 조마조마했는데, 작년 가을 발매한 정규 4집의 수록곡 '윤슬'을 한 번은 꼭 직접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독 힘들었던 그해, 늦은 퇴근길마다 작게 반짝이는 천가를 걸으며 이 노래를 들으면 하루를 달리 기억하고 내일로 넘어갈 수 있었으니까. 다행히 오래 전부터 적립한 제 1의 목적은 이뤄졌고 이 노래만큼은 한 순간 천장이 열리거나 벽이 허물어져 야외 공연이 되기를 바랐지만… 대신 차분하고 단정한 라이브가 흘러나왔다. 헤드셋으로 들을 때처럼 마음이 미어지지 않고 오직 음악으로만 감상할 수 있는 시기를 맞이했다는 기쁨도 함께했다.
낯선 호기심으로 달리는 공연은 계속됐다. 문득 문득 형광초록빛으로 넘실거리는 객석을 바라볼 때면, 느슨하게 연결돼 있는 기분에 외롭지 않았다. 얼마나 스며들 수 있을까? 불신하면서도 굳이 가보고 싶은 마음을 확인하면서. 가장 사적인 욕심이 채워지고 나니 남은 무대는 아무려나 더 여유롭게 즐기게 되었다. 무대 한가운데에서 리프트를 타고 떠올라 반투명 커튼 스크린에 가려진 채, 전광판 화면 보조 없이 부른 '신기루'는 제목 그대로 환영처럼 존재하는 듯한 연출이 과감해서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회차부터는 전광판에 멤버들의 얼굴을 띄웠다고.) '윤슬' 만큼이나 기대했던 사적인 취향의 셋리스트를 만날 순 없었지만, 오케스트라로 편곡된 'Favorite (Vampire)'의 웅장함이 일말의 아쉬움을 태워주었다. 지독하게 빨간 의상, 빨간 화면, 컨페티(공연장에서 날리는 작은 색종이 조각)마저 빨갛게 터지는 불꽃 같은 광경으로.
NCT 127은커녕, NCT DREAM이라든가 WayV라든가, 이 모든 것을 새롭게 합친 NCT U, 그리고 최근에 결성된 NCT NEW TEAM을 끝으로 마침내 종료된 무한확장 시스템까지……. 그러니까 여러분이 NCT의 환장할 세계관 같은 건 모르겠고 앞으로도 알고 싶지 않았더라도, 지난날 한 번쯤은 스치듯 들어봤을 '영웅 (英雄; Kick It)' '질주 (2 Baddies)' 'Fact Check (불가사의; 不可思議)'가 본무대 마지막 섹션으로 몰아쳤을 땐 그 에너지가 엄청나서 내가 다름 아닌 NCT 127 콘서트에 와 있다는 사실이 다시금 선명해졌다. 취향을 덮어버리는 '네오한' 힘에 박자를 맞추고 크게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