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마음엔 실패가 없지' 장참미 작가와의 인터뷰 《좋아하는 마음엔 실패가 없지》
장참미 작가 인터뷰
* 2023년 11월 22일 종로구에서 대면으로 진행했습니다.
* 🧗 하단에서 구독자 대상 이벤트에 참여해보세요!
|
|
|
ㅎㅇ :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참미 : 창원에서 작은 책방 '오누이북앤샵'을 운영하고 있고, 이번에 클라이밍을 주제로 첫 책 《좋아하는 마음엔 실패가 없지》를 쓴 장참미입니다. 제가 행복하게 지냈던 한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물성을 가진 형태로 나온 걸 보니 얼떨떨해요. 제 책인데도 아직은 낯을 가리게 되네요.
|
|
|
장참미 《좋아하는 마음엔 실패가 없지》(부키, 2023)
✱✱
'말이 없는 돌'에 대한 사랑
클라이밍은 손에 굳은살이 생기는 운동이다. 나는 7년 전에 클라이밍을 했던 시간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재미있게 하긴 했는데 손에 습진이 심해지면서 그만두게 되었다. 그때 생겼던 굳은살은 운동하지 않으니 다 없어졌고 손은 다시 부드러워졌다. 장참미의 책을 읽자마자 손부터 반응이 왔다. 손이 아픈 그 느낌이 되살아났다.
ㅎㅇ : 사람들이 클라이밍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여러 오해가 있을 텐데요. 암벽 위로 높이 올라가야 하니 담력이 세야 한다든가 하는 것들요. 또 어떤 게 있을까요?
참미 : "손 힘이 세야 하는 거 아니냐", "어깨가 좋아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식으로 상체 근력에 대한 걱정과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제가 클라이밍을 배우면서 중요하다고 느꼈던 건 코어였거든요. 버티거나, 매달리거나, 혹은 원하는 움직임을 하기 위해서는 코어가 좋아야 해요.
ㅎㅇ : 참미 님은 시작할 때 코어가 어떠셨어요?
참미 : 엉망진창이었죠. (웃음)
'천만영화'라는 말이 요원한 요즘이지만, 942명이 보았다는 영화 <엑시트>(2019)가 클라이밍의 대중화에 기여했던 어떤 공기를 기억한다. 모그의 박진감 넘치는 음악을 배경으로 용남(조정석)과 의주(임윤아)가 맨손으로 매달리고, 뛰어다닌다. 장참미는 영화 <헤어질 결심>의 첫 장면을 클라이밍 하는 사람으로서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하며 이 책을 마치지만, 클라이밍 스몰토크용 영화로는 아무래도 <엑시트>가 제격일 것이다.
ㅎㅇ : <엑시트> 보셨어요?
참미 : 일단 개봉할 때 영화관에서 봤고, 운동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찾아봤어요. 저 말고도 전국의 클라이밍 하는 사람들은 1년에 한 번은 보지 않을까 싶어요. 추석 특선 영화로도 많이 방영되는 것 같고요.
ㅎㅇ : 클라이머로서 <엑시트>는 어떤 영화로 느껴지나요?
참미 : 영화에 "완등하자"는 표현이 있는데, 이게 좀 생소하잖아요? 근데 암장(인공 합판 혹은 건물 벽면에 구멍을 뚫거나 손잡이를 붙여서 인공 암벽 시설을 갖춘 곳)에서 실제로 자주 쓰는 말이에요. 처음 극장에서 봤을 때는 그 대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다시 영화를 보니 그 말이 너무 멋지게 들리더라고요.
|
|
|
© CJ ENMㅣ엑시트
ㅎㅇ : 마라톤의 "완주하자"는 상대적으로 익숙한 표현인데, "완등하자"는 그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달리기를 좋아하니까 더 잘 아실 것 같아요.
참미 : 주어진 길을 끝까지 가는 게 '완주'이고, 전체 개념은 동일하지만 거기서 상승의 개념이 더해진 게 '완등'이에요.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은 끊임없이 위로 상승하고, 우리는 그들이 도시 구조물의 고점까지 올라가는 과정을 찬찬히 보게 되죠. 단지 직선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나를 어디론가 높은 곳으로 데려다준다는 느낌, 어떤 지점에 가면 내가 원하는 곳에 다다랐다는 확실한 느낌을 안겨주는 게 바로 완등이라는 단어에요. 그런 걸 느꼈을 땐 '내가 정말 멋진 운동을 하고 있구나' 하면서 벅차더라고요.
<엑시트>의 열풍을 뒤로 하고, 클라이밍을 다룬 최신작으로는 일드 <솔로 활동 여자의 추천>(2021)이 있다. 퇴근 후 매일 중복 없이 최대한 다양한 활동에 도전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40대 여성 사오토메 메구미(에구치 노리코)가 클라이밍 체험 수업에 임하는 모습이 이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로 할애되어 있다. 하루의 클라이밍을 해 본 주인공은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을 들려준다. "쉽게 말하자면 그저 몇 미터의 벽을 끝까지 올라갈 뿐이라는 극히 단순한 스포츠인데 성취감을 느낀다. 여기에 빠지는 사람이 있는 것도 이해된다."
ㅎㅇ : 만약 <솔로 활동 여자의 추천> 주인공처럼, 첫 수업을 마치고 어느 정도 클라이밍에 흥미를 느끼는 것 처럼 보이는 사람을 만났다면 어떤 말을 건네주고 싶으세요?
참미 : 두 번째 수업을 나오는 것도 그만하는 것도 '그건 그 사람의 결정이지'라고 생각하면서 지나갔을 것 같아요. 제가 조언이나 충고하는 걸 싫어하기도 하고요.
|
|
|
© TV 도쿄ㅣ솔로 활동 여자의 추천
ㅎㅇ : 그래도 가정해 보신다면.
참미 : 그동안 암장에서 마주한 분들이 첫 수업이 끝나고 아주 양가적인 표정을 지으셨던 게 떠오르네요. 재미는 있는데, 다시 올 엄두는 안 난다는 표정. 그럴 때는 그냥 "오늘 수업 재밌죠?"라고 할 것 같아요. 저에게 클라이밍을 영업한 제 남동생도 제가 첫 수업을 마쳤을 때 와서 똑같은 질문을 했거든요. 사실 행위 자체는 고통스럽다는 걸 알아요. 홀드(자연 암벽에서 사용되는 바위의 모양을 본떠 만든 암벽 손잡이)를 잡은 손은 아프고, 클라이밍 전용 신발은 굉장히 타이트하고요. 그래서 처음에 재미를 못 느끼면, 계속 지속하기는 어려운 운동이기는 해요. 재미라고는 모르겠고 고통만 느끼다 가는 분들이라면 어쩔 수 없죠. 세상은 다양하고 또 재미있는 일들은 많으니까요.
ㅎㅇ : 클라이밍의 매력을 말 못 하는 돌에서 찾아내셨지요. 그게 묘하게 위로가 된다고 하셨는데요. 반대 상황을 가정해 보면, 말 없는 돌과 달리 말 많은 누군가가 참미 님을 힘들게 했던 건 아닌가 싶더라고요.
참미 : 홀드를 통해 타인을 이해한다는 접근이 저한테는 새롭게 들리네요. 평소에 저를 힘들게 하는 존재는 타인이 아니고 늘 저였거든요. 기다려 주지 못하고, 채근하는 역할을 제가 자신에게 많이 해왔어요. '넌 왜 그것밖에 못 해?' '좀 더 빨리 해냈어야지.' 문제는 제 안의 저 자신이라고 여겨왔어요. 그런데 암장에서 홀드를 마주하면,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에서 오는 감동이 있어요. 첫 수업부터 그런 걸 느꼈어요. 홀드가 저에게 준 묵묵한 감동이 없었으면 아마 바로 환불했을 것 같아요. (웃음)
ㅎㅇ : 첫 수업 때까지 나를 데리고 가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첫 수업 때는 계속 이걸 할지 말지 속으로 주저했다고 하셨지만, 참미 님은 암장에 전화를 걸어서 일단 2개월 선결제부터 하셨잖아요. 운동과 거리가 멀었던 사람에게 선결제는 결심하기 어려운 지점이 아니었나요?
참미 :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내가 안 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극한의 상황에 놓아두면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해결하더라고요. 어느 정도 자기 객관화가 되어 있는 건, 운동을 하기 전에 인생에서 도망쳐 왔던 경험이 너무 많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
|
|
"이번만큼은 도망가고 싶지 않았다. 나를 기다려 주는 무언가가 있는 이 곳에 조금 머무르고 싶었다. 그게 말 못 하는 돌일지언정 말이다. (...) 고개를 들어 나를 기다리는 일곱 개의 홀드를 바라보았다. 아무런 말도 없이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는 홀드가 조금 야속하게도, 고맙게도 느껴졌다." (p.34, 《좋아하는 마음엔 실패가 없지》)
|
|
|
ㅎㅇ : 암장의 문턱을 넘을까 말지 고민하는 예비 클라이머들에게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 같은데요?
참미 : 추천할 때는 사람마다 지니고 있는 개성과 특성을 고려해요. 근력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클라이밍이 줄 수 있는 체력 증진에 대해 어필하고, 마음 근육을 키우길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운동이 버티는 마음과 스스로를 기다려 주는 마음을 배우게 해준다고 알려주고요.
ㅎㅇ : 그렇게 해서 데려간 사람들이 있나요?
참미 : 저는 아니고, 남동생은 꽤 많은 지인을 데려왔어요. 주로 일체형으로 2~3명을 함께 데려오더라고요. 남동생은 영업을 정말 잘해요. 클라이밍 센터장님이 엄청나게 좋아하시죠.
ㅎㅇ : 아무도 영업하지 못했지만 김혼비 작가님을 영업했어요.
참미 : 이해받았다는 느낌이 너무 행복해서 추천사 받고 처음에 조용히 울었어요.
|
|
|
"그간 꽤나 많은 종류의 운동 에세이들을 읽어 왔는데 책 속에 소개된 운동을 직접 하러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직 글만으로 사람의 무거운 몸을 일으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일을 (나에게 있어서는 최초로) 장참미가 해낸다." (김혼비 추천사 中)
|
|
|
✱✱
좋을 때도 좋지 않을 때도, 함께 하는 운동
ㅎㅇ : 책의 초반부에는 남동생의 소개로 운동을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남자 동료들의 가이드를 받는 등 전반적으로 남자들이 많은 세계에 홀로 들어간 자신을 그리고 있어요.
참미 : 운동의 특성에 따라 성별이 기울어지는 현상이 생기는 것 같아요. 클라이밍은 남초의 양상을 보이는 운동인데, 그래서 그들 사이에서 운동을 하면서 가끔은 나 혼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걸 받게 됐고요. 김혼비 작가님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민음사, 2018)에도 나오듯, 맨스플레인은 제가 운동하는 세계에도 있었는데요.* 그럴 때 고은 언니가 우아하게 한 방에 꺾어내는 걸 보면 뿌듯함을 느꼈어요.
* '맨스플레인'(mansplain): '남성'(man)과 '설명하다'(explain)의 합성어로, 여성들이 잘 모를 것이라 전제하고 남성들이 무턱대고 아는 척 설명하려고 드는 태도를 말한다. 미국의 인권운동가이자 저자인 리베카 솔닛이 처음으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
ㅎㅇ : 그러다 중반부에 가면 "세밀하게 쪼개지는 근육을 가진 여성 클라이머"로 묘사되는 고은 언니를 포함해 몇몇 여성 동료들이 등장 합니다. 운동을 주기적으로 함께 하는 여자 동료들이 있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가졌나요?
참미 : 맨스플레인에 대항하는 상황뿐 아니라, 나와 운동하는 언니나 여성 동생이 잘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성공한 것처럼 뿌듯함을 느껴요. 고은 언니에게는 이 책의 뒤에 나오는 영희 언니라는 또 다른 좋은 동료이자 선배가 있었거든요. 드문드문이더라도 점으로 연결되는 여성 운동 동료들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죠. 저도 암장에 신입 여성 회원이 들어오면 좀 더 다정한 동료가 되어야겠다고, 의식의 영역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다짐하게 돼요.
ㅎㅇ : 한편으로는, 운동하는 여성이 마음 편히 운동하는 것, 다른 걸 신경 쓰지 않고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경우가 있잖아요. 참미 님에게 운동을 가르쳐주는 암장 센터장님이 "40대 후반의 경상도 남자"임을 알았을 때 심리적 저항감은 없었나요?
참미 : 완전 있었죠. 무조건 하면 된다는데 나한테는 좀 강압적으로 느껴지고, 좀 더 친절하게 알려주실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을 저도 했죠. 책방을 운영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비교적 말을 고르는 사람들이었는데, 암장에서는 너무나 날 것의 말을 듣는 거예요. 센터장님은 제가 근래 겪어보지 못한 상대였고, 이런 부분만 고치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어요. 저는 암장에 돈을 지불한 유료 회원이고, 제가 느끼는 심리적 저항감을 다른 회원들도 느낄 수 있다고 보았고요. 암장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센터장님이 말투와 어조를 고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고쳐야 할 문제의 경계가 애매해졌달까요?
ㅎㅇ : 어떤 애매함일까요? 내가 풀리지 않을 문제에 매달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걸까요?
참미 : 결국 전 이 운동이 좋고, 센터장님의 가르침이 좋고, 센터장님은 그렇게 나고 자란 사람이니까 제가 너그럽게 보아야 하는 부분도 있는 거라고요. 표현의 방식만 걷어내고 보면, 또 다른 부분에서는 자신이 가진 운동인으로서의 신념을 지켜내기 위해 대단히 애쓴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사람은 누구나 약점을 가지고 있고 다른 부분에서는 강할 수 있으니까, 후자를 더 크게 보려고 애쓰면서 넘어가게 됐어요.
ㅎㅇ : 혹시 센터장님이 이 책을 읽고 후기를 들려주셨나요?
참미 : 특유의 무뚝뚝함을 담아 존댓말로 피드백을 주셨어요. 자기를 너무 멋있게 그려주는 것 같아 민망하다는 식으로요. 그 외의 클라이밍 동료들도 이 책을 읽어주고 있는 시기인데요. 우리의 한 시절이 담긴 이야기가 책이 되어서 나왔고, 그걸 우리였던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는 데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ㅎㅇ : 출간 소식을 알리시면서 “이 책은 나에 대한 책이 아니라 내 친구들에 대한 책이다”라고 쓰셨더라고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참미 : 남동생과 100일 챌린지를 했었어요. 남동생은 매일 자유 주제로 네 컷 만화를 그리고, 저는 매일 브런치에 클라이밍에 관한 짧은 글쓰기를 올리는 식으로요. 클라이밍으로 100편을 쓰는 건, 편당 분량이 짧긴 했지만 크게 어렵지 않았어요.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 보니, 항상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아줬던 암장 동료 진한이 덕분이었어요. 보는 눈이 있어서 제가 100일 챌린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한 명의 독자가 진한이에서 고은 언니로, 센터장님으로, 클라이밍 하는 친구들에게로 이어졌어요. 그들이 읽어주지 않았더라면 이 책도 나올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
|
|
✱✱
동업자, 큐레이터, 가족
ㅎㅇ : 참미 님의 챌린지는 해피엔딩인데, 그나저나 남동생도 챌린지에 성공하셨나요? 참미 : 둘 다 성공했어요. 사실 저희가 100일 챌린지를 자주 해요. 지금까지 네 번 정도 한 것 같아요.
ㅎㅇ : 성실한 남매네요. 아마 책방을 연다고 했을 때, 어떻게 동업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아요. 책방에서는 서로를 오누이-오라비라고 부르시던데, 오누이북앤샵이 오픈 6년을 향해 가고 있는 시점에서 동업자로서의 오라비는 어떤 사람인 것 같나요?
참미 : 오라비는 웃으면서 할 말을 다 하는 사람이에요. 일할 때는 프로페셔널하고요. 저는 가족이니까 좀 허술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동업자이자 가족으로서의 동생은 저보다 나은 것 같아요.
ㅎㅇ : 좋은 조합이네요. 참미 : 동생. 제가 동생 너무 좋아해요. 동생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어요.
ㅎㅇ : 사실 저도 남동생 좋아합니다. 참미 : 그런데 그런 누나들이 많지는 않잖아요.
ㅎㅇ : 맞아요. K-장녀인데 남동생과 사이가 좋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세상 인간이 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남동생이 꼭 필요한 가족 구성원이라고 생각 하지만 동업을 해볼 엄두는 못 냈거든요. 게다가 그 아이템이 책방이다? 참미 : 맞아요. 특이한 조합이라고들 하세요.
ㅎㅇ : 이 책에 나온 오라비는 숙련된 큐레이터처럼 느껴져요. 참미 님에게 클라이밍을 권한 것도, 책방을 시작하기 전에 꼭 읽어봐야 할 책들을 소개한 것도 모두 오라비라고요. 그럼 반대로, 참미 님이 최근 설득에 성공한 사례가 있었나요? 참미 : 질문을 받고 깨달았는데요. 한 번도 없어요.
ㅎㅇ : 시도조차 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참미 : 그런 건 아닌데요. 제가 오라비한테도 물어봤어요. "나는 살면서 너를 설득한 기억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데 혹시…… 있었어?" 하니까 그런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관계에 대해서 성찰하게 됐는데요. 동생은 늘 어떤 프로젝트에 관여 되어 있고 거기서 뭔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제안하는 역할이에요. 저는 받아들인 걸 끝까지 밀고 나가려 하고 필요한 순간에 수습을 하고요. 임대 기간이 끝나면 그만하게 되는 프로젝트들이 있잖아요. 오라비가 2년 이상 지속한 프로젝트는 많지 않은데, 저희는 피를 나누기도 했고 임대 이슈도 적었고 해서요.
ㅎㅇ : 역할 분담이 잘 된 거네요. 참미 : 동생이 그런 이야기도 덧붙이더라고요. 누나한테 설득당한 적은 없지만, 항상 누나에게 내 생각을 공유해야 한다고는 생각한다고요. 동생은 대체로 명확하고 뚜렷해요. 저는 그보다는 모호하고 흐릿하고 애매하고요.
ㅎㅇ : 어렸을 때부터 그런 관계였나요? 참미 : 고등학생 즈음부터 동생이 친한 친구에 버금가는 대화 상대가 되었는데요. 예술과 문화 분야에서는 동생이 늘 한발 앞서나가 있는 느낌이었어요. 그래도 말씀하신 것처럼 신뢰할 만한 큐레이터가 있다는 건 너무 행복한 일이에요. 저는 이제 명확하고 뚜렷한 제안을 선택하고 받아들일 돈만 있으면 돼요. (웃음)
|
|
|
✱✱
여전히 망설이고 주저하더라도
ㅎㅇ : 대화가 끝을 향해 가고 있어요. 실패가 없는 ‘좋아하는 마음’을 잘 담아낸 콘텐츠 추천을 청하려고 해요. 참미 :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2020)에서 박은빈 배우가 연기한 송아 캐릭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송아는 재능이 없는데 바이올린을 너무 사랑해요. 계속 지속해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면서 시간을 보내고요.
|
|
|
© SBSㅣ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참미 : 저는 항상 뭔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재능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잘해야 더 좋아할 수 있다고, 공들인 만큼 결과가 좋아야 마음 또한 지속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송아는 결국 바이올린 연주자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연주를 기획하는 공연 기획자로서 약간 방향을 트는데요. 저는 그게 정말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어요.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끝까지 밀고 나가서 성취를 얻는 것도 좋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그걸 실패라고 부르지 않을 수 있을 만한 다양한 종류의 삶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요.
ㅎㅇ : 이 책에는 아이돌, 게임 등을 좋아하는 마음도 들어 있잖아요. 요즘 가장 많이 마음을 기울이고 있는 건 무엇인가요? 참미 : 지금 저는 달리기에 미쳐있어요. 인생이 달리기 위주로 굴러가고 있거든요. 얼마 전에 JTBC 서울 국제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고, 내년 3월에 또 하나의 마라톤을 앞두고 있고요.
ㅎㅇ : 클라이밍 책 쓰시면서 풀코스 완주를 하신 거예요? 참미 : 클라이밍과의 한 시절을 이 책에 담았다면, 달리기하는 시간은 영상으로 남겨두고 있어요. 클라이밍 할 때 너무 좋았던 기억들이 있으니까 마라톤을 준비하기 전에 딱 느낌이 왔어요. 어떤 것이 나에게 좋은 것을 줄 때 그걸 놓치지 않을 방법을 가지고 있어야겠다. 앞으로도 글, 영상 무엇이든 기록하며 붙잡아 두는 식으로 인생을 살게 될 것 같아요.
ㅎㅇ : 달리기에 빠지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참미 : 제가 뭔가를 몇 년이고 좋아하는 마음은 늘 사람 때문이에요. 운동의 속성 자체가 좋고, 인생에 비유해서 느껴지는 깨달음 같은 것도 있지만, 제게 운동은 사실 사람들을 만나서 떠들고 놀기 위한 수단이에요. 혼자 하면 나를 달래가면서 해야 하는데 분명 마라톤까지는 못 했을 거예요. 하프 마라톤은 혼자 준비했는데, 풀코스는 꼭 다른 사람이랑 같이 준비해야겠더라고요. 오래 재미있게 하고 싶어서 사람이 필요해요. 그래서인지 사는 게 너무 신나고 재미있어요.
|
|
|
"좋은 것은 언제나 약간의 무리를 통해 얻어진다. 모든 일을 관성에 의해서 하고 그 속에서 위안을 찾던 내게 클라이밍이라는 변수가 찾아왔을 때가 그랬다." (p.217, 《좋아하는 마음엔 실패가 없지》)
|
|
|
ㅎㅇ : 자신의 굳은살과 말랑말랑한 속마음이 이 책에 각각 어떤 비중으로 담긴 것 같나요?
참미 : 이건 ‘과정’에 대한 이야기고, 단단해지기까지 제가 계속해서 의식했던 저의 말랑말랑한 마음이 더 많이 담겨 있다고 봐요. 그렇지만 독자들에게 제 서사가 '이 사람은 계속 운동을 하네. 이렇게 계속 실패하는데도 또 해내려고 하는구나'라고 읽힌다면, 오히려 굳은살처럼 단단한 이야기 그 자체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사실 분리하기는 어려워요. 어떨 때는 운동이 너무 힘들었다가, 어떨 때는 굉장히 좋다는, 그런 반복과 순환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ㅎㅇ : 《좋아하는 마음엔 실패가 없지》을 읽기 전에, 인생에 클라이밍을 들여놓은 사람의 비포 앤 애프터를 견줄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참미 : 저 진짜로 사는 게 재미있거든요. 그런데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된 게 얼마 안 됐어요. 그 시작은 분명 클라이밍이었고, 그래서 제게 고마운 운동이에요. 하지만, 클라이밍을 해서 제 삶이 크게 바뀐 건 아니에요. 이전보다 조금 덜 주저하지만, 여전히 저는 망설이는 사람이에요. 크든 작든 간에 확실히 변화가 이루어지는 방향을 향해 가고 있을 뿐이고, 이런 바람을 가지신 분들이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
|
|
타고난 재능도, 죽도록 열심히 할 자신도 없지만 좋아하는 마음의 힘으로 일단 한번 가 보겠다는 우리들을 향해 외치는 장참미의 '나이스!' 《좋아하는 마음엔 실패가 없지》의 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아래 버튼을 통해 이벤트에 응모해주신 분들 중 구독자 총 5분께 도서를 증정합니다.
|
|
|
월요일에는 대중문화를 큐레이션 하고
목요일에는 못다 한 이야기를 보냅니다.
지금까지 5,308분의 구독자와 함께하고 있어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