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엔딩까지 천천히' 영화 처방사 이미화 본격 영화를 처방해드립니다
《엔딩까지 천천히》 이미화로부터
지난 4월 말부터 2주간 <콘텐츠 로그> 구독자 분들에게 사연을 모집 했습니다. 오늘 레터에서는 다음 네 가지 사연을 소개하고, 이미화(미화리) 작가가 영화(및 드라마)를 처방 해드립니다. 오디오 풀버전은 여기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 영화 처방을 기다리는 사연들
① 7년간의 취미 생활을 끝냈습니다.
② 잘 쉬고 싶어요.
③ 외롭고 싶어요.
④ 집에서 영화를 못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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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화 《엔딩까지 천천히》(2024, 오후의소묘)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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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연 생각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 님
"7년간 해왔던 취미 생활을 끝냈습니다. 그게, 어떤 누구를 좋아하는 일이었는데요. 그 긴 시간 동안 내내 '정말 하나도 변함이 없구나' 싶게 좋아해왔거든요. 그렇게 좋아하고, 시간을 쓰고, 많은 정성과 애정을 쏟았던 그 일을 종료하기로 마음 먹고 나니 기분이 정말 묘하더라고요. 일단 시간이 굉장히 많아졌고요. 다른 일들을 정말 열심히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좀 심심하고요. 조금 헛헛하고. 잘한 선택인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끝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까? 라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하곤 합니다. 요즘엔 비워진 그 시간들을 정말 어느 때보다 다양하게 채워보고 있어요. 새로운 취미를 늘리고, 일에도 더 시간을 쏟고, 책과 영화를 많이 보고요. 다 좋아졌는데, 제 바뀌고 있는 모습에 저도 꽤 만족을 하는데요, 한 편으로는 계속 마음 한 구석이 허해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겠다는 것도 아니면서요. 이런 저에게 처방해주실 영화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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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리 이 분께는 드라마 <오오마메다 토와코와 세 명의 전 남편>을 처방해 드리고 싶습니다. 해인 님도 보신 드라마죠?
ㅎㅇ 네, <괴물>의 각본가인 사카모토 유지의 작품이죠.
미화리 제목 그대로 ‘오오마메다 토와코’가 세 명의 전 남편 하사쿠, 카타로, 신신과 이혼한 후의 에피소드를 그린 10부작 드라마입니다. 토와코는 첫 번째 남편 하사쿠 사이에서 낳은 딸 유타랑 단란하게 잘 살고 있어요. 건축회사 사장으로서 책임도 다 하고 있고, 아침마다 체조도 하고, 건강하게 요리도 만들고, 친구도 만나면서 평화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는데요. 문제는 집의 베란다 방충망이 빠지면서 시작 됩니다. 방충망을 껴도 빠지고, 또 껴도 또 빠지고, 근데 그 때마다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걸 실감 하는 거예요.
ㅎㅇ 남편이 없어서요?
미화리 있었다가 없으니까요. 원래부터 없었다면 익숙했을 지도 모르죠. 딸은 그걸 볼 때마다 고쳐줄 애인을 만나라고 하지만, 토와코는 방충망 때문에 누굴 다시 사귀는 건 싫은 거예요. 이 드라마는 결국 토와코가 스스로 방충망을 고칠 수 있게 되기까지, 그가 만난 사람들, 그리고 다시 사랑을 시작해보려 시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어요.
ㅎㅇ 전 남편들이 그거 고쳐주려고 자꾸 토와코 집에 들어오죠?
미화리 너무 자주 와요. 귀찮게. 그 때마다 방충망이 고쳐진 것처럼 보여도 그 사람이 집을 떠나면 다시 고장나길 반복해요. 마지막 화에서는 결국 토와코가 그것을 달인처럼 고쳐버려요. 그래서 이 드라마는 주인공이 세 명의 전 남편과 제대로 이별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해요.
딸 유타는 아빠가 생길 때마다 시즌제라고 하거든요. 생부는 시즌1, 두 번째 아빠는 시즌 2, 세 번째 아빠는 시즌 3예요. 그래서 드라마를 다 보고나면 토와코의 시즌 4가 기다려지기도 하고, 오히려 그가 시즌 4 없이도 딸이랑 충분히 잘 살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대사가 있어요. “방충망이 계속 빠져. 그 때마다 도와줄 사람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한 번 더 연애하자. 방충망이 빠질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해. 이번에는 평생 함께 할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네 번째 결혼이 있을까? 하고 말이야. 그런데 그 상대는 당신들이 아니야. 앞으로 만날 사람한테 방충망을 고쳐달라고 할 거야. 난 내 행복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
사연자 분에게도 지난 7년의 시간이 시즌 1이었을테니, 이제 자신의 시즌 2를 기다려보시는 건 어떨까 싶어서 이 드라마를 가져왔어요. 남자친구를 만들지 않으려는 친구와 토와코가 나누는 대화도 인상적인데요.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해요. “어떤 지가 궁금해. 그런 일(이혼을 세 번 한 일)이 있고도 여전히 다른 사람과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말이야. 아무 것도 안 남는 느낌인지 그게 궁금해.” 토와코가 답 하죠. “뭔가 안 남는 이별은 없어.” 아마 사연자 분에게도 뭔가가 남았겠죠? 그게 인생에서 좋은 실마리가 되어줄 테고요.
ㅎㅇ 어떻게 방충망으로 이렇게 10부작을 끌어갈까 새삼 놀랍고요. 이 드라마는 유사 가족 이야기잖아요. 믿을 수 없을만큼 생부 외에도 다른 두 아빠와도 잘 지내는 딸. 대사 이야기를 자꾸 하게 되는데, 제가 3~4년 전에 보고 메모해둔 대사에는 이런 게 있어요. “스시 먹을 때 일일히 죽은 참치 맛있어, 죽은 새우 맛있네, 하고 말 해?”
미화리 왜 꼭 나를 전 남편이라고 부르느냐, 스시 위에 있는 새우를 죽은 새우라고 하지 않으면서 라고 하면서 전 남편 중 한 명이 그런 말을 하죠.
ㅎㅇ 이런 대사를 어떻게 쓸까 싶고요. 중요한 건 주인공 오오마메다 토와코 역을 맡은 ‘마츠 다카코’의 연기죠. 이 분은 정말…
미화리 일본에서 (영화 <4월 이야기>로) 첫사랑의 아이콘이었잖아요. 그런데 이혼한 여성으로 등장하는 게 저에게는 센세이션하면서 좋았어요. 그리고 이혼한 남편들과의 이야기라고 하면 분노 밖에 없을 것 같잖아요. 국내 드라마는 그런 경우가 조금 많죠. 근데 이 드라마에서는 그들을 미워만 하지 않는데, 그런 감정을 사연자 분도 느끼고 계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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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연 푸른바다거북이 님
"저는 평소에 뭐든 잘 무리하게 되는 편이라, 주변에서 적당히 애쓰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요. 지난 몇 년 간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타이트하게 굴러온 삶이 최근 들어 좀 느슨해지고 있어서 어떻게 하면 이 시기를 잘 쉬면서 넘어갈 수 있을까, 고민 중입니다. 저는 일상에 자그마한 틈이라도 생기면 무언가를 쌓으며 정비하고 싶어지거든요. 내가 하는 일이 나한테 반드시 생산적인 기여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머리로는 생각을 하는데 행동은 자꾸만 다르게 움직이려고 하네요. 다가오는 하반기에는 부디 ‘휴식’에 어울리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특히 에너지를 많이 쏟지 않는 방향으로, 좀 게으르게 쉬는 연습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걷는 게 거의 유일하게 쉬는 방법 중 하나인데, 그걸 좋아하는 나머지 또 너무 오래 걸어버리곤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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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리 사실 ‘쉼’에 관한 건 일본 작품이 많은데 앞서 제가 일본 드라마를 처방했기 때문에 일부러 다른 나라의 영화들을 찾아봤어요. 이 분께 처방해드릴 영화는 <이탈리아 횡단 밴드> 입니다.
수학 선생님인 니콜라가 수년간 취미로 악기 연주를 해 온 친구들과 팀을 만들어서 이탈리아의 어느 지역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에 참가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로드무비예요. 근데 페스티벌이 열리는 지역까지 걸어서 이탈리아를 횡단하는 게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이들은 왜 굳이 그 먼거리를 걸을까요? 이런 대사가 있어요. “삶은 너무 짧은 여행이다. 그러니 길게 만들자. 우리에겐 낭비할 시간이 많다.” 그러니까, 시간을 낭비하겠다는 게 이들의 목표입니다. 네 명의 밴드 팀원들이 말에 술과 장비를 싣고 열흘동안 걸어가면서 길거리 공연을 하는데 이걸 또 기자와 카메라맨이 동행하면서 다큐 촬영을 해요. 근데 버스킹이라고 해봐야 관객도 없고, 자기들끼리 그냥 대충 노래 만들어서 부르거든요. 이런 의미 없는 장면이나 찍고 있으려니 너무 한심하잖아요. 그래서 중간에는 카메라맨이 공테이프가 없는데도 찍는 척을 해요. 테이프 낭비거든. 기자도 자기가 보기에 매일이 똑같으니까 다음 마을까지 자기는 그냥 차를 타고 가겠다고 하면서, 이들을 버리고 떠나요. 모든 사람들이 진짜 쓸 데 없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거든요. 베이시스트인 프랑코는 낚시가 취미인데 잡은 물고기는 바로 풀어줘요.
기타리스트인 살바토르는… 얘가 가장 쓸 데 없어요. 결혼을 앞둔 여자들만 좋아해. 심지어 의대를 다니다가 그만 둔 이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만 나와요. 이 남자들 즐거워 보이긴 해. 근데 그게 의미 있는 여행인가 싶어요. 결과적으로 마지막 날 길을 잃어서 축제가 다 끝나고서야 밤 늦게 축제장에 도착합니다. 근데 이들이 여행 자체의 목적은 이룬 것 아닌가 싶더라고요. 쓸데 없는 일이라는 게 그런 거잖아요.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닌 것. 거기에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되는 것. 그래서 아무도 없이, 쓰레기만 굴러다니는 축제장에서 자기네들끼리 공연을 하면서 영화가 끝나요. 근데 그 공연과 함께 그동안의 여정을 보여주는 씬들이 나오는데 그게 갑자기 저한테 추억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관객으로서 영화를 볼 때는 진짜 쟤네 왜 저러냐 싶었던 것들이, 뭔가 갑자기 아련해지면서 나도 같이 여행을 한 느낌이 드는 거죠.
기자가 중간에 자기 촬영 그만하겠다고 할 때 카페에서 만난 알바생이 이렇게 말을 하거든요. “카페에서 일하다 보면 노인네들 얘기를 듣게 돼요. 보통 날씨 얘기나 젊은 시절 얘기인데, 날씨 얘기할 때와는 달리 젊은 시절 얘기할 땐 눈이 반짝여요. 나도 늙으면 손자에게 옛날 얘기를 해주겠죠. 이탈리아를 횡단하던 남자들 얘기 같은 거요. 함께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요.” 이 말을 듣고 기자는 다시 여행에 합류해서 이들과 같이 축제장까지 갑니다. 그래서 추억을 만들게 되죠. 이 기자도 나중에 손자에게 들려줄 쓸데 없는 기억이 생긴 셈이에요.
아마 여행이 끝났으니까 주인공들은 다시 자신의 쓸모를 되찾기 위한 일을 할 거예요. 쉴 때조차도 좀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쉬고 싶어 하는 사연자분에게는, 이 영화를 보는 시간 정도는 진짜 쓸데없는 시간이길 바라요. 어차피 이분은 영화 끝나면 다시 쓸모있는 일을 하실 게 분명하거든요. 그러니까 이 두 시간만이라도 마음껏 시간을 낭비하시길 바랍니다.
ㅎㅇ 쓸데 없이 시간 낭비하기 필요하죠, 우리 인생에서. 근데 축제 현장에 제 시간에 도착을 못 했어?
미화리 한심하기 짝이 없죠? 근데 그렇게 해야 이 영화가 완성 돼요. 끝에 가서 멋들어지게 공연을 했으면, 결국 의미 있는 일을 한 거라고 생각하게 되잖아요.
ㅎㅇ 그렇네요. 그리고 음악이 당연히… 좋겠죠?
미화리 네, 음악은 잘 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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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사연 익명 님
"외롭고 싶어요.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는 시간이 평생, 어쩔 수 없이 평생 남아있다는 사실에 너무너무 지쳐요. 자연을 특별히 사랑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사람의 모든 것이 싫어요. 고립을 원하는 일이 곧 죄악인 시대에 사람의 위협이 없다면 영영 은둔의 길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꼭 한 명 분의 숨소리, 발자국 소리 외에는 사람 아닌 것의 소리 혹은 묵음으로 침잠하는 영화를 찾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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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ㅇ 일단은 처방 영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이 확실하신 분입니다.
미화리 사연자님과 같은 고민을 가지고 절대 고요를 찾아 떠난 남데브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ㅎㅇ 그래서 영화 제목이?
미화리 <절대 고요를 찾는 남데브 아저씨>라는 제목의 인도 영화입니다. 남데브 아저씨는 집에서는 가족들의 소음, 일터에서는 사장님의 끊임없는 불평 불만, 거리에서는 빵빵거리는 차 소리 때문에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으로 떠나고 싶어 합니다. 집에서 평소에 아내와의 대화는 이런 식이에요. 남데브가 “나 떠날 거야”라고 하니까 “갈 테면 가. 우리는 신경 쓰지 마. 여기서 굶어 죽을게.” 그래서 남데브가 숨겨두었던 돈을 꺼내줘요. 그랬더니 아내가 하는 말이 “돈이 왜 이렇게 많아? 강도한테 당하라고? 날 죽일 작정이야? 이 동네에서 저런 돈 있는 거 알면 난 바로 죽음이야.” 그러니까 뭐 한마디를 하면 그거에 대한 백마디를 돌려주는 아내인 거예요. 그래서 견딜 수 없어진 남데브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곳이라는 침묵의 계곡이 있는 ‘라다크’로 혼자 떠나게 됩니다. 소음이 가득한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라도 덜어내려는지 거의 아무 말도 안 해요. 영화가 진행되는동안 남데브 아저씨 목소리를 진짜 조금밖에 못 듣거든요.
그런데 알리크라는 수다쟁이 아홉살 소년을 만나요. 자신을 붉은 성에 데려다 달라고 하면서 옆에서 쉴 새 없이 떠들기 시작해요. 남데브는 이 아이를 떼어내려고 해도 잘 안 되요. 근데 어린 아이가 혼자 여행하는 게 안쓰럽기도 하니까 매몰차게는 못 해요. 같이 침묵의 계곡으로 가는데요. 가는 길의 경관이 압도적이예요. 눈이 즐겁거든요. 광활하고, 유목민들이 사는 마른 풀이 있는 땅 있잖아요. 배경을 찾아봤더니 인도의 북쪽에 있는데, ‘사막의 오아시스’라고도 불리는 신비한 땅이라고 합니다. 연중 서늘한 기온이라, 인도 사람들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향하기도 한데요.
ㅎㅇ 약간 평창 같은 건가?
미화리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근데 겨울에는 못 간대요. 라다크를 방문할 수 있는 기간은 연중 평균 3~4개월 정도이고요. 뉴델리에서 버스로 꼬박 이틀을 달려야 도착해요. 저 뒤로는 히말라야 산맥이 있어서 몇 겹의 산세가 보이는데 그게 영상으로만 봐도 너무 멋있어서 직접 보면 황홀하겠다 싶더라고요.
남데브 아저씨와 알리크는 오랜 시간이 지나 침묵의 계곡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이곳이 관광객과 견학 온 학생들 때문에 시끄러운 거예요. 관광지가 되버린 거죠. 실망한 남데브 아저씨는 그제서야 목소리를 내요. “어디에도 평화는 없어. 이제 난 어쩌지? 난 조용할 때 행복한데. 다 꺼지라고 해.” 그러면서 이제 알리크를 붉은 성으로 데려다 주려고 하는데, 여기서 알리크의 숨겨진 이야기를 알게 됩니다. 결국, 남데브 아저씨는 고요를 찾으러 떠났다가 다른 걸 얻게 되는데요. 무엇을 찾았는지는 영화를 통해 확인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영화라는 게 그런 것 같거든요. 필요한 걸 찾으러 떠났지만, 결국엔 다른 걸 찾게 되는 주인공을 보여주는 장르요. 사연자 분도 고요를 찾고 있지만 사실 고요할 수가 없는 현대 세상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잖아요. 남데브 아저씨처럼 자기만의 다른 무언가를 찾길 바라면서 이 영화를 가져왔습니다.
ㅎㅇ 뭘 찾았는데요? 힌트를 줘요. 고요 대신 뭘 찾았는데요? 다른 더, 의미 있고 값진 것?
미화리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만, 알리크라는 소년을 통해서 뭔가를 찾게 됩니다. 영화 보는 재미를 위해서 남겨두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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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ㅇ 세 편의 사연을 읽었는데요. 하나 정도를 더 꼽아보면 어떨까요. '광명시에는 왜 독립극장도 없고 아트하우스도 없을까' 이게 닉네임이시고요.
미화리 이미 닉네임부터 고민이야.
ㅎㅇ 아무튼, 광명시 거주분 거주자분이 보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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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사연 광명시에는 왜 독립극장도 없고 아트하우스도 없을까 님
"요즘 집중력이 떨어져서 집에서 영화를 못 봐요... 집에 있으면 영화보다가 자꾸 딴 거 챙기고 핸드폰 연락봐서 중간에 멈췄다가 다시 돌아갔다를 반복합니다. 그래서 실제 영화 러닝타임보다 시간을 더 소비하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에 집중한 순간은 별로 없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이제는 영화관이라는 공간에 저 스스로 셀프감금을 해야 영화를 완주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관심 있었던 영화가 영화관에서 종영하고 OTT에 풀리면 역설적으로 그 때부터 그 영화를 못 보게되는 현상에 시달리고 있어요. 이런 상황을 해결해줄 수 있는 영화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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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리 굉장히 어려운데요. 영화에 집중하기 힘드신데 제가 영화를 처방해야 되는?
ㅎㅇ 그쵸. 그게 처방사의 일이죠.
미화리 저의 빈틈을 노리는 고민이예요.
ㅎㅇ 저는 이 사연이 너무나 이해가 됩니다. 그러니까 내 손 안에 들어오면 오히려 재생을 하지 않게 돼요. OTT에 풀리면 은근히 안 봐. 근데 OTT에 없어? 어떻게든 찾아서 보게 됩니다. 요즘은 영화 배급사에서 SNS 운영을 열심히 하시잖아요. 이 영화, 이번주에 종영합니다. 이러면 막 극장 달려가서 봐요. 극장에도 있는데 VOD 동시 오픈됐습니다. 그럼 안 봐요.
미화리 왜 그러는 거예요?
ㅎㅇ 그런 희소성이 있는 것과 아닌 것을 대하는 차이 같기도 하고요.
미화리 그래서 해인 님이 마지막 날에 영화 <마르셀, 신발 신은 조개>를 봤던 거구나.
ㅎㅇ 맞아요. 이게 이 주인공이 조개 껍데기거든요. 근데 1인치야 키가. 어린 조개 껍데기와 할머니 조개 껍데기가 주인이 집을 떠나면서 남게 되면서, 이곳에 다시 오게 된 다른 인간들이 조개들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려요. 이들의 원래 집 주인이었던 사람을 찾아달라고 하는…. 그런 온라인 로드무비라고 해야 할까요? 일단 너무너무 귀엽고 보고 있다보면 구겨진 마음이 펴집니다.
미화리 귀엽네요.
ㅎㅇ 1인치짜리 조개. 진짜 너무 귀여워요. 인간이 조개 할머니와 주인공을 찍는다는 점에서,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고요. 어쨌든 애플TV+가 저에게 알림을 해준 거였죠. 이번 달 31일에 내려갑니다. 그래서 저는 31일에 봤어요. 너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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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리 저는 100% 풀 집중을 하지 않아도 중간중간 딴짓 하면서, 멈췄다 다시 봐도 괜찮은 영화들을 두 개 정도 가져왔어요. 먼저,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입니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이 포토그래퍼 JR과 프랑스 소도시를 누비면서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프로젝트를 담은 다큐멘터리인데요. 만난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커다란 포토 트럭으로 출력한 사진을 그 사람에게 의미있는 장소에 붙여서 도시 자체를 갤러리로 만들어요. 바르다는 90세, JR은 35세인데, 이 두 사람이 세대를 뛰어넘는 친구가 되어 나누는 대화들도 너무 좋고요. 또 예술에 대한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데, 심오하거나 깊어서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아니라 소도시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일상적인 대화로 완성되는 말들이어서 마음에 오래 박히게 됩니다. 그리고 이게 완전한 다큐멘터리로 보기에는 조금 극화된 부분들이 있어요. 그런 부분이 오히려 집중력을 높여준달까요?
두 번째는, 일단 이 영화를 완주하고 나면 그것만으로도 뿌듯해집니다. 그런 만족감을 위해 가져온 영화인데요.
ㅎㅇ 단, 한 번의 만족감을 경험해라?
미화리 그럼 그 다음 영화들은 그냥 껌이야, 이걸 다 봤다면! (웃음) 영화 <홀리 모터스>예요. 드니 라방이 연기하는 오스카가 ‘홀리 모터스’라는 고급 리무진을 타고 파리 곳곳을 다니면서 어떤 캐릭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내용인데요. 리무진 안에서 오스카가 계속 분장을 해요. 그리고 홀리 모터스가 세워주는 곳에 내리면 그 캐릭터가 돼요. 광대, 거인, 암살자, 아빠, 헤어진 연인이 되는데... 근데 그 의미를 나는 하나도 모르겠어. 왜 오스카가 이런 걸 하는지 모르겠어요. 역할과 역할 사이에 어떠한 맥락도 없어 보이거든요. 처음에는 뭐이런 영화가 다 있어 하면서 봤는데, 다 끝나고 나 막 일어나서 박수 쳤잖아. (웃음)
ㅎㅇ 왜죠?
미화리 몰라요. 제 안에서 저도 모르게 예술적인 고양감이 막 차오르더라고요. 이건 명작이야. 하면서 제가 박수를 치고 있더라고요. (웃음) 꼭 집중하지 않아도 되고, 이해하려 들지 않아도 되는 영화라서, 이걸 한번 보시면 어떨까. 그러니까 집중이 안 될 때 집중이 안 되는 영화를 처방해버리는 이열치열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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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ㅇ 근데 이렇게 맥락이 완전히 해체된 영화를 보면 ‘나 이거 끝까지 본 게 용하다’ 하는 분들도 있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한 단서를 영화가 끝나고 막 찾아보는 분들 있잖아요. 그럼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요?
미화리 근데 그럼 그 영화가 더 좋아지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찾아볼 수록 아, 이게 이런 거였구나 하면서.
ㅎㅇ 설득력 있는데?
미화리 근데 이분이 독립극장이나 아트하우스 자주 다니시는 거 보면, 영화에 대한 이해도도 높으실 것 같아요.
ㅎㅇ 그렇습니다. 이게 사연의 단서였죠.
미화리 그래서 괜찮을 것 같아요.
ㅎㅇ 어디로 다니실까요? 광명시에 사시는 이분은. 경기도 광명시. 저도 경기도민이기 때문에 주로 광화문에 있는 씨네큐브에가긴 하는데요. 집에서 1시간 넘게 걸리거든요.
미화리 너무 먼데요.
ㅎㅇ 그래서 나오면 두 편을 보는 거예요. 아트하우스 영화를. 머리가 아주 그득그득 무거워지지. 그리고나서 영화 끝나고 밤새 감독 인터뷰를 찾아보다 자는 거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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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에는 못다 한 이야기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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