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뉴스레터 <스튜!> 에디터와 함께 서귤 장편소설<디 아이돌>을 읽으며 떠오른 음악들 ㅡ
진행. ㅎㅇ
10일에 한 번씩 뉴스레터 <콘텐츠 로그>를 보내고, 격주로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에서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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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손님. 레몬
10일에 한 번씩 케이팝 뉴스레터 <스튜!>를 보낸다. 케이팝이라면 일단 듣고 보고 맛보지만, 가끔 다 먹고 후회하는 편. |
EP36. "그 프로그램에 진정성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ㅎㅇ 오늘의 선정 도서는 서귤 작가의 《디 아이돌》입니다. 이 작품은 2021년 제 9회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 했는데, 수상 당시 작품명이 '소년 단죄'였더라고요. 줄거리를 이야기해볼게요. 극 중 국민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디 아이돌>은 이미 시즌 2까지 성공적으로 프로그램을 마쳤어요. 그러다 시즌 3 촬영 중에 한 연습생이 갑작스럽게 사망을 하게 되는거예요. 남아 있는 연습생 열 명 중 진범을 찾는 특별편이 편성되고, 여기서부터 오디션 프로그램의 문법에 따라 총 5회차에 걸쳐 범인을 찾게 됩니다. 국민 프로듀서가 국민 배심원이 되는 구조인 거죠.
특별편의 제목이 <디 아이돌: 소년 단죄>인데요. 초반에 이런 장면이 있어요. "이번엔 새로운 검색어로 '단죄 뜻'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단죄(斷罪) 1. 죄를 처단함. 2. 죄로 단정함."(p.25) 우리가 단죄라는 말을 평소에 잘 안 쓰잖아요. 그래서 프로그램 1화가 방영되고 나서 네티즌들이 '단죄'를 인터넷에 엄청 검색해보고, 그게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걸 묘사한 거예요.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영화 <헤어질 결심>의 서래(탕웨이)가 '붕괴'를 검색하는 장면,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구씨(손석구)가 '추앙'을 검색하는 장면이 차례대로 떠올랐어요. 일상에서 잘 안 쓰는 단어를 뜬금없이 등장시키는 게 '대작의 조건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더라고요.
레몬 '단죄'가 일상생활에서 쓸 일이 없는 단어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에게 더 만족스러움(또는 짜릿함)을 전해주는 프로그램 제목이었다고 말하는 인물도 있었고요. 반면에, 이 소설에는 덕후 입장에서 볼 때 익숙했던 단어들이 많이 나와요.
ㅎㅇ 한마디로 현실 고증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깜짝깜짝 놀라면서 읽게 되죠. 저는 써방*을 이렇게 전면적으로 다룬 소설이 있었던가 싶더라고요. 프로그램 출연진 중에 '서노아'라는 연습생이 있는데, 팬들이 SNS에 포스팅 할 때 '서성경', '서홍수', '서방주'라고 쓴다는 설정이에요. 노아가 성경 속 인물이니까요.
* 써방: '써치(search) 방지용 용어'의 줄임말로, SNS에서 특정 아이돌의 이름 대신 그를 연상하게 하는 다른 단어들을 포함하는 경우를 말한다. 아이돌 당사자가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는 경우를 대비해, 팬은 각종 써방을 넣어 솔직한 기록 또는 주접을 이어나간다. 안티팬들이 이를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레몬 만일 '노아'라는 인물을 써방하고 싶다면 '로아'라고 한다든지…. 이름 중 한 글자만 바꾸는 방법도 있긴 한데 이 소설에서는 아예 단어를 바꾸어버렸죠. 팬들이 SNS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그대로 반영했더라고요. 제가 놀랐던 다른 포인트는, 특정 연습생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팬들끼리 연합해서 카드뉴스나 탄원서를 온라인에서 배포하는 장면이었어요. 어느 팬이 1인 시위를 하는 장면도 나오고요.
ㅎㅇ 프로그램 다음 화를 예고하는 장면들도 자주 나오는데, 제작진이 편집점을 기깔나게 잡았더라고요. 사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 환멸이 나는 지점 중 하나로 '예고편과 본방이 다를 때'가 있잖아요.
레몬 예고편으로는 대단한 일이 벌어진 것 처럼 온갖 흥미를 끌어 놓고, 본방에서는 그게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보여주니까 맥이 빠지는 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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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이돌》(2022, 위즈덤하우스)
ㅎㅇ 그럼 우리 이야기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Mnet <슈퍼스타K>, SBS <K팝스타>, Mnet <프로듀스101> 시리즈를 꾸준히 보아왔던 시청자이고요. (이번 에피소드 녹음 끝나고 생각 났지만, Mnet <WIN: Who is Next?>, Mnet <MIX & MATCH>도 열심히 봤어요.) 거의 지난 10여년에 걸쳐서 욕을 하든, 문자 투표를 하든, 오디션 프로그램을 계속 봐왔던 거예요.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니 특정 프로그램과 그에 얽힌 사건사고들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 방송국에 놀아난 것 같네' 라는 감상이 남는단 말이죠. 그래서, 왜 우리는 방송국에 놀아놨던 걸까 이런 대책 없는 질문을 한 번 던져보고 싶어요.
레몬 저도 최근 시청한 Mnet <I-LAND>를 비롯해서, 그동안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보아왔고 방송국에 놀아났던 사람 중에 한 명이거든요. 저는 프로그램을 진심으로 대하지만, 방송국은 이런 시청자들의 진심을 수익성이나 이슈 메이킹으로만 이용했기 때문에 놀아났던 게 아닐까요? 앞서 말한 것 처럼, 깊은 사랑을 품은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참가자를 위해 카드 뉴스를 만들고, 성명서를 만들고, 더 나아가 시위까지도 할 수 있어요. 그들이 당연히 돈도 더 잘 쓸 거고, 이것저것 활동을 열심히 할 걸 아니까, 이런 팬들을 이용해서 이슈를 만들고 눈길을 끌어보려고 하는 거겠죠.
* 국내 서바이벌-오디션 프로그램 총정리 편: 당신의 서바이벌에 투표하세요! (<스튜!> 14호, 20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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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ㅇ 《디 아이돌》을 읽고난 후의 전반적인 인상은 어떠셨어요?
레몬 제 예상보다 다크해서 놀랐어요. 극 중 프로그램의 컨셉 자체도 어두운데, 거기에 이걸 만들어가는 PD와 방송국 그 외 얽힌 상황들 또한 어둡고, 사회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ㅎㅇ 말씀하신 것처럼 사회의 민낯을 디테일하게 비추면서도, 덕후인 독자가 알 수 있는 무언가를 연상 시키는 씁쓸함이 남는 그런 소설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등장인물 중에 방송국 사람들이 나오는데, 장인혜 메인 PD와 유호성 조연출 PD 두 분은 꼭 어딘가에 살아계신 분들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이들이 왜 특별편을 편성할 수 밖에 없었는지, 합리화에 그칠 수도 있겠지만 자신들 나름대로는 기획 의도를 열심히 말하는 장면들도 있잖아요. 이런 것들이 하나도 낯설게 느껴지지가 않죠.
레몬 저는 분명 픽션을 읽고 있는데도 기사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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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ㅇ 모든 방송국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방송국이 문제라는 게(책임이 있다는 게) 이 소설에 드러나 있는 문제의식 중 하나에요.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장인혜 PD가 이런 말을 하는데요. "리얼 버라이어티니 관찰 예능이니 해도, 시청자들은 그게 대본인 걸 이미 알고 있잖아요. 더 날것의 갈등과 더 날것의 고뇌가 필요해진 거예요. 저는 그 핵심을 진정성이라고 말하고 싶어요."(p.47) 여기서 왜 진정성이 핵심일까요?
레몬 저도 이 문장을 읽고서 '내가 잘못 읽은 건가?' 싶어서 몇 번이나 다시 읽어봤거든요. 제가 알고 있는 '진정성'과 PD의 접근이 너무 다른 것 같아서 였어요. 보통 덕후들은 참가자가 열심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진정성이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소설 속 제작진은 어느정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걸 두고 진정성이 있다고 하니 아이러니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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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처음에는 '소년 단죄'라는 프로그램 컨셉을 보면서, 샤이니의 'Clue'가 떠올랐어요. 'Clue' 가사 중에 "숨 막히는 show time 서롤 향해 던지는 / 각자의 패를 들춰 내 숨은 가짜를 가려낼 시간 / 서두르지 마"라는 부분이 있거든요. 이 가사가 소설 속 범죄 서바이벌 프로그램 연습생들이 보여주는 모습처럼 느껴졌어요.
노래 제목이 생소하실 수도 있는데, 사실 들어보면 첫 소절부터 생각나는 노래가 다들 있으실 거예요. 엄청나게 메가 히트 친 노래인 '셜록'이요. 이 노래는 샤이니의 'Clue'와 'Note'를 섞어서 만든 곡이에요. 원래 이 두 곡 중 하나가 타이틀곡이 될 예정이었는데, 노래가 좀 심심하다 라는 이수만 선생님의 의견에 따라 "그럼 섞어보자!"의 결과물로 '셜록'이 나온 거예요. 이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을 때는 어떻게 이 두가지를 섞을 생각을 했을까 싶었는데요. '셜록'이 익숙한 분들이라면, 지금 소개해드린 'Clue'를 들으면서 '좀 빵 터지는 포인트가 적은데?'라는 인상을 받으실 수도 있어요.
ㅎㅇ 셜록은 정말 대중적인 노래임이 확실한 게, MBC <무한도전>의 작가님이 이 노래에 맞춰 안무를 추신 적이 있었잖아요. 그 때 제 주변 친구들이 다 셜록을 알게 됐어요. 예전에 <스튜!>에서 '셜록'처럼 전혀 다른 두 곡을 섞은 '하이브리드 리믹스 케이팝' 특집을 다루셨던 적이 있었던 적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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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그런데 소설이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피원하모니(P1Harmony)의 'Pyramid'가 떠올랐어요. 기본적으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피라미드 형식을 가지고 있고, 거기서 모두가 1등이 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죠.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는 프로그램 말고도 방송국과 관련 기업들의 권력 관계 또한 피라미드처럼 느껴졌어요. "Cage 안에 갇힌 채로 싸워가는 Fighter / 밀림 속에 군림하는 잔인한 King Lion / 끊임없는 배틀만 반복되는 중 / 지쳐가는 삶에 피어날래"라는 가사가 있어요. 연습생끼리 서로 헐뜯고, 의심하고, 외부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 라인을 타서 살아남고, 이슈를 만들기 위해 잔인한 방법을 추구합니다. 모두가 피라미드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더라고요. 아마 이 노래를 처음 들어보는 분들도 있으실텐데, 가사가 소설 속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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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ㅇ 마지막으로 제가 떠올린 곡은 더보이즈의 'Salty'입니다. 기본적인 미식 원리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요. 단 것만 계속 먹을 때보다, 단 것 위에 소금을 살짝 뿌렸을 때 훨씬 더 단맛이 배가 된다고 하죠. 저희가 이야기 나눈 '길티 플레져'와 관련 지을 수 있는 곡이에요. 범죄자를 가리는 프로그램이 한 달이 넘도록 방영되고, 자극적인 예고편이 있고, 시청률이 높아질수록 광고주의 프로모션이 붙고 있는데요. 이렇게 말도 안 되고 상식적이지 않은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이게 이미 충분히 단 데도 불구하고 더한 달콤함을 추구하는 우리의 모습을 닮은 것 같아요. "I'm sorry / sweet한 순간들 속 salty"라는 가사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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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 시간: 47분
2022년 즈음 되면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식은 것만 같지만, 우리네의 덕질 역사에 오디션 프로그램 이야기가 빠질 수 없으므로 장편소설 '디 아이돌'을 통해 새삼 우리를 돌아봅니다.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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