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걸'과 '트릭미러'를 중심으로 블로그 하는 여자들과 나
ㅡ 《버드걸》과 《트릭 미러》를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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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의 취미는 새를 보는 것이다. 헬레나는 훗날 남편이 될 크리스가 탐조라는 쿨하지 못한 취미에 빠져있기 때문에 자신의 친구들 사이에서 그리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안다. 헬레나에게 그 때까지 탐조 비슷한 경험이라고는 공원에서 비둘기떼를 마주하거나 바다에서 과자를 향해 달려드는 갈매기를 쫓아내는 게 전부였다. 그러던 그들은 ‘쇠덤불해오라기’를 보기 위해 하객들에게 양해를 구해 결혼식을 한 시간이나 늦출 정도로 취미활동을 공유 하는 사이가 된다. 이후 이 부부는 여러 번 탐조여행을 떠나는데, 어느 날에는 첫째 딸 아이샤와 생후 갓 9일 된 둘째 딸 마이아를 데려간다.
마이아가 일곱 살이 되는 해에, 크리스는 365일 동안 최대한 많은 종류의 새를 보러 다니는 해인 ‘빅 이어’를 보내기로 선언한다. 빅 이어는 한 사람이 관찰한 모든 새의 종류, 보게 된 시기, 장소를 적는 목록을 채워나가는 활동이다. 이 계획을 실행하려면 일하거나 학교에 가지 않는 주말마다 할 수 있는 온갖 사교생활 또는 집이 주는 안락함을 포기하고 새를 보러 떠나야 한다. 당연히, “새들은 인간들의 빅 이어에 신경도 쓰지 않으며, 대개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푸드덕 날아가 버리고, 찾아다니면 숨어버리고, 가장 불편한 시간대에 제일 먼 곳에서 짠 나타난다.” 어려서부터 조류도감을 즐겨 읽던 마이아는 그 해 총 325종의 새가 지닌 색의 깊이, 날개의 속도를 직접 보고는 탐조의 매력에 빠진다. 열한 살이 되던 해에는 <버드걸>이라는 제목으로 블로그를 여는데, 이토록 독특한 이력을 가진 어린이는 머잖아 유명 블로거가 된다. 2002년생 탐조인이자 환경·다양성 운동가 ‘마이아로즈 크레이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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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드걸》ㅣ문학동네
자신의 블로그 이름과 동명의 논픽션 《버드걸》을 쓴 마이아는, 처음에 블로그를 순전히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시작했다고 말한다. 인터넷에서 자신이 본 새들, 그리고 그것들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즐거움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어느 날에는, 키가 약 2m에 공룡과 칠면조의 교배종 같이 생겼으며 파란색 얼굴에 모히칸 스타일 볏과 빨간 육수를 달고 있는 ‘큰 화식조’를 본다. 또 다른 날에는, 전체 몸길이가 5cm밖에 안 되지만 날갯짓은 초당 90회까지 하는 ‘꿀벌 벌새’를 바라본다. 실은, 봤다고 할 수는 없다. “빽빽한 정글에서 벌새는 대개 눈에 보이기 전에 소리부터 먼저 들리는데, 가끔은 안타깝게도 결국 시야에 들어오지는 않는다”고 묘사 되어 있기 때문이다. 《버드걸》은 모르는 고유명사가 와르르 쏟아지는 책이다. “네가 아는 새 이름을 대 봐!” 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참새, 까마귀, 까치, 딱따구리……. 말고는 할 말이 없는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자주 당혹스러워진다. 세상에 새가 이렇게나 많구나. 240여 종에 달하는 영문 조류 이름을 우리말로 옮겨야 했던 번역가의 난감함을 짐작해보면서. 모두가 죽기 전에 최대한 많은 새를 보아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봐야 할 새는 언제나 많았고 다음 장소로 향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는 마이아의 말은 도파민 중독의 대안으로 탐조가 권장되는 세태의 허를 찌른다.
마이아가 묘사한 탐조인의 대표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탐조인들은 느긋하게 앉아서 아침 식사를 하지 않으며 절대 소화 시간을 따로 갖지 않는다. 먹는 건 일찍 일어나서 가는 길에 해결한다. 안 그러는 날이 없다.” 그들은 사륜구동차를 타고 험준한 지대로 이동하고, 동트기 전에 새가 출몰할지도 모르는 구역에 미리 도착해서 추위를 견디며, 코카 잎 재배가 합법인 지역을 탐조할 땐 코카 잎을 주기적으로 씹으면서 고산병을 이겨낸다. 새를 보기 위해 일곱 대륙으로 떠난 마이아의 일행은 조증과 우울증이 동시에 나타나는 양극성 장애를 진단받은 엄마다. “당시 내가 이해한 건, 엄마가 잠을 안 자면 슬퍼지거나 혹은 극단적으로 즐거워질 뿐, 절대 ‘보통’ 상태가 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엄마와 동행하기 위해 늘 무리해서 다음 탐조 여행을 계획하는 아빠도 있다. 엄마는 좀처럼 협조적이지 않고, 아빠는 바닥난 인내심을 또 한 번 시험 받는다는 기분을 느낀다. 그러나 마이아는 새를 보러 떠날 때마다 새 뿐만 아니라, 자신의 눈에 비친 두 사람도 본다. “부모님은 새를 보는 동안 서로를 더 잘 이해했고, 이는 그때도 지금도 사실이다. 두 사람은 특별한 언어를 공유했고, “와, 저 새 좀 봐, 정말 멋지지 않아?” 같은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마이아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본 새가 공식적으로 삼천 종을 돌파했을 무렵, 어느 쌍안경 제조 브랜드가 그 소식을 알리면서 <버드걸> 블로그는 본격적인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다. 그 때 마이아는 남미 삼림 파괴의 심각성을 알리는 포스팅을 올린다. 서식지 파괴로 인해 새들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남미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었고, 이후 마이아는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열린 기후변화시위에서 연설을 하게 된다. 이쯤 되면, 그레타 툰베리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되는데 마이아는 툰베리가 기후정의 운동계에 등장하기 3년 전부터 이 일들을 시작했던 활동가다. 그는 SNS에서 사람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토론을 주고 받는 걸 볼 때 신이 났고 자신감이 차올랐다고 한다. 동시에, 친구들에게 자신이 평범한 10대 소녀가 아니라 ‘버드걸’로서 어떻게 비칠지에 대해서 걱정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여름 방학을 보내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면 자신이 “너무도 쿨하지 않은 뭔가를 하고 왔다는 걸 애들도 알았기에 굳이 말을 꺼내지 않은 것 같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은 척 받아들여야 하는 날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새들을 보는 일만큼이나 새들의 생존에도 진심이었다.”
‘푸른목금강앵무’는 비범한 외양 탓에 남미 애완동물 거래에서 가장 많이 매매되는 조류 중 하나라고 한다. 1m에 달하는 날개, 청록색 깃털, 밝은 노란색의 배. 마이아가 볼리비아 탐조 여행에서 만난 푸른목금강앵무는 마치 드라마 <마인>의 ‘노덕이’를 연상시킨다. 내 기억에 역대 K-드라마에 등장한 조류 중에서 가장 큰 피지컬과 그에 비례하는 존재감을 가진 배역이 바로 공작새인 노덕이었다. 재벌가에서 마음을 주고 의지할 사람이 없던 ‘양순혜’(박원숙)가 사랑을 쏟던 노덕이는 드라마 중반부에 새장 밖으로 날아가 버린다. 그리고 마이아가 푸른목금강앵무를 보았던 볼리비아 여행에 대해 말할 때, 그는 새들보다 모기가 더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나는 《버드걸》을 읽으며 15년 전에 멕시코의 해안가에서 바다거북을 보호했던 일을 겹쳐 보았다. 그 즈음에는 빙하가 녹으면 북극곰이 슬퍼한다는 캠페인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인간이 초래한 비인간 존재들의 서식지 파괴에 대해 뭘 제대로 알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멕시코에서 바다거북 구조 활동을 하는 약 2주 동안 조금씩 지구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깨닫게 됐는데, 그러는동안 나는 천장이 없는 간이 기지에서 잠을 잤고 50방 정도 모기에게 뜯겼다. 그 해 여름에는 거북이를 구하고 영혼이 털렸다. 그리고 지붕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버드걸>처럼 그 모든 걸 블로그에 성실하게 쓰는 일이었다. 블로그에 적지 않으면 모두 없었던 일, 없었던 깨달음, 없었던 기분이 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2.
블로그에 말할 때면, 또 다른 논픽션 《트릭 미러》를 쓴 지아 톨렌티노가 등장해야 한다. 지아는 열살 때 첫 블로그를 개설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아가 인터넷 중독자가 된 사연’이라는 제목의 포스팅을 올릴 정도로 인터넷의 매혹적인 속성을 알아챘다. 그는 “인터넷에 글을 쓰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작가가 되고 싶었던 나”라는 자아상을 유지한 채로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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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릭 미러》ㅣ생각의 힘
나 또한 10대부터 ‘질보다는 양’이라는 신조로 온라인에 엄청나게 많은 글을 썼는데, 몇 해 전 싸이월드가 돌연 복원된다는 소식을 들은 날에는 악몽을 꾸었다. 가능하다면 과거의 행적을 일일이 지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인터넷에 글을 쓰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10대의 어느 날 손가락에서 느껴졌던 가뿐함을 떠올렸다. 어쩌면, 지아 톨렌티노가 나와 동갑이기 때문에, 우리가 비슷한 시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며 희망을 맛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트릭 미러》에서 가장 여러 번 읽은 챕터는 2장 ‘리얼리티 쇼와 나’이다. 이 글은 연애 프로그램 리액션 영상을 글로 읽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쓸만한 소재를 찾아 황무지를 헤매는 하이에나형 에세이스트의 가장 나은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챕터는 그가 에세이를 쓰기 위해 열여섯 살에 자신이 출연한 리얼리티 프로그램 <걸스 대 보이스>를 30대가 되어 정주행한 날에서 시작된다. 이 프로그램의 출연진은 10대 남자 넷, 여자 넷으로 구성되어, 남자팀 여자팀이 미션에 따라 경쟁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로맨스나 그 외 유사한 서사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따랐다. 지아는 기억을 왜곡하지 않기 위해 당시 프로그램을 제작한 PD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그에게 출연진을 어떤 기준으로 캐스팅했는지, 자신이 왜 발탁되었는지에 대해 묻는다. 같이 출연했던 다른 출연진들에게도 먼저 연락해서 전화를 하거나 밥을 먹는다. 내게는 지아같은 경험이 없지만(10대에 폭이 6.5km밖에 안되는 작은 섬에서 3주간 리얼리티 쇼를 촬영한다고? 그리고 그 모든 일정을 부모가 허락해준다고?), 그래서 과거의 자료를 ‘파묘’ 해서 현재의 기억과 비교 대조하며 ‘나란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일을 더는 하지 않아도 되는 건 다행스럽다.
이 책은 <뉴요커> 기자인 지아 톨렌티노가 2017년과 2018년 사이에 쓰인 글을 모은 책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던 2016년 미국 대선 직후에 우리는 거의 시차 없이 비슷한 뉴스를 보며 분노했을 것이다. 그 해 인터넷에서 사람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최악의 해”에 대해 썼고, 지아 또한 이 주제로 글을 실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북극의 평균 기온은 2도 상승했다. (...) 어떤 소식들이건, 마치 벌을 받는 것처럼 뉴스의 폭격을 받는다는 느낌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나는 한 사람이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는 불운의 양에는 한계가 없고, 이러한 정보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방법이 우리에게는 없다고 썼다. 이렇게 동시에 발생하는 인간의 다양한 경험을 수용할 만큼 우리의 심장을 넓어지게 해주는 가이드북이 없고, 우리는 시시한 것과 심오한 것을 분리하는 방법을 배울 수도 없다. 인터넷은 무언가를 아는 능력은 극적으로 증가시켰지만 무언가를 바꾸는 능력은 그 상태 그대로다.” - 《트릭 미러》, p.61
우리는 인터넷에서 무엇을 얻고 있으며, 그것을 얻기 위해 얼마나 대가를 치르고 있는가. 《트릭 미러》는 이런 질문들을 우리의 삶에서 놓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 말은 다른 누구보다도 지아 자신을 겨누고 있기에 진정성이 있다. 그의 말처럼 인터넷에는 “열심히, 끊임없이, 무언가를 반대하고 미워하고 비난하겠다고 단단히 결심한 듯한 글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22만 7천여명이 불법합성물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텔레그램 방에 입장해있다는, 남자 아이돌이 성범죄 혐의 피소 되었다는, 스프링쿨러가 설치되지 않은 호텔에서 화재가 발생해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최신 뉴스들은 완전히 진을 빼놓는다. 그렇지 않은 순간들이 분명히 우리에게 있었는데도 없었던 것처럼 만들기도 한다. 인터넷은 피곤하다. 나는 요즘 인터넷에 접속하면서 (정신적으로) 필요 이상의 비용을 지불한다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그렇지만, 여전히 지아 톨렌티노는 인터넷에 접속해서 블로그를 하고(https://jia.blog/), 버드걸도 블로그를 한다(https://www.birdgirluk.com/blog/). 최악에 가까운 이 세계의 파편들을 너무 많이 보고 있는 나는 최근에 경험했던 좋았던 것들을 떠올리며, 다만 오늘의 글을 쓴다. 눈 앞에 놓여진 세상을 살아가는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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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호에 언급된 콘텐츠
•마이아로즈 크레이그 《버드걸》(2024, 신혜빈 옮김, 문학동네)
•tvN 드라마 <마인>(2021)
•지아 톨렌티노 《트릭 미러》(2021, 노지양 옮김, 생각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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