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21 - 2025.02.03 / 플리백, 유원, 정정하는 힘, 그래미 어워즈, 옥씨부인전 안녕하세요. ㅎㅇ입니다. 설연휴를 포함해 지난 2주간의 기록을 담습니다. 오는 2월에는 신간 저자 인터뷰,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작 미리보기 등의 특별호를 종종 보내드릴 예정이니, 여러분의 받은 메일함을 반갑게 열어주세요. 그럼 이번호를 시작합니다.
01. 아마존프라임비디오 드라마 <플리백>
02. 연극 <유원>
03. 아즈마 히로키 책 <정정하는 힘>
04. 제 76회 그래미 어워즈
05. JTBC 드라마 <옥씨부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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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BC
2025년을 앞두고 다이어리를 들였다. 일정표가 아니라 하루를 갈무리하는 일기장으로만 쓰일 용도로 정해두었는데, 지난 세월 일기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거의 없었기 때문인지 1월에는 단 이틀만 썼다. 일기 쓰기에 도통 시동이 걸리지 않는 차에,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연극 페스티벌 선보일 1인극 대본을 쓰다가 이후 영국 BBC에 방영될 드라마 각본까지 작업하게 되었다는 피비 윌러브리지의 드라마 <플리백>을 보았다.
“알고 싶지 않았던 것, 알게 된 후에도 외면하고 싶었던 것, 그런 거듭된 부정-관성 위에 쌓아올린 삶이라는 앙상한 뼈대를 확인하는 것. 전지적 시점을 가졌지만 세부사항은 아무 것도 통제할 수 없는, 인생의 스토리텔러로서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것.” 오래 전, 일기에 대해 나는 이렇게 스스로 정의내린 적이 있다. 이 정의를 정확히 드라마 <플리백>에 돌려주고 싶다. 런던에서 이렇다 할 시그니처 메뉴 없이 카페를 운영하며, 손님이 없으면 기니피그에게 말을 걸지만, 손님이든 가까운 사람이든 애초에 눈 앞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그 모든 순간을 향해서. 6편씩 두 개 시즌, 총 12개의 에피소드는 뚜껑을 열기까지는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를 통조림과도 같다. 밀봉 되어 있던 주인공 플리백의 자기 혐오와 너저분함, 수습 되지 않는 모든 것들이 이제부터 신선한 공기를 만나 점점 산화 되기 시작한다. 그래서일까. 한 번 시작했다면 남김 없이 끝까지 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달리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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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유원
#연극 #소설원작 #재난이후의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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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드씨어터
1월에 일기는 별로 못 썼지만, LG아트센터,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두산아트센터, 국립극단의 연간 라인업들을 살펴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연 단위로 한번에 연극, 뮤지컬이 공개되고 예매일이 각기 달라서 그걸 챙기는게 매 해 이맘 때의 고역인데 자꾸 예매사이트를 들락거리다보면 취소표를 줍기도 한다.
국립극단의 기획초청작 <유원>을 그렇게 가게 됐다. 아파트 화재 사건으로 희생 된 어린이. 그 어린이가 11층의 창문 밖으로 던져 가까스로 생존한 그의 여동생이 이 극의 주인공 ‘유원’이다. 그 날 유원은 우연히 이웃 아저씨 위로 떨어진다. 생명의 은인인 이웃 아저씨와 오래 보는 관계가 된, 감사함을 알면서도 동시에 모르는 18세 소녀 유원에게는 처음으로 마음을 터놓을 동갑내기 친구 ‘수현’이 생긴다. 연극 제작사 앤드씨어터는 영어덜트 소설 등 청소년 이야기를 연극으로 풀어내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며, 최근에는 ‘재난 이후의 서사’를 핵심 주제로 품고 있다. 옥상에서 유원과 수현이 함께 바라보는 노을과 불꽃 놀이는 연출상 클라이막스 같지만 극의 전반부에 나온다. 시간이 흐르면, 유원은 옥상보다 더 높은 곳으로 향한다. 날기 위해서. 정확히는 날고 난 이후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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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디치미디어
여행지에서나 여행을 준비할 때나 구글맵에 의존적인 내게 아즈마 히로키의 <약한 연결>은 가장 이상적인 여행책이자 인간 관계에 관한 책이다. 책의 내용이 정말 좋은데, 아직까지 책의 지침대로 떠나거나 살지 못하고 있다. 사는 건 좀 거대한 문제니까 떠나는 것에 한정해서만 이야기하자면, 여행지에서 현지인 사이에 우연히, 느슨하게 섞여 들면서 구글에 다음에 입력할 검색어를 찾는 일 따위가 내게는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튼 나는 아즈마 히로키의 제안을 신경 쓴다.
신뢰하는 사상가인 그가 이번에는 <정정하는 힘>을 가지자고 한다. 저자가 말하는 ‘정정’이란 단순한 개념이다. 나이 든다는 건 젊었을 때의 과오를 정정하는 것이고, 우리에게는 종종 “그랬구나, 실은 내가 이것을 좋아했던 거구나”와 같은 취미의 정정도 일어난다. 아즈마 히로키가 진단하기에 동시대의 일본인들은 “대화할 때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훈련을 받지 못해, 섣불리 의견을 바꾸면 공격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일본만의 문제인가? 말을 바꾸는 건 화장실에 갈 때와 다녀와서가 다른 것처럼 비겁한 인간이 되는 일이 아닌가? 머릿 속에 드는 여러 의문들을 30년 내공의 사상가가 쉽고 자세하고 반복적으로 해소해준다. 아즈마 히로키는 이 책을 무언가를 꾸준히 해 온 사람들이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건 “누구나 오랫동안 일을 해오다 보면 자기 자신을 정정해야 할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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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제 76회 그래미 어워즈
#음악시상식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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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 images l (1) 도이치 (2) 신시아 에리보 (3) 쟈넬 모네 (4) 레이디 가가, 브루노 마스 (5) 찰리 XCX
미국 LA 현지 시간 기준으로 2/2(일) 오후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제 76회 그래미 어워즈가 열렸다. 진행자인 트레버 노아는 지난 1월 LA 전역에 발생한 거대 산불로 몇 주 전만 해도 시상식이 열릴지 말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지만 “그 모든 파괴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시상식을 주최해온 이 도시를 기념한다”고 말했다. 시상식이 열리는 내내, 현지의 시청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구호 모금 방법이 안내 되었다.
4시간의 러닝타임을 지나 ‘올해의 앨범상’을 발표할 차례가 되었을 때, LA 카운티 소방관들이 무대에 나와 박수를 받았다. 올해의 앨범상은 5수 끝에 드디어 비욘세에게 돌아갔고, LA카운티 소방서장이 트로피를 전했다. (비욘세는 LA에 37억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올해의 최우수 팝 듀엣/그룹 퍼포먼스 상’을 수상한 레이디 가가와 브루노 마스는 영화 <중경삼림>의 OST로도 유명한 ‘California Dreamin’’ 무대를 준비했다. 그들의 히트곡 ‘Die With A Smile’ 대신 이 도시에서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로한 것이었다. 이 외 올해 그래미 어워즈에서 인상적인 무대들은,
ㅇ 첫 번째, 도이치의 'Catfish + Denial is a River'
살아 있는 톰브라운 홍보 대사. 그래미 어워즈를 위해 아티스트와 댄스 모두 맞춤 제작한 톰브라운 의상을 입고 곡예 수준의 안무를 선보였다. 최우수 랩 앨범 부문을 수상한 도이치는 “지금 저를 지켜보는 흑인 소녀가 있다는 걸 알아요. (...)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라고 소감을 전했다.
ㅇ 두 번째, 찰리 XCX의 'Von Dutch + Guess'
사전 VCR에서 “저는 그래미에 가장 덜 적합한 공연을 보여줄 예정입니다. 편집에서 잘릴 수도 있겠는데요.” 라고 겁을 주었던 찰리 XCX 무대에서는 속옷들이 컨페티처럼 천장에서 하염 없이 떨어졌다. 스크린에 “착용하지 않은 모든 속옷은 ‘I Support The Girls’를 통해 가정 폭력 생존자에게 기부됩니다”라는 메시지가 나왔다. 찰리 XCX는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뮤직 앨범 부문을 수상했다.
ㅇ 세 번째, 퀸시 존스 트리뷰트
<위키드>의 엘파바, 신시아 에리보가 ‘Fly Me to the Moon’를 정석적으로 소화하고, 허비 핸콕이 그랜드 피아노를 치는동안 같은 의자를 나눠 앉은 스티비 원더가 하모니카를 현란하게 연주한다. 윌 스미스가 자신이 젊었을 시절 퀸시 존스에게 들었던 조언들을 천천히 읊고, 자넬 모네가 마이클 잭슨처럼 문워크를 하며 마무리. 지난 해 고인이 된 퀸시 존스를 기리는 트리뷰트 세션은 무대 + 토크 포함 약 15분 정도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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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옥씨부인전
#한드 #JTBC #임지연 #추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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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TBC
임지연 배우의 첫 타이틀롤인 드라마 <옥씨부인전>을 보다가 <더 글로리> 1회차 정주행을 했다. 2025년이 되도록 아직도 <더 글로리>를 보지 않은 사람이 있냐고? 그게 나야. 난 이렇게 늦게 봐도 되게 신나, 연진아. 양반 가문에서 도망 간 노비가 양반가 맏며느리가 되어 조선시대의 변호사 외지부를 겸하고, 자전적 소설을 쓰고 대중 관객 앞에서 그 내용을 구연하는 전기수(傳奇叟)는 “완벽한 결말”을 꿈꾼다. 법조계와 예술계를 오가며 자신의 직업적 정체성과 타협하거나 혹은 끝까지 지켜내는 그 시절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 하지만 이 드라마는 자아 실현보다는 더 먼 곳까지 나아간다.
막심이, 도끼, 끝동이, 백이 같은 노비들에게 아무리 선한 주인이자 친구가 되려해도, “부인이 생각하는 약자는 노비 한정입니까? 왜요, 부인이 노비 출신이라서요?”라는 대사 앞에서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하는 옥태영의 얼굴은 내가 나로서 지키고 싶은 사람들의 울타리를 허물고 점점 확장하는 일의 어려움을 드러낸다. ‘세상이 엉망인데 어떻게 그 많은 걸 신경 써?’ 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향해 경종을 울린다. 성소수자를 향한 낙인, 아이들의 노동력 불법 착취가 만들어낸 공고한 차별의 역사는 드라마를 지켜보는 시청자가 ‘동료 시민’으로서의 몫을 슬며시 고민하게 만들고야 만다. 사극이지만 “왕과 궁이 나오지 않는 부분이 좋았다”는 김소연 미술감독의 말처럼, 사람이 사는 곳을 향해 있다.
. . . 🏥 <옥씨부인전>의 15화부터 막방일까지 JTBC는 중간광고로 추영우 배우의 차기작 <중증외상센터>를 쉴 새 없이 보여주었다. 추영우 배우가 기대주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메디컬 드라마의 신체 절개 및 봉합 장면을 견디지 못하고 3화에서 하차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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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 wildwan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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