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천수이 변호사 있잖아, 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
안녕하세요. <콘텐츠 로그>를 보내는 ㅎㅇ입니다. 가끔은 유익해서 메모에 메모를 거듭하다가 결국 '내가 너무 모르는 게 많은 채로 살았구나' 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드는 대화의 자리가 있죠. (물론, 메모보다는 눈 앞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는 게 가장 좋지만요.) 얼마 전, 부키 출판사의 지원으로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에서 에세이 <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를 쓰신 천수이 작가님과 법, 그리고 사랑에 대해 나눈 시간이 제게는 그러했습니다. 팟캐스트에서 함께 나눈 내용 중 일부를 간추려 보내드려요. 58분간의 토크("이 험난한 세상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 필요하다면") 풀버전은 여기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guest. 천수이
변호사, 법학전문박사(민사법), 사회복지사(2급). 달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더불어 함께'라는 가훈 아래 사회운동에 헌신한 부모님과 달리, 가난이 누구보다 싫어서 돈 잘 버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넬 때 마음이 편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대학 시절에 500시간 가까이 멘토링 봉사활동을 하고, 변호사가 되어서는 취약 계층을 위한 무료 법률 상담 자리를 택했다. 지금은 그 자리를 떠났지만, 틈틈이 마을 변호사로 활동하고, 장애인 시설에 대한 인권 자문, 학교 밖 청소년·한부모 가정·스토킹 범죄 피해자 등을 위한 법률 지원을 하며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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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이 안녕하세요. 천수이 변호사라고 합니다. ‘다를 수’, ‘다를 이’를 쓰는, ‘특별하게 다르다’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에요.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많아서 법학전문박사, 사회복지사 같은 자격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번에는 <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라는 책을 써서 작가로서 인사드리게 됐습니다.
ㅎㅇ 이 책의 가제가 '사랑 말고 우리가 무얼 또 얘기할 수 있을까' 였다고요.
천수이 글쓰기 수업 선생님과 상의해서 지었던 가제인데 투고 받은 출판사에서도 ‘사랑’이라는 단어에 딱 꽂혔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나 제 친구들이 대부분 T라서 ‘왜 사랑 타령이야?’ 싶을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요. 출간 후에는 책 제목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오히려 제가 책 제목에 기대서 가는 것 같달까요.
법과 사랑은 크게 관계없어 보이고 오히려 반대되는 개념 같지만, 제가 무료 법률 상담을 하는동안 약 2천 여분이 넘는 분들을 의뢰인으로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결국에는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돈도 빌려주고, 결혼도 하고, 동업도 하고, 여러 가지 일들을 하는 건데, 그 관계가 틀어지면서 '법'적 분쟁이 시작되는 것이더라고요. 애초에 누군가를 위한 선의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법적 관계가 시작조차 되지 않는 거죠. 이런 이해 없이 문제가 벌어진 상황에서 왜 그런 사람이랑 결혼 했느냐고, 왜 그런 사람한테 사기를 당했느냐고 말하는 건 비난에 그칠 뿐이고요. 사랑하는 이가 있기 때문에 그가 곤경에 처한 거라 이해할 수 있고, 동시에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서는 또 다른 사랑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것이 완전한 해결로 가는 길이라 생각해서 책 제목을 <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 라고 짓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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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이 <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부키, 2025) 자세히 보기
ㅎㅇ 변영근 일러스트레이터님을 저는 그분의 그림 달력을 들이면서 처음 알게 됐는데요. 일러스트레이터님이 작업해주신 책의 표지가 참 아름답습니다. 빌딩에 구름이 비쳐 있는데 그게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고요.
에디터리 ‘천수이 지음’이나 ‘천수이 글’이 아니라, 가운데에 ‘변호사 천수이’ 라는 간판이 있으니까 표지만 봤을 때는 약간 소설 느낌도 들어요. 장르적으로 이 책이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한눈에 구별이 안 되는 독특함이 있어서, 또 시선이 한 번 더 가는 표지가 아닌가 싶어요.
천수이 저도 제 책만의 느낌을 잘 표현해 주신 것 같아서 감동이었어요. 많은 분들이 고생해주셔서 책이 나온 것 같아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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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서서 치열하게 법적 논리를 다투는 변호사의 삶도 동경하지만, 이렇게 누군가의 어떤 얘기라도 들어주는 삶도 나쁘지 않다. 잘나가는 변호사로서의 성공은 더딜지 몰라도 타인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간다.” -천수이 <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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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리 변호사가 된 후 첫 출근일이 매우 인상적이에요. 화장실 앞 복도에 덩그러니 칸막이가 세워진 한 평 남짓한 공간. 구청의 무료 법률 상담실로 출근한 첫날인데요.
천수이 큰 꿈을 안고, 정장 쫙 빼입고 첫 출근을 했는데 사무실처럼 보이는 곳이 없더라고요. 설마가 사실이 되는 상황이었죠. 초반에는 “아가씨, 변호사 선생님은 어디 계세요?” 라거나 “커피 좀 타 줘요” 같은 얘기를 듣곤 했어요. 저도 드라마로 본 사무실과는 너무 제 업무 환경이 다르니까 내가 이러려고 여기까지 왔나 싶었는데요. 시간이 지날수록 공간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거기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가 더 중요했어요.
ㅎㅇ 하지만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만일 저였으면 당일 퇴사를 결정했을 것 같다고 생각 했어요(웃음). 수이 님 자리의 칸막이 높이도 아주 낮았다고 책에 묘사 되어 있잖아요. 성인 여성의 키만큼이었다고요. 그곳은... 왜 그래야만 했을까요?
천수이 이 책의 배경이 되는 곳은 마포구청인데요. 당시 저는 법무부 인권구조과 소속이었어요. 법무부에서 전국 65개 지방자치단체 사회복지 시설에 변호사를 파견하는 ‘법률 홈닥터’라는 제도를 운영하는데, 이게 전국 대상의 파견이다 보니 근무 환경이 각 지자체마다 많이 달라요. 사실 구청 입장에서는 국가 사업이니까 변호사를 모시는 거지, 딱히 업무 공간 구비에 큰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제가 마포구청에 가기 전에 보름 정도 대전 동구청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그땐 업무 환경이 더 좋았어요. 지방일수록 관사도 나오고 사무실도 으리으리하게 넓은 경우도 있고요. 지금은 마포구청도 제가 일했던 때와 달리, 변호사를 위한 공간이 많이 개선 됐다고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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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문제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그 작은 일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니 그런 아픔에 가슴 깊이 공감하지는 못하더라도, 그까짓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비난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한다. 변호사로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느낀 한 가지는 누구의 삶도 내가 감히 쉽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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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ㅇ 수이님이 무료 법률 상담 변호사로 일하시면서 만난 의뢰인이 들려준 에피소드를 보면, 마치 독자인 내가 직접 그 사람을 만나본 것처럼 상세하게 쓰여 있어요. 집필 방식을 고민하셨을 것 같습니다. 실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하는 게 중요했을텐데, 의뢰인의 사연에 관한 파트를 쓸 때 가장 신경쓰신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천수이 저는 주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장애인, 결혼 이민 범죄 피해자분들을 상담했는데요. 독자 분들이 제가 만난 분들을 불쌍히 여기거나, 혹은 '이 사람도 사는데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같은 인상을 받게 되는 것만큼은 결코 원치 않았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이미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거였어요. 다른 변호사 혹은 법조인의 책을 보면 의뢰인을 상담하고 소송까지 한 경우에 걸친 장기간의 케이스를 언급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 사람이 쓴 에세이였다면 아마 지금보다 더 의뢰인에 관한 내용을 덜어낼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소송 전 단계에 찾아온 의뢰인에게 상담만 해드리는 변호사였거든요. 그럼에도 제가 만난 분들의 이야기가 누군가를 너무 특정할 것 같으면 애초에 배제시켰고요. 그게 아니라면, 되도록 디테일한 지점을 많이 살려서 썼습니다.
에디터리 첫 직장으로 공공기관에 근무하시면서 느꼈던 무료 법률 상담 서비스 제도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천수이 일단, 무료 법률 상담 서비스는 접근성이 굉장히 좋아요. 전화 한통만으로도 상담을 받을 수 있거든요.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다면 각 동마다 마을 변호사님들이 있으니 동 주민센터에 연락해서 “마을 변호사님 상담을 받아보고 싶다”고 하시면 됩니다. 보통 법적 문제가 발생하게 됐을 때 변호사를 찾아가면 돈 들고, 시간이 드니까, 네이버에 검색하거나 '동네에 법 좀 잘 안다는 어른’을 찾아가 물어보시거든요. 그런데 법적 문제에서 생각보다 많은 부분은 시간 싸움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권리가 사라진다거나, 고소를 할 수 없게 되는 일들이 있죠. 그 점을 잘 몰라서 놓치는 분들이 많은데, 바로바로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건 나의 권리를 신속하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해요.
ㅎㅇ 에필로그에서 “누군가의 어떤 이야기도 들어주려면 나도 그만큼의 준비가 필요하다. 내 변호사 생활의 마지막은 다시 이 자리에서 더 깊어진 지식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누구보다 아꼈던 그 자리를 떠났다”라고 하셨어요. 이 결심이 서신 후에 무엇을 하셨는지, 그게 최근 하시는 일과 어떻게 연결이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천수이 언젠가 전과 36범의 성인 남성분이 의뢰인으로서 저를 찾아오신 적이 있어요. 소위 ‘잡범’이라고 하죠. 명예훼손도 하고, 모욕도 하고, 술 드시고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서 조금씩 사고를 치시는 분이었는데요. 빼곡하게 법률 지식이 쓰여 있는 노트를 펼쳐놓고, 조금 있으면 난 기소가 될 것이고, 선고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늘어놓으시는데 사실 그때 전 되게 부끄러웠어요. 실제 소송을 경험해보지 못한 변호사니까 저는 책에서 읽은 내용 밖에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는 거예요. 의뢰인과 상담은 많이 하지만 법정에 한 번도 서보지 못한 변호사라는 건, 마치 수영을 못 하는 사람이 수영 이론만 얘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더라고요.
물론 그 전에도 법정 모니터링 같은 봉사활동을 했지만, 직접 소송을 담당해보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잖아요. 이렇게 반쪽짜리 변호사로는 더는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청을 나왔고, 3년 전부터 송무를 하는 서초동의 변호사로 지내고 있어요. 지금은 공익적인 분야에서 일하는 건 아니지만, 한부모 가정 지원, 스토킹 피해자 및 학교 밖 청소년 관련 소송을 돕는 일들을 하고 있어요. 이전보다는 조금 더 소송에 관한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으니 저 스스로도 달라졌다고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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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변호사를 산다’고 표현한다. 어떤 물건을 돈 주고 사면 내 소유가 되는 동시에, 그 물건을 어떻게 사용할지도 온전히 나에게 달려 있다. 물건을 버리거나 망가뜨리는 것조차 내 권리가 된다. 그래서인지 변호사를 샀다고 말하는 일부 사람들은 변호사를 내 물건 다루듯이 필요할 때마다 아무 때나 찾는다.”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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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리 변호사는 살면서 만나지 않으면 가장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잖아요. 그럼에도 우리가 살다보면 변호사를 찾아가야만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의뢰인은 어떤 마음과 기준을 가지는 게 좋을까요?
천수이 대한변호사협회 사이트에 들어가보시면 변호사별 전문 분야를 검색해보실 수 있어요. 전문 분야는 변호사가 스스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관련 분야에서 30건 이상의 소송을 진행하고 3년 이상의 경력이 있을 때 심사를 거쳐서 가지게 되는 것이거든요. 내 문제에 해당하는 전문 분야의 변호사님을 검색해보시고 찾아가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변호사 비용은 법적으로 정확한 금액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보통은 여러 군데 문의해보시고 가장 저렴한 데에서 소송을 진행 하려고 하시거든요. 비용을 흥정하려는 분들도 있는데, 법률 소송 의뢰를 물건 가격 깎듯이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사무장님들이 수임해서 하시는 펌 같은 경우에는 의뢰인이 한 번도 변호사를 만나지 못하고 사무장님이랑만 소통하다가 끝나는 경우도 있으니, 그런 부분들도 사전에 알고 계시면 좋고요. 결국 변호사를 선임하고 담당 변호사에게 나의 이야기를 다 했다면, 그다음에는 믿고 맡겨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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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 wildwan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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