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04 - 2025.02.16 / 나완비, 레이디 가가, 그 해 봄의 불확실성, 올리비아 마쉬 안녕하세요. ㅎㅇ입니다. 지난주에 저는 눈이 푹푹 나리는 삿포로에 다녀왔는데요. 부러 눈 축제 기간에 맞춰 간 것이었는데, 제가 머무는동안 하루는 항공편 118편이 결항될 정도로 기록적인 폭설이 오기도 했답니다. 저는 그 날 비행기나 기차 등을 타야하는 이동 일정이 없었던지라 크게 불편을 겪지는 않았지만, 돌아와서도 계속 눈이 내리는 꿈을 꿉니다. 한동안은 흰 잔상이 눈 앞에 어른거릴 것 같아요.
사계절 중 겨울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겨울의 성수기 여행지로서 유명한 곳의 방문을 앞두고 있다면 어떤 콘텐츠를 곁들이는 게 좋을까요? 저는 직관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를 보고, 제시카 아우 소설 <눈이 올 정도로 추운지>와 고명재 산문 <너무 보고 싶을 땐 눈이 온다>을 챙겨간 것인데요(거의 읽지 못했지만요...) 이번호의 눈 얘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이번호도 즐겁게 보아주세요!
01. SBS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
02. 레이디 가가 'Abracadabra'
03. 시그리드 누네즈 책 <그 해 봄의 불확실성>
04. 올리비아 마쉬 EP [Meanwh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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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나의 완벽한 비서
#한드 #한지민 #이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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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인사하는 사이’라는 가제를 버리고 최종 제목을 <나의 완벽한 비서>로 취한 이 드라마가 연상시키는 건 챗GPT다. 2025년을 살아가고 있는 나의 지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은 챗GPT를 유료로 결제하는 이용자이고, 올해 내가 들은 최고 잼얘의 장르는 ‘챗GPT 이용기’일 정도이니까.
나는 챗GPT를 오랜 시간 보수적으로 대했는데, 마음의 빗장이 허물어진 건 의외의 순간이었다. ‘이렇게 바보같은 질문을 해도 되나?’ 싶은 질문을, 혹은 질문이라고도 볼 수 없는 아무에게도 하지 못할 이상한 말을 입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 이는 마치 <나의 완벽한 비서> 속 헤드헌팅 회사 피플즈 대표 강지윤(한지민)이 “나는 갈수록 무서운 게 많아지던데” 라고 말해버리는 것과도 같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비서 유은호(이준혁)는 챗GPT처럼 답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돼요. 형편 없어 보여도 괜찮아요.” 이건 리액션이 기계같다는 말이 아니다. 이토록 뻔한 말은 평소에 남이 해주면 씨알도 먹히지 않지만, 혼자 빨리 가는 법은 알아도 함께 멀리 가는 법은 모르는 전형적인 리더 강지윤에게 진짜 위로를 준다. (게다가, 시의적절한 칭찬으로 대화 상대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챗GPT의 효능 중 하나다.)
일 중독자이자 일을 제외한 생활이라곤 없던 강지윤이 멘탈적으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순간에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이제 그만 미워해” 라는 조언을 듣는 건 그가 그동안 “미움을 동력” 삼아 살던 사람임을 드러낸다. 그가 고용한 비서 유은호가 갑자기 비가 내리는 날 핑크퐁 우산을 씌워주는 건 머잖아 핑크빛 사랑이 시작될 것을 암시하지만, 무엇보다 이 우산 펼침 행위는 유은호가 직장을 벗어나서는 ‘워킹 대디’임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다. 유은호의 정체성은 헤드헌팅 회사에서 양육권 분쟁중인 ‘워킹 맘’ 의뢰인(김신록)의 이직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는 데에 유용하게 기능한다. 그 뿐 아니다. 어쩌면 유은호는 간편식도 잘 하고(편의점에서 마크 정식을 말아주는 센스), 집밥도 잘 하는 걸까(된장찌개 플러팅). 그렇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잊을만하면 커피맛 캔디 ‘코피코’가 등장하는 걸 보면서, 이 드라마 또한 여지없이 K오피스 드라마 중 하나 임을 자각하게 되면서 마음이 조금 식는다. 여기, PPL 사탕 좀 그만 넣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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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레이디 가가 ‘Abracadabra’ MV
#브아걸 #해리포터 #그리고 #레이디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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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e or Die(춤추거나 혹은 죽거나)” 브루노 마스와의 듀엣곡 ‘Die With a Smile’로 최우수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상을 수상한 제 67회 그래미 시상식 종료 직후 공개된 레이디 가가의 신곡 ‘Abracadabra’ MV 도입부에 나오는 말이다. 지금 이 장엄한 선언을 레이디 가가만큼 책임질 수 있는 아티스트가 또 있을까? 우리는 그저 저항 없이 압도 당하면 된다.
아마도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부터 였던 것 같다. 댄서들의 머릿수가 많을수록 경쟁력이 생기는 ‘메가 크루 미션’을 보며 다인원 퍼포먼스의 쾌감을 느꼈던 것은. 40여 명의 댄서가 프레임을 채우는 아브라카다브라 MV는 칼군무는 물론이고, 댄서 개개인이 뿜어내는 개성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거기서 레이디 가가 한 사람의 존재감은 약 40인분을 능가한다. 이 MV 공동 연출가로는 뉴질랜드 댄스 크루 로열 패밀리의 수장인 패리스 고블이 이름을 올렸다. (로열 패밀리는 <스우파 2>의 출연 댄서 중 커스틴, 링, 엠마가 소속된 크루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들은 정국 ‘3D’ 퍼포먼스 버전 비디오에 참여했다.) MV 크레딧에는 ‘무브먼트 코치’라는 직종도 눈에 띄는데, 그만큼 춤과 움직임을 통한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작업이었음을 알 수 있다. 패리스 고블은 무브먼트 코치들, 그리고 댄서들과 “이 미친 세상에서 우리만의 가가 클럽을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답은 멀리갈 것도 없이 MV에 달린 베스트 댓글에서 찾을 수 있다. “레이디 가가 뮤비 특유의 정리된 개판 느낌이 너무나도 잘 느껴져요!”
그러나 늘, 격렬한 퍼포먼스를 보면 실연자들의 도가니를 걱정하게 되는데…… 이 부분에 대해 나처럼 걱정한 어느 에디터와 패리스 고블 안무가가 나눈 인터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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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무가로서 다른 댄서들을 어떻게 돌보시나요? SNS에서 알 수 있듯이 여러분은 가족과도 같은 존재겠지만, 이 MV 촬영은 힘들어 보였거든요.
A. 저는 레이디 가가에게 세트장에 스프링 스펀지 바닥을 깔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면 14시간 동안 춤을 추더라도 무릎이 다치지 않고 부상 당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그건 누구에게나 춤추기에 이상적인 꿈의 바닥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밀어붙이고, 도전해도, 부상의 위험에 처하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도록 세트장에 그런 바닥을 설치하는 건 전례 없는 일이었어요. 지금까지 그런 세트장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는(이 요구를 수용해준 건) 가가가 함께 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에 대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 Inside the Mayhem of Lady Gaga’s “Abracadabra” Music Video (2025.2.7, <In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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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시그리드 누네즈 <그해 봄의 불확실성>
#소설 #앵무새 #돌봄 #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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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책들
코로나 시대의 중견 소설가가 지인의 지인으로부터 부탁을 받아 자신의 보살핌을 기다리는 깃털 달린 친구를 돌보러 출퇴근 하다가 아예 그 새가 있는 건물에 살게 되고 거기서 전임 새 보호자였던 Z세대와 잠시 동거하는 얘기다. 주인이 지어준 새 이름은 ‘유레카’다.
“아무튼,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에 대해 유레카가 느낀 고마움이 아무리 커도 나보다 더할 수는 없었다. 그 기이하고 불안했던 시기의 나에겐 유레카와 함께 있을 때 시간이 제일 빨리 지나갔다. 매일 아침 기대에 부풀어 눈을 뜰 수 있었던 건, 기괴하리만큼 인적 없는 거리를 몇 블록 걸어가서 나의 보살핌을 기다리는 깃털 달린 친구를 만나는 이 단순한 허드렛일 덕이었다. 그건 스스로에게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해낼 자신이 있는 몇 가지 안 되는 일들 가운데 하나였다.”(p.104-105)
주인공에게 새를 돌보는 기쁨이 어느 정도인지 낯 뜨겁게 보여주는 반면, 탐조 활동에 재미 붙인 사람들을 뜨끔하게 만드는 내용들도 있다. 이를테면 살아 있는 새가 아니라 죽은 새를 향해 더 관심을 가지라는 것. 그 외에도 야생동물 거래, 자본을 투입해 완벽하게 꾸민 새장, 나라는 인간에게 반응하는 새와의 교감, 거대 쇼핑몰 속 앵무새가 받을 스트레스 얘기가 쏟아진다. 예전에 <버드걸>에서 역사적으로 탐조는 백인 부유층이 즐기던 계급적인 취미생활이었다는 대목이 떠올랐는데, 그렇지만 이 소설이 어느순간부터 새 얘기를 쏙 빼놓고 전개되는게 나한테는 반전 아닌 반전이었다. 역시 인간이 ‘비인간 중심적’이 된다는 건 수월하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며, 고립과 봉쇄라는 이벤트는 인간을 자꾸만 스스로 연민하게끔하고 의식의 흐름이라는 파고에 휩쓸리게 만든다는 걸 보여준다.
얼마 전에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을 녹음하다가 “해인 님, 새 이야기 엄청 좋아하잖아”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이 얘기를 오스카 장편 애니메이션 후보작 <와일드 로봇> 얘기를 하다가 나누었고 여기서는 AI 로봇이 새를 돌봄노동 하는데……) 그렇다. 나는 아직도 ‘탐조’(=실재하는 새를 직접 보기)를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새가 아니라 새 이야기(=새를 보는 사람들의 경험담을 포함한 이야기) 쪽을 더 좋아한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내가 새 이야기에 관심을 처음 두게 된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에서 제니 오델이 자신의 취미가 “새 알아차리기” 라고 얘기한 걸 봤을 때부터인데 제니 오델은 이렇게 말했다. 탐조는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니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새는 늘 거기에서 둥지를 틀고 노래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 뿐이기에. 그리고 어쩌면 탐조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일이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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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올리비아 마쉬 EP [Meanwhile]
#싱어송라이터 #다니엘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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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PLIFY
여성 솔로 뮤지션 올리비아 마쉬는 열흘 전 임시 팀명을 발표한 NJZ(구 뉴진스) 멤버 다니엘의 언니다. 이 수식어가 호기심을 가지고 한 번쯤은 그의 음악을 들어보게 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올리비아는 이 수식어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지만, 그의 성향이 극I라고 하니 어쩌면 모든 종류의 과도한 관심을 원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올리비아 마쉬를 동생의 덕을 본 사람이라는 후광 효과로 설명하는 건 섣부른 일이다. 음반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이거 노래가 너무 좋잖아?
본래 콘텐츠 회사에서 숏폼 콘텐츠 음악을 만드는 일을 했다던 올리비아 마쉬는 'Livy'라는 예명으로 보아 '정말, 없니?', 오마이걸 'Sway' 등을 작곡했고, 키스오브라이프의 영어곡 'R.E.M'을 작사해왔다. 지난 해 싱글로 데뷔한 후 2월 13일 발표한 자신의 첫 번째 EP 앨범에 실린 전곡 또한 작사 작곡 했음은 물론이다. 더블타이틀곡 'Strategy'와 'Backseat'에서는 1980년대 팝송의 바이브가 느껴지는데, 억지로 향수를 자극하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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