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5 - 2025.04.27 / 키라라, 르세라핌, 생추어리 시티, 태민
안녕하세요. ㅎㅇ입니다. 4월에 저는 재미있는 공연을 여럿 보았는데요. 돌아보니 하나하나 각자의 포인트로 비범한 구석들이 돋보이는 공연들이었네요. 그래서 오늘은 공연 얘기를 모아봤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01. 키라라의 키라라 단독공연: 2025 오디오비주얼 셋
02. 2025 르세라핌 투어 ‘EASY CRAZY HOT’
03. 연극 '생추어리 시티'
04. 2024-25 태민 월드투어 'Ephemeral Gaze' 피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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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키라라의 키라라 단독공연: 2025 오디오비주얼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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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미뮤직ㅣ2025년 4월 19일
전자음악의 의도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논픽션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시를 읽는 일이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것처럼, 케이팝만 팠던 사람에게 전자음악은 딱 그만큼 생경하게 느껴진다. 물론 창작자의 의도를 모르고 제 멋대로 해석해도 상관은 없겠지만, 난 키라라가 ‘떠먹여주는 아티스트’여서 좋다. 지난 2월, 키라라 정규 5집 발매 하루 전에 열린 음감회에 갔다가 그걸 확실히 알게 됐다. 키라라는 뜸을 들이지 않는다. 그는 의도를 숨길 생각이 없다. 그는 앨범에 실린 전곡을 감상하는 67분동안 전면에 설치된 스크린에 각각의 곡에 얽힌 (피쳐링 할 아티스트를 섭외할 때 나눈 대화까지 포함한) 썰을 타이핑 해서 띄워주었다. 미리 준비된 PPT가 아니기에 실시간으로 오타가 있으면 지우고 다시 앞 문장으로 돌아가서 즉흥적으로 앨범 코멘터리를 이어갔는데, 이런 방식이 무척 재미있다고 느껴졌다.
그 날 키라라가 이 앨범을 설명하면서 가장 자주 동원한 키워드는 ‘산만함’이었다. 산만함에는 별다른 증표가 필요없다. 그냥 네 맘이 내 맘 같구나, 우리는 동류구나, 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은 14곡으로 채워진 정규 앨범을 완성해야 하고, 주어진 5,000자짜리 마감을 지켜야 함에도, 끝없이 분절되고 흩어진 나를 마주하는 일에 다름 아니기에. 음감회를 통해 이 앨범의 의도를 모두 알아버렸(다고 착각했)기 때문에, 무신사 개러지에서 열리는 단독 공연에 가는 마음이 모처럼 아주 산뜻했다. 음악과 영상을 컴퓨터 두대를 이용해 동시에 퍼포먼스 하는 ‘오디오비주얼 셋’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번 공연에 앞서 다음과 같이 사전 안내가 되는 것도 눈에 띄었다. “꼭 강한 빛을 애써 버티지 마시고, 눈이 피로하시면 꼭 잠시라도 눈을 쉬시며 공연을 관람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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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2025 르세라핌 투어 ‘EASY CRAZY 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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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YBEㅣ2025년 4월 19일 - 4월 20일
지난해 2월 발매된 [EASY]는 공식 앨범 소개문에 따르면 “르세라핌의 당당한 모습 이면에 존재하는 불안과 고민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한 앨범”이었다. “한계 위로 남겨지는 우리 이름”(‘UNFORGIVEN’) 다음 차례에 ‘불안함’이 놓이는 건 당연해보였는데, 그런 모순들이 정확한 시대정신을 표현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M-net <프로듀스48>을 역대 프듀 시즌 중 가장 열렬히 시청했던 나는 이 팀에서 마지막 아이돌을 하겠다는 사쿠라의 포부가 자꾸만 눈에 밟혔고, 그러다보니 르세라핌이라는 팀의 서사를 부지런히 따라갔고, 가끔 그들이 뿜어내는 ‘강강강’ 메시지에 갸우뚱 할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마음 깊이 그들을 응원했다. 문제는 EASY 이후. 2024년 2월과 2025년 4월 사이, 이들은 과하게 비난 받았다. 허윤진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이런 힘든 시간과 증오에게 나의 ‘사랑’을 절대 잃지 않겠다는 다짐을 새기고” 그 시간을 통과했다. (막공 날 멤버들은 전원 편지를 써와서 관객 앞에서 낭독했고, 앞서 발췌한 문장은 허윤진의 편지 중 일부다.)
실은, [CRAZY] 티저가 떴을 때 컴백 타이밍이 너무 빠른 거 아닐까 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 시절만 해도 조금은 무모해보이는 디딤돌 같은 앨범이 있었기에 이후 [HOT]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고, 그래서 이런 공연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거라고, 공연을 보는동안 나의 지난 의견을 깔끔히 철회했다. 결과적으로, 그간 착실하게 앨범을 내놓아서 곡수가 쌓이니 꽤 재미있는 걸그룹 콘서트가 마련 됐다. 2022년 5월 2일에 데뷔한 르세라핌은 곧 데뷔 3주년을 맞는다. “내가 나로 살 수 있다면 재가 된대도 난 좋아”(‘HOT’) 라는 쎈 가사를 더이상 비장하게 부르지 않는 그들이 좋다.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린 이번 공연은 전방의 스크린은 작아서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는 감이 있었지만, 이제 케이팝 콘서트의 별첨 소스 같은 ‘레이저쇼’ 연출을 보는 재미가 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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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아트센터ㅣ2025년 4월 22일 - 5월 10일
언젠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의 딱딱한 의자에 앉아 연극을 보다가 허리가 아팠던 기억이 있다. 몸에 새겨진 기억이다. 그래도 <생추어리 시티>를 보러 스페이스111에 가야 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첫 번째는 텍스트로만 보기 아까운 희곡집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를 쓴 이오진 극작가의 신작이라는 점이었고, 두 번째는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었던 이주영 배우의 첫 연극 출연작이라는 거였다. 인터미션이 없는 120분간 관객은 미국에서 살아가는 젊은 미등록 이민자들의 혼란한 심리에 밀착하게 된다. 요통과 두통이 동시에 밀려오기 시작한다. 극에서 시간적 배경이 도드라지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9·11 테러를 에둘러 언급하면서 참사 이후 미국 사회에서 이민자들의 입지가 얼마나 더 좁아졌는지를 알게 한다. 그들은 심리적으로 몰리기도 하고, 몇 가지 없는 선택지 안에서 일생일대의 의사결정을 해야만 한다.
미등록 이민자가 영주권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이민 세관국에서의 인터뷰를 문제 없이 치러야 한다. 극 중 G(이주영)와 B(김의태)는 언젠가를 염두에 둔 인터뷰를 위해 예상 질문 리스트를 잔뜩 추리고 자신들끼리의 모의 인터뷰를 진행한다. 첫 데이트는 언제였나요? 무슨 샴푸를 쓰나요? 부모님 집의 커튼 색깔은 무엇입니까? 이렇게 ‘인터뷰’라는 형식을 빌려와 실제로 상대의 얼굴을 보면서는 하기 어려운 말을 턱턱 잘도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주요인물인 헨리 역에는 아마르 볼드가 캐스팅 됐다. 서울에 있는 극장에서 정체성 문제를 다루는 극에 몽골 출신 배우를 캐스팅 한 것은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바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오진 극작가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처럼 말할 수 없는 아마르 볼드 배우의 말을 알아 들어야 하는 건 우리 몫이지, 그 사람이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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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2024-25 태민 월드투어 'Ephemeral Gaze' 피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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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플래닛메이드ㅣ2025년 4월 25일 - 4월 26일
솔로 아티스트 태민을 봐야 한다면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데뷔 후 첫 솔로 월드 투어의 대장정이 마무리되는 때, 지난 해 여름 인천에서 시작해 총 20개국 29개 지역의 공연장을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와 세트 리스트를 뒤흔들어 재조합한 후 앵콜 콘서트를 하는 지금. 태민의 월드 투어 타이틀 ‘Ephemeral Gaze(이페머럴 게이즈)’는 입에 착 감기는 단어의 조합은 아니다. 덧없는 시선이라니. 그건 타인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움을 추구하겠다거나, 관심의 자장에서 이탈해 나만의 것을 해나가겠다는 진공 상태에 가까운 선언과는 다르다. 그는 'Heaven'에서 불길이 이는 계단에 네 발로 올라가 결국 그 끝에서 추락하고마는 퍼포먼스를 한다. 그 순간 날개 달린 천사들이 추락하는 중인 그를 구원해주는 장면을 관객들이 상상의 눈으로 보게 만들고 싶어서. 태민은 여전히 사방에서 뻗쳐오는, 심연에서 솟아나는 눈들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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