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5 - 2025.05.11 / 해피엔드, 헤다 가블러, 아이들
지난주 바티칸에서는 총 133표 중 105표를 득표하며 '레오 14세' 교황이 선출 됐죠. 올해 초에 극장 개봉한 영화 <콘클라베>와 영화의 원작인 로버트 해리스 소설 <콘클라베>을 봐둔 덕인지, 찐-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가 남일 같지 않더라고요. (영화와 소설 두가지 포맷이 각각의 재미가 있으니 둘 다 챙겨보시길 권해요!)
개인 사업자인 저는 종합소득세 신고를 하는 것으로 오늘 하루를 열었습니다. 프리랜서와 개인 사업자 즉, 조직 밖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5월이 은은한 공포의 시간인데요. 저는 2023년부터 꼼꼼하게 처리해주시는 세무사님에게 모든 걸 일임하고 있습니다. 물론, 4월 말부터 저 역시 종소세 신고를 누락하지 않는 국민 모드로 찬찬히 시동을 걸어야 하지만요. 커다란 행정 처리를 하고나니, 어쩐지 이제서야 새로운 해가 시작된 기분입니다. 오늘의 레터에는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2023) 작업으로 인연을 맺은 출판공동체 편않과 함께하는 구독자 대상 이벤트가 포함되어 있으니, 끝까지 즐겁게 읽어주세요.
01. 있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02. 해피엔드
03. 헤다 가블러
04. 아이들 'i-dentity Trailer'
|
|
|
© 출판공동체 편않ㅣ2025년 4월 23일 출간
다가오는 여름을 위한 독서 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성공적인 독서 모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책 안팎을 아우르는 진행자의 통찰력? 참가자 전원이 책을 완독 하고 오는 성실함? 모임 장소의 조명과 온도와 습도? 북클럽 참가자 7인이 만나 실제로 나눈 대화에 기반한 <있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제목은 다독가 또는 병렬독서인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피에르 바야르의 책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2007)을 패러디한 것이다. 그렇다면, ‘있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헛소리를 방지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은 얼마나 탄탄한가? 과연 모임의 규칙부터 골 때린다.
1. 있지 않은 책을 대상으로 한다. 참여자는 반드시 책을 끝까지 읽어 온다.
1. “진짜요?”라고 묻지 않는다. 모두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ㅡ'있지 않은 북클럽 규칙' 중에서
흥미로운 건 모임 참가자들이 얼마나 규칙을 준수하는가 즉, 얼마나 몰입하는가다. “저는 주인공 이름이 재미있었는데, 작가 본인 이름을 뒤집어서 지었잖아요.”(p.42) 이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페이크다. 그들은 윤현수 소설가가 쓴, 주인공 이름이 권수현인 소설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권수현씨>에 대해 이야기중이지만 세상에 그런 저자와 책은 없다. “세계적인 작가죠. 언어의 마술사라는 호칭을 받으면세 세계 독자를 울린 에리아크 서맥의 유작이고, <뉴욕 타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아니라면 무엇을 세계 문학이라고 만들 수 있는가.’”(p.73) 이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페이크다. 에리아크 서맥이라는 작가가 없으므로, 그를 둘러싼 평판이라는 것도 있을 수가 없고 뉴욕 타임스도 그런 극찬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물고기는 솔직히 너무 잘 됐잖아요. 과학 분야에서 내려오질 않아요.”(p.139) 라는 누군가의 말은 진짜다. 잘 된 물고기 책? 이는 여러분의 서재에도 꽂혀 있을 베스트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2021)를 말하는 건데, 그건 있는 책이다. 이 말을 꺼낸 참가자는 과학 분야 책을 내는 출판사에서 일한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뭘 만들어도 “물고기를 이길 수가 없어요.” 라고 토로한다.
이런 모임을 주최 하거나 참가하는 이들은 책에 애착이 보통이 아닐 것 같은데, 과연 모두 출판사에 다녔거나 다니는 중이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업계가 “연명하다가 자연 소멸” 할 거라고 냉정하게 진단하지만, “그럼에도 은근히 그 하락세가 완만한 편이란 말이에요.” 라는 말을 황급히 덧붙인다. 한편, 2024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같은 모자(푸른숲 출판사의 '데드라인 아티스트')를 쓰고 다니는 인파를 본 이는 하락세를 미끄럼틀처럼 가볍게 타며 이렇게 말한다. “모자 팔아서 좋은 책 만들면 돼요. 모자 팔아서 돈 벌고, 그 돈으로 좋은 책 분명히 낼 수 있거든요.” 이들이 본격적으로 책 얘기를 하기 전에 스몰토크를 나누는 지점을 눈여겨 보게 된다. 참가자 중 하나는 다음 북클럽이 열리기까지 ‘잼얘’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 잡혀있는 중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책에 대해서라면 콩으로 메주를 쑬 정도로 무슨 얘기든 할 수 있지만, 그동안 뭐하고 지냈는지 되짚어보는 스몰토크가 얼마나 어려운 종류의 일인지 알게 된다. 기본적으로 기억력의 한계 때문이겠지만, ‘남이 내가 뭐 하고 지냈는지 진짜 그만큼 궁금해할까?’ 라는 검열이 끼어드는 탓이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성공적인 독서모임 조건 중 하나가 별 것 없어보이는 내 근황을 얘기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게 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나를 궁금해한다고 믿어보는 곳. 우리 모두에게는 '있지 않은 북클럽' 같은 장소가 있어야 한다.
|
|
|
🎁 이 책을 읽어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버튼을 통해 이벤트에 응모해주세요. 구독자 총 5분께 <있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증정합니다. (~5/18 마감)
유의 사항 당신의 MBTI에 S가 들어간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이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먼저, 있지 않은 책에 대한 상상이 필요하고, 그걸 읽었다고 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망상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눈치 채셨겠지만) 저는 MBTI에 N이 들어간답니다! |
|
|
© 영화사진진ㅣ2025년 4월 30일 개봉
장류진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고 대단히 요상하게 생긴 육교를 보러 가본 적이 있다. 마침 판교에 이직을 위한 면접을 보러 갈 일이 생겼고, 그 회사에서 일하게 되지는 않았지만, 이야기 속 주 무대인 육교를 직접 눈으로 보았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그 때 그 소설처럼, 영화 <해피엔드>를 보고나면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육교 얘기를 하게 된다. 극 중 배경은 도쿄지만 실제로 그 육교는 오사카에 있다. 나란히 걷던 두 사람이 한 방향의 계단으로 함께갈 수도 있지만, 각자 왼쪽과 오른쪽으로 찢어져 내려갈 수도 있는 영화 속 육교를 보며, 나는 내가 양쪽 모든 경우에 대한 강렬한 기억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10대의 끝, 일상적으로 지진을 경험하는 두 친구는 그들이 발 딛고 있는 지반 뿐 아니라 우정까지 흔들리는 시간을 겪는다.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유머에 웃는동안 이대로 영원할 것 같았지만, 실은 우리가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게되는 계기. 그 때부터 진도 5 혹은 8처럼 수치화할 수 없는, 그래서 같은 일이 또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미리 대비하기 조차 힘든, 온전히 주관적으로 우정의 당사자들만이 끔찍하게 체감할 흔들림이 지속된다.
네오 소라 감독이 바로 지금의 엔딩에서 영화를 끝마쳤기 때문에, 나는 파괴의 ‘규모’에 대해서 생각하는만큼이나 파괴로 인한 상실감을 떨쳐내는 ‘속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다. 어쩌면 내가 있다가 없어진 것을 향한 슬픔에 중독되어 있는 건 아닌가, 라는 깨달음이 퍼뜩 들었기 때문이다. <해피엔드>의 두 친구 유타와 코우의 본체, ‘쿠리하라 하야토’와 ‘히다카 유키토’가 이 작품을 찍다가 마음이 잘 맞아서 룸메이트가 되었다는 점, 여기에다 이 영화를 연출한 ‘네오 소라’와 편집을 담당한 ‘알버트 톨렌’ 또한 한 집에서 살고 있는 친구 사이라는 점을 포갤 때. 스크린 밖 듀오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 모든 이야기를 출발시킨 네오 소라에게 ‘연쇄우정마’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로 했다.
|
|
|
© LG아트센터ㅣ2025년 5월 7일 - 6월 8일
“도파민이 부족해.” 1890년에 발표된 헨리크 입센의 희곡 <헤다 가블러>에 이런 심리 묘사는 없다. 그러나, 연출가 리처드 이어가 각색한 동명의 연극에서 남편과 6개월간의 장기 신혼 여행을 마치고 새 하루를 맞이한 ‘헤다 가블러’의 속내는 도파민이 바닥난 상태라 외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헤다는 지루함이라는 감각을 적절히 다루지 못하는 여성이다. 그리고 그 감각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재앙은 내내 현재진행형이 된다. 그는 자신의 집을 찾아온 동창에게 친절하게 굴다가 일순간 위협하고, 옛 연인의 작업물을 거침 없이 훼손한다.
무대 위, 헤다 부부 집에 있는 헬륨 풍선 꾸러미가 이 모든 일의 전조였던 것 같다. 나는 그 풍선들이 이야기의 전개상 꼭 필요한 타이밍에 터지든가, 아니면 날아가 눈 앞에서 사라지는 식으로 제 역할을 다 할 것이라 예상했다. 파티장과 놀이공원처럼 그것이 원래 있어야 할 곳들은 활기와 즐거움을 상징하지만, 그 집에 머무르는 헤다가 그렇듯 풍선 또한 제 쓰임을 다하지 못한 채로 실내에 존재한다. 지면에 붙박여서. 관객은 따분함을 견디지 못한 헤다의 눈빛을 가정부 ‘베르트’가 카메라로 담는 수고를 통해 바라보게 된다. 이 극에서 베르트 역을 맡은 조어진 배우는 때때로 수준급의 카메라 워킹을 선보이는 카감이 되어야만 한다. 공연장 전면에 촬영본이 실시간으로 송출되기 때문에 관객은 안광 없이 탁한 헤다의 눈빛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다.
원작 희곡은 사회적 제약과 억압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여성의 심리를 그린다는데, 원작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무대만 두고 보자면 이영애 주연의 <헤다 가블러>는 이 모든 게 ‘지루함’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2시간 35분(155분)의 러닝타임이 흐르는동안 때때로 나 역시 지루함을 느꼈음을 부정하긴 어렵다. 비슷한 시기에 개막 예정이었으나 주요 출연진의 건강 문제로 캐스팅이 교체되며 개막을 미룬 이혜영 주연의 <헤다 가블러>의 전체 공연시간은 이보다 5분 더 긴 2시간 40분(160분)으로 예정되어 있다.
|
|
|
04.
아이들 'i-dentity Trailer'
|
|
|
© 유튜브 'i-dle (아이들)'ㅣ2025년 5월 5일 릴리즈
"두 여성 뮤지션 슬릭과 이랑이 주고받은 서간 에세이 <괄호가 많은 편지>에서 이랑은 한 편의 글을 완성한 뒤 눈으로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비문, 오탈자를 음성 읽기 서비스를 이용해 잡아낸다는 팁을 전한다. 어느 날 그는 이 서비스가 괄호 안의 내용은 읽지 않는다는 걸 발견한다. 꼭 하지 않아도 문맥상 통하는 말이라면 생략해도 무방하다는 기술의 엄중한 판단 덕이다. 이랑은 쓴다. “역시 괄호 안의 내용은 소리 내지 말고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 걸까요.”
‘(여자)아이들’은 케이팝에서 대표적으로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 이름을 가진 팀이었다. ‘여자아이들’이라고 읽을 수 있지만, 데뷔 때부터 그들은 줄곧 괄호를 묵음 처리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스스로를 ‘아이들’이라 믿었다. (...)"
✍️ 아이들의 'i-dentity Trailer' 영상에 관해 쓴 칼럼 전문은 <한겨레21>에서 읽어보실 수 있어요. 읽기
|
|
|
🟠 문의: wildwan79@gmail.com
COPYRIGHT © CONTENTSLOG. ALL RIGHTS RESERVED.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