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4 - 2025.08.11 / 오춘실의 사계절, 에픽하이 골드버튼 수령기, 바디올로지
나흘 전 '하루 종일 '여름 영화'를 봐야 한다면' 편으로 팟캐스트 녹음을 할 때만 해도 여름이 여름 했는데(?), 확실히 밤 공기는 선선한 기운이 느껴지는 느즈막한 오후 10시 52분 경에 여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새로 만든 플레이리스트에서는 '키(KEY)'와 '키키(KiiiKiii)'의 신곡이 나란히 흘러나오며 놀라운 대구를 이루고 있고요. (언젠가 연말 시상식에서... 어떤 콜라보 무대를 꾸려주시든 납득이 가는 조합이 될 것 같습니다...) 여름과 가을의 경계는 개인적인 체감으로는 그 어떤 계절의 틈보다도 플레이리스트의 전환이 요란하게 체감되는 시기입니다. 또 한 번 계절의 흐름이 느껴지는 가운데, 오늘의 레터는 사계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봅니다!
01. 김효선 <오춘실의 사계절>
02. "유튜브 일 안 하냐? 골드버튼 왜 안 보내" (유튜브 <에픽하이>)
03. 이유진 <바디올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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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은산ㅣ2025년 7월 31일 출간
MD는 F&B나 라이프스타일 편집샵 업계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출판의 세계에도 있다. 알라딘을 20년 가까이 애용해 온 나는 언젠가부터 소설을 담당하는 김효선 MD의 신간 소설 추천평을 신뢰해왔다. 김효선은 최근 <치즈 이야기>를 펴낸 조예은을 “산뜻한 낭만은 너희들의 것이고, 내게 남은 건 참을 수 없는 습기와 쿰쿰한 냄새. 조예은은 이런 여름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진짜’ 여름의 작가”라고 소개한다. 이런 소개를 읽으면, 삐질삐질 흐르는 땀은 아랑곳 하지 않고 주말을 다 바쳐 이 책의 엔딩을 보고 싶어진다. 그런가하면, 김화진의 <동경>을 “셋이 팔짱을 끼고 걷다 손을 놓게되는 순간이 있다. 사거리 모퉁이를 돌면 친구들과 헤어져 홀로 걸어야 하는 길에서 다른 두 친구를 생각하며 느꼈던 저릿한 마음이 이 소설을 읽으며 기억났다.”고 설명하며 책을 펼치기 전 마음을 단단히 먹게 만든다.
김효선이 단 한번의 이직도 없이 알라딘만 다녔다는 건 그의 첫 번째 에세이 <오춘실의 사계절>을 읽고서야 알았다. 이 책은 책 파는 얘기는 아니고, 엄마를 지근거리에서 바라보는 딸의 독특한 노화 관찰기다. 저자와 나처럼 80년대생인 동년배들의 부모는 대개 국민연금을 수령 받는 고령 세대에 접어들었다. 당신들은 인생의 새로운 챕터에 접어들고, 우리들은 그것이 내 이야기와는 무관하다고 여기고 싶다가도 꼼짝없이 연루된다. 지극한 효심이 없더라도 어떤 노화를 목격하는 마음에 파동이 생기지 않을 리 없다.
오춘실-김효선 모녀의 이야기는 “엄마는 허리가 뎅강 부러졌고 나는 마음이 뽀각 부서졌다.”(p.22)로 시작된다. 한시간에 1,000m를 헤엄칠 수 있으며, 한강을 자유형으로 횡단하는 대회에 참가할 정도인 김효선은 너무 오래 써서 바삭거리는 수건같은 스스로를 견딜 수 없어 수영을 끊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누가 보기엔 창창한 시절도 뭔가에 중독되지 않고서는 건너갈 수 없는, 그런 젊음이 과한 자기 연민 없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을 회복시킨 수영의 세계에 엄마를 초대한다.
어떤 장르든 초심자가 숙련자에게 의존적일 것 같지만, <오춘실의 사계절> 속 수영의 세계에서 비기너와 만렙은 상호 작용한다. 그러나, 유연하지 않고 근육이 자꾸만 빠지는 몸을 가진 오춘실 씨는 잦은 부상을 겪는다. 중요한 건 오춘실 씨가 얼른 다시 수영장에 나가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물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탓에 단 한 번도 수중에 몸이 떠 본 적이 없는 나는, 수영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무언가를 너무나 좋아하게 됐기 때문에 종종거리게 되는 오춘실 씨 같은 마음을 마지막으로 가지게 된 게 언제였을까 싶어 아득해졌다.
“소설은 언제나 현실보다 좋았다. (...) 나는 진짜인 내 삶보다 소설 속 가짜가 좋았다. 그게 내겐 어리둥절한 삶을 소화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더 자란 후엔 소설 속에서도 상처받았다.”(p.123)고 말하는 <오춘실의 사계절>에는 수영 그리고 여자들에 관한 책들이 직간접적으로 49권가량 인용되어 있다. 결국 나는 오늘도 책을 주문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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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유튜브 일 안 하냐? 골드버튼 왜 안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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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픽하이ㅣ2025년 8월 7일 공개
짧아도 6개월, 평균 1년 주기로 오직 신곡 MV만 올라오던 계정에서 구독 취소를 하지 않은 채 의리를 지키는 약 86만 7천명에게 빚진 마음을 갖게 된 에픽하이는 2024년 12월 어느 날, 그냥 ‘말로 떼우는’ 영상을 올린다. 손님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내어놓는 ‘오마카세’ 정신으로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약속하는 이 영상은 재미있지만 어딘가 엉성하다. 약 7개월이 지난 후 그들은 구독자 100만명을 돌파한 기념으로 골드버튼을 수령하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유튜브 본사로 향한다.
영어가 유창한 타블로가 있으니 무리한 기획은 아니다. 그들은 유튜브 구내식당과 카페테리아를 즐기고, 유튜브 직원들에게 K-유튜버의 만트라인 ‘좋댓구알’을 발음하는 법을 알려준다. 29분짜리 영상에서 1/3을 남겨두었을 시점에 투컷은 갑자기 ‘그 곳’으로 가자고 말한다. 마치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처럼 모두가 알지만 이름을 부르면 안 되는 듯한 그 곳은 2010년의 타블로가 무자비하게 학력 위조 의혹에 시달렸던, 결국 그 시절 MBC 스페셜 다큐멘터리 팀과 함께 찾아갔던 스탠포드 대학교다. 구글 지도에 검색해보니 하필 유튜브 본사부터 스탠포드 대학까지는 자차로 24분 정도가 걸린다. 누구라도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울 정도의 거리감이다. 한국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왔는데!
“불행과 행복의 아슬아슬한 탱고.” 타블로와 미쓰라가 스탠포드 캠퍼스를 걸으며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이 말은 2014년 발표된 에픽하이 정규 앨범 [신발장]의 첫 트랙 ‘막은 올리며’의 노랫말이다. [신발장]은 숏폼이 없던 시대에 놀라운 선구안으로 세로 버전의 MV를 공개했던 ‘BORN HATER’ (feat. 빈지노, 버벌진트, 비아이, 민호, 바비)가 수록된 바로 그 앨범이다. 이 곡에서 에픽하이와 친구들은 누군가를 부지런히 혐오하는 ‘헤이터’들을 특유의 비트와 라임으로 말 그대로 발라버린다. 너무 아플 때 피부에 돋아나는 붉은 점인 [열꽃]을 테마로 발표된 타블로의 축축한 솔로 앨범을 지나, ‘BORN HATER’가 있었고, 그리고 현재다.
“타블로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곳 스탠포드는 그의 모교다.”라는 나레이션으로 시작되는 15년 전의 다큐멘터리를 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연하다. 2025년의 투컷은 아마도 전국민이 보았을 그 다큐에서 작은 조각상과 나무 세그루를 배경으로 한 벤치에 앉아있는 2010년의 타블로가 입었던 착장을 그대로 자신의 백팩에 챙겨온 참이다. 7월의 무더위 속에서, 회색 후드티와 검정색 비니를 착용할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그 다큐 속 장소와 동일한 곳에서 동일한 구도로 타블로를 찍는다. “난 이제 모든 아픔과 슬픔을 털어내고 완치 됐다~!” 라고 외쳐보라고 말한다.
그 때와 지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오직 ‘웃(어보이)는 얼굴’이다. 15년 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토록 작위적인 투컷 감독의 디렉션에 코끝이 찡해져 오는 걸 느낀다. 투컷이 이 작은 촬영지를 ‘Crying tree by Tablo’라고 구글 지도에 장소 등록을 하려고 할 때 타블로는 유튜브 제작진을 바라보며 말한다. My team is so fxxked up(=저희 팀 진짜 미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건 미친 의리, 연대, 회복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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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플롯ㅣ2025년 4월 4일 출간
케이팝을 좋아하면서 권은비의 워터밤, 아이린&슬기의 굴과 진주 티저 이미지, 신인 걸그룹 베이비 돈 크라이의 콘돔을 연상시키는 사탕 포장지와 체리 음료가 쏟아지는 씬으로 채워진 데뷔곡 티저 영상에 대해 적절한 입장을 가지기란 어렵다.* 혹은 ‘깐머’보다 ‘덮머’가 낫다고 여겨지는 어느 아이돌이 최근 자꾸 ‘깐머’로만 스케줄을 소화할 경우, 팬들이 헤어·메이크업·코디 담당자나 샵의 교체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도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른다.
* 언급된 티저 이미지와 영상은 현재 모두 삭제되었다. 아이린&슬기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는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고, 베이비 돈 크라이의 소속사인 피네이션은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말과 함께 논란이 된 장면을 생략한 버전으로 본 MV를 공개하겠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기자이자 연구자인 이유진의 <바디올로지>의 주 장르는 저자가 표현했듯 “몸 담론으로 본 사회사”이고, 이 책에는 우리 몸의 세부 파트를 둘러싼 차별과 혐오의 역사가 켜켜이 정리되어 있다. ‘얼굴’과 ‘엉덩이’는 당연히 언급되어 있을 줄 알았지만, ‘땀’, ‘털’, ‘항문’까지 일상의 대화 주제로는 터부시 되기 마련인 대상들에도 저자는 너그럽게 한 자리를 내어준다.
처음 품게 되는 질문이 생겼다. 이 책이 같은 인간으로서 사랑과 체온을 나누는 사이를 “민주적인 연인”이라 정의 내렸듯, 우리도 아이돌과 민주적인 순간을 가져볼 수 있을까? 나는 공연장에서 운 좋게 스탠딩 펜스를 잡았을 때 최애가 내 손을 잡아주기를 원하나? 왜 나는 하이터치회처럼 일본에서는 대중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사에 참여한 내 모습이 전혀 상상되지 않는 걸까? 나는 만져본 적 없는 아이돌에게 ‘몸’이 있다는 걸 얼마나 실감하고 있는가?
“인간의 손은 섬세하고 고도로 발달한 신체로서 어떤 기계도 감히 따라올 수 없는 기능을 갖추었다. 20대 성인의 뼈는 평균 206개인데, 이 중 양손이 인체 뼈의 25퍼센트인 54개를 차지한다. 이 정도로 인간의 손은 복잡하게 구조화되어 있고, 그 덕에 온갖 난해한 일을 수행할 줄 안다.”(p.188-189) <바디올로지>에서 ‘손’에 관한 챕터를 보면서 내가 왜 그렇게 아이린&슬기의 ‘놀이’, 올데이프로젝트의 ‘FAMOUS’, 성한빈·이영지의 ‘you should see me in a crown’ 무대에 빠져들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세 안무의 공통점은 손을 수준급으로 사용하는 장르인 ‘텃팅’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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