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편부터 마돈나의 ‘Material Girl’ 리메이크 버전이 들려오던 영화 <머티리얼리스트>(Materialists)에는 데뷔작인 <패스트 라이브즈>부터 종종 인물들 사이에 마가 뜨는 묘한 호흡의 로맨스물을 제작해 온 셀린 송 감독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답이 담겨있다.
자만추가 불가능한 세계를 전제한 이 영화에서 주인공 '루시'(다코타 존슨)의 직업은 데이팅 회사의 매치 메이커다. 수천달러를 지불한 고객들이 원하는 이상형의 조건은 지나치게 노골적이거나(“29세 여자는 안 되고 27세면 좋겠어요”), 미래의 인연을 위한 가중치를 어디에 두었는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상세한데(“고양이파는 싫어요 강아지파가 좋아요”), 고객이 각자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면 드러내질수록 회사 시스템상 매칭 작업은 수월해진다. 그런데, 회사 일을 통해 무려 아홉 쌍의 결혼을 성사시켜 온 실적왕 루시가 어느날, “People are people are people are people”이라는 고장난 것 같은 대사를 하며 이 일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낸다. 내용은 속물적이지만 표현 방식은 연극적인 긴 대화를 거쳐 루시 자신이 마침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 바로 그 시점에.
영화 속에서 한 여자를 두고 지나간 남자(크리스 에반스)와 다가온 남자(페드로 파스칼)가 교차하지만, 삼각관계 치고는 싱겁다. 남자들끼리 악수를 할 때 누군가 손가락이 으스러질정도로 힘을 주며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이나, 좋은 차를 타는 남자가 고물 차를 모는 남자에게 재력을 과시하며 무안을 주는 일화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다만, 감정적으로 격양될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쉽게 갈라지는 목소리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성대를 자랑하는 다코다 존슨이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가끔 목이 메이거나 이상한 목소리가 나오지 않나. 나는 그랬다. 무엇이 사랑인지를 고민하다가 원시인 커플의 사랑에 관한 망상까지 거슬러 올라가고야마는 주인공을 통해, 셀린 송 감독은 모두의 동의를 얻긴 어렵더라도 타협할 수 없는 가치관을 내보인 게 분명하다. 일단, 제목부터 ‘물질주의자들’ 또는 ‘속물들’ 등의 후보를 제치고 셀린 송의 의도에 따라 영어 제목을 그대로 음차해 사용하는 것을 택했다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한국 배급사는 포스터에 기어이 ‘속물’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20대 때 <죠스>를 찍은 영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80대를 앞두고 있다. 2080은 국민 칫솔, 치약 브랜드명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 않았던가. 이제는 나의 구강건강 만큼이나 전심을 다해 스티븐 스필버그의 장수를 빌게 된다. <죠스>(1975) 개봉 50주년을 기념하며, 스티븐 스필버그의 대표작을 꼽는 건 재미는 있지만 까다로운 종류의 일이었다. 그의 다채로운 필모그래피 중에서 어떤 영화를 꼽더라도 다른 영화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반박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지난 일주일동안 스티븐 스필버그의 전작 여섯 편을 몰아본 결과, 크게 지지받을 것 같지 않은 나의 스티븐 스필버그 원 앤 온리 영화는 바로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 나이로 72세 때 개봉한 이 영화는 ‘오아시스’라 불리는 가상현실 게임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디스토피아적 근미래 배경의 SF물이다. 이 영화에서 게임 제작자 ‘할리데이’(마크 라이런스)는 자신이 살면서 본 책과 영화와 음악을 모두 도서관에 아카이빙 해두었고, 이는 그의 사후에도 운영되며 몇몇 게이머들이 게임 퀘스트를 완수해나가기 위한 요긴한 힌트가 된다. 오죽하면 남들보다 더 빨리 게임 세계관을 장악하려는 경쟁사에서도 할리데이가 집착한 대중문화를 분석하는 지원팀이 운영될 정도다. 방대한 걸 알고 있지만 과시적이지 않기란 힘든 법이고, 스티븐 스필버그는 <레디 플레이어 원>을 통해 대중문화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이만하면 담백하게 드러냈으며, 나는 그게 좋았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향후 10년동안 만들 5편의 차기작들을 알고 있는 건 인생을 살아가는 끔찍한 방식이라 생각해요. 단지 지루하다는 게 아니라, 사람도 변하거든요. 몇 년간 변치 않고 그대로인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 내가 1971년에 좋아했던 것을 지금이라면 아마도 만들려 하지 않을 거예요.”(<스필버그의 말>(마음산책, 2022)) 이라고 말한 바 있지만, 2026년 개봉을 목표로 또 UFO 영화를 제작중에 있다고 한다. 외계 생명체에 대한 그분의 여한은 언제쯤 풀릴까. <미지와의 조우>와 <E.T.>를 연달아 보고나니 밤마다 꾸는 꿈의 장르가 바뀌는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