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08 - 2025.09.28 / 부국제에서 본 영화들, 수월한 농담 + 부먹클럽
부산에서는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다녔습니다. 추석 연휴로 인해 예년보다 이르게 열린 9월의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은 덥다 못해 조금은 습하기까지 하더라고요. 3주만에 돌아온 콘텐츠 로그에서는 먼저 보고 온 영화 이야기를 포함해, 추석 연휴를 앞둔 여러분들을 위한 지난 팟캐스트 에피소드를 추천하고, 재미있게 읽은 신간 한 권을 소개합니다. 그럼, 오늘의 레터를 시작합니다!
01. (광고) 송강원 에세이 《수월한 농담》
02. 2025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영화들 6
03. 연휴에는 '부먹클럽'을 들어보세요.
|
|
|
© 유유히ㅣ2025년 9월 10일 출간
13년 전, 미국에 어학연수에 가 있는 동안 나는 집에 자주 전화를 거는 자식이 아니었다. 어학 실력 향상에 가속도를 붙이기 위해 미국까지 갔고, 그것은 대차대조표를 작성할 만큼 모든 선택지를 비교해 본 결과 나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는데도, 영어로 된 과제를 제출하는 대신 철저히 우리말로 이루어진 소설을 써서 문학동네에서 열리는 공모전에 제출할 정도로 대책 없이 분열된 시간이었다. 당시의 나는 내가 어떤 이야기를 쓰고 있는지, 또는 어떤 이야기에 속해 있는지, 나를 가장 궁금해하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전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이역만리에서 전화로 쫑알쫑알하는 미디어 속 자식들을 볼 때 괴리감을 느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수월한 농담》을 쓴 송강원 또한 타지 생활을 오래 했는데, “이해받는 일을 포기하고 애써 멀어져 나온 모국”에서 그는 부산에 거주하는 엄마와 주기적으로 살뜰히 통화를 나누는 ‘딸 같은 아들’이다. 집을 떠나기 전 부모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커밍아웃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커뮤니티라고 여겨진 미군에 입대하고, 이후 독일에 있는 부대에 배치받고, 브로드웨이에서 힐댄스 수업을 듣고, 그러다 모든 걸 접고 모국으로 돌아온다. “보폭보다 널찍이 떨어진 징검다리를 건너는 듯 위태로웠”던 곳을 떠나 다시 엄마 곁으로 돌아오니 그렇게 “가장 선명한 명분이 있는 삶이 시작되었다.”
향후 5년간 생존할 확률이 8.9%라 진단받은 엄마 ‘옥’에게 실은 오래전부터 마치 압력밥솥에 안친 밥 냄새처럼 죽음의 기운이 솔솔 풍겨왔다는 걸 그는 알고 있다. 송강원은 프롤로그부터 자신을 덮쳐 온 우울증이 어떤 요소들로 조합되었는지 그 레시피를 독자에게 친절히 일러주지만, 그의 기억 속 ‘옥’은 레시피를 순전하게 따르기 위해 주방에만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대신 의상실에서 디자이너로서 커리어를 쌓아왔고, 아들이 못생긴 옷을 입고 있으면 참지 못했을 뿐이다.
이 책은 돌봄의 의무를 손쉽게 외면하는 세상의 어떤 아들들과는 다른 ‘딸 같은 아들’의 입장에서 쓰인 애도의 기록이지만, 송강원은 문득 자신의 ‘계집스러움’이 옥에게 어떤 무게였을지 생각한다. 그러면서 상상한다. “내가 딸이었다면 어땠을까.” 나 또한 그런 질문에 붙들린다. 13년 전의 나는 충분히 딸 답지 못했나? 그럼 지금은 충분한가? 답은 정해져 있다. 나는 결코 다른 내가 될 수 없다. 《수월한 농담》은 다른 내가 될 수 없는 한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와 부재를 만나는 기록이다. 어떤 부재 때문에, 언젠가 우리 모두는 남겨진 자가 될 것이다. 다가오는 미래를 가만히 읽는다.
|
|
|
🌊 송강원 《수월한 농담》을 읽고 감상을 나누어주실 구독자 총 10분을 모집합니다. 이 책을 읽어보고 싶으신 분들은 신청해주세요.
|
|
|
02.
2025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영화들 6
|
|
|
1.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Father Mother Sister Brother>
어색한 아버지와 남매, 어색한 어머니와 자매, 부모는 부재하나 친밀한 남매. 이것은 핵가족 관계망 3종 세트 메뉴다. 단선적으로 보이는 이야기들의 흐름을 솜씨 좋게 잇는 짐 자무쉬 감독의 옴니버스 영화. 미국 뉴저지, 아일랜드 더블린, 프랑스 파리에서 각기 이야기가 펼쳐지기에 눈이 즐겁다.
❍ 짐 자무쉬 감독의 전작 중 가장 좋아하는 건 <패터슨>(2017)이다.
|
|
|
2. <사랑을 꿈꿀 때 Dreams (Sex Love)>
연어를 좋아하는 노르웨이의 17세 소녀가 어느 날 학교 선생님께 덕통사고를 당한 후 인기 퀴어 팬픽과도 같은 일기를 써 내려가는데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은 그걸 정지 버튼을 찾지 못한 오디오북처럼 듣고 있게 되는 것이다. 한시도 쉼 없이 이어지는 소녀의 나레이션이 자막팀의 과로를 부른다는 생각을 보는 내내 지울 수가 없었다.
❍ 다그 요한 하우거루드 감독의 작품은 처음 봤다.
|
|
|
3. <누벨바그 Nouvelle Vague>
1959년에 프랑스에서 개봉한 장 뤽 고다르의 (시나리오는 있지만 대본은 없이 찍었다는 그 영화) <네 멋대로 해라>의 제작기를 담은 선명한 흑백 영화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창작자 선배인 장 뤽 고다르 감독에게 보내는 헌사인 동시에, 만일 같이 일한다면 복장 터질 것 같은 사람의 일 서사이기도 하다.
❍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전작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어디갔어, 버나뎃>(2019)이다.
|
|
|
4. <엄마의 시간 The Young Mother’s Home>
줌파 라히리 식으로 말하자면, 이 작은 아이는 언제나 나보다 크다. 벨기에에서 태어났지만 칸이 키운 것과 무방한 영화계의 거장(들)인 다르덴 형제(장피에르 다르덴, 뤼크 다르덴)의 10대 미혼모들을 향한 건조하지만 애정 어린 시선.
❍ 다르덴 형제 감독의 전작 중 가장 좋아하는 건 <내일을 위한 시간>(2014)이다.
|
|
|
5. <여행과 나날 Two Seasons, Two Strangers>
언어로 된 재능을 다루는 사람들이 그렇게 높지도 않은 방지턱에 자꾸만 걸려 넘어질 때, 어떻게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럴 때 여행이 언제나 근사한 대안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적당한 희망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심은경이 골똘해지는 표정을 하고 연필로 적어내려가는 필체부터 게임은 끝났다(?) 12월 극장 개봉 예정.
❍ 미야케 쇼 감독의 전작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새벽의 모든>(2024)이다.
|
|
|
6. <빅 볼드 뷰티풀 A Big Bold Beautiful Journey>
"거대하고 용감하고 아름다운(big bold beautiful) 여행 하실래요?" 그렇게 대담하게 문을 열고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어른들. 근데 이제 한 번은 익숙한 맛의 헐리우드 식으로, 또 다른 한 번은 문고리를 잡고 돌려도 슬픔이 끝나지 않는 스즈메처럼 문단속을 한다. 콜린 파렐과 마고 로비의 여정에 편안히 몸을 맡기고 빠져드는 데에는 개인적으로 실패. 10월 극장 개봉 예정.
❍ 코고나다 감독의 전작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콜럼버스>(2017)다.
|
|
|
© 넷플릭스ㅣ은중아.. 하..
new episode 152화 <은중과 상연> 듣기
“나는 너를 좋아할 수 밖에 없어. (...) 짜증나!”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에 대해 1시간 반동안 이야기 하며 깨달았다. 내가 자꾸만 은중이의 입장에서 쉴드를 치고 있다는 것을. 이 세상의 스물 한 살을 모두 줄 세워놓고 자신이 어디쯤에 있는지 “무엇은 할 수 있고, 무엇은 할 수 없는지” 알고 싶어했던 은중이. 선배를 사랑하고, 친구를 선망하기에 자기 자신으로서 사는 것도 그만큼 중요했던 은중이. 어쩌면 나처럼, 양쪽의 입장을 다 이해할 수 없는 분들이 들어주시면 좋겠다.
episode 118화 <룸 넥스트 도어> 듣기
그러나, <은중과 상연>은 내게 우정 드라마라기 보다는 (우정이 개입된) 조력 자살 드라마 쪽에 더 가까웠는데, 같은 소재를 다룬 영화가 <룸 넥스트 도어>다. 일단, 틸다 스윈튼이랑 줄리안 무어가 친구인데 틸다 스윈튼 집이 너무 멋지고 죽음을 선택한 또 다른 공간도 너무 멋지다. 그게 다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 세상 멋쟁이인 페드로 알모도바르이기 때문인데… 부쩍 존엄한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실감하는 분들이 들어주시면 좋겠다.
episode 112화 <장손>과 <딸에 대하여> 듣기
작년 추석 시즌에는 K-대환장 가족 영화 두편을 봤다. 한국의 제사 문화를 중심으로 가업을 물려받고 싶지 않은 장남의 모습을 담은 <장손>과 너무 데면데면하지만 같은 집에 사는 여자들을 그린 <딸에 대하여>가 비슷한 시기에 개봉을 했던 것이다. 다시 추석이 돌아왔으므로 지난 에피소드를 끌올한다.
episode 120화 <이가인지명> 듣기
부먹클럽을 하는동안 딱 한 번 중드 이야기를 했다. 내가 중드를 잘 보지 않는 편인데(너무 길어…) 막연하게 중드에 대한 편견이 쌓여 있는 탓에, 너른 마음을 먹고 <이가인지명> 40부작 시청에 도전한 후 대화를 나누었던 에피소드다. (<이가인지명>은 지난해 방영된 한드 <조립식 가족>의 원작이기도 하다.) 나처럼 중드에 대한 오해가 있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에피소드다.
|
|
|
🟠 광고 및 각종 문의: wildwan79@gmail.com
COPYRIGHT © CONTENTSLOG. ALL RIGHTS RESERVED.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