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목하 장편소설 <돌이킬 수 있는>을 읽으며 떠오른 음악들 ㅡ
진행. ㅎㅇ
10일에 한 번씩 뉴스레터 <콘텐츠 로그>를 보내고, 격주로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에서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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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손님. 구구
여성과 책을 잇고, 책과 활동을 연결하는 여성 독서 커뮤니티 들불의 운영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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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 "(스포주의) 마지막 페이지는 마지막에 보세요"
ㅎㅇ 오늘 함께 이야기 나눌 소설은 문목하 작가의 데뷔작이자 장편소설 《돌이킬 수 있는》(2018, 아작) 입니다. 제가 한 달 전 즈음 개인 인스타그램에서 #무물(무엇이든 물어보세요)을 진행하면서 팟캐스트용 선정도서 추천을 받았는데요. 어떤 분이 '님 오타쿠인 거 다 아니까 이 소설을 다뤄주셔야 합니다'라는 듯 이 책을 제안해주셨어요. 그래서 사전 정보 없이 그분을 믿고 가보자 했는데, 넌지시 이 책 얘기를 구구님께 꺼내보았더니 《돌이킬 수 있는》이 태어나서 가장 많이 읽은 책 중 하나라고 하시는 거예요.
구구 마무리되는 부분을 읽고 나면 ‘아 이게 뭐야?’ 하면서 관계성을 따라서 또 다시 읽어야 되고요. 관계성을 따라 읽다 보면 배경이나 형식에 있어서 확 몰입되는 부분이 또 나타나거든요. 그럼 또 그걸 다시 거슬러 올라가서 읽어야 하니까, 진짜 수도 없이 읽었죠.
ㅎㅇ 여러 번 읽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비슷하게 느끼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이 책을 펴낸 아작 출판사에서 2021년에 국내 SF 작가, 번역가, 평론가 100인을 대상으로 ‘단 한 권의 아작을 꼽는다면’이라는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이 책을 꼽아주신 분들 중, 이다혜 기자님은 "읽는 동안보다 다 읽은 다음이 더 좋아서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 민규동 감독님은 "돌이킬 수 있다면 이 작품을 읽기 전으로 돌아가서 그 놀라운 설렘과 흥분을 다시금 느끼고 싶다"는 코멘트를 해주셨어요. 이 뿐 아니라, 이 설문조사에서 《돌이킬 수 있는》이 집계 결과 1위를 차지를 했더라고요. 기존에 SF와 장르물을 좋아하시는 분들 내에서도 즐겨 읽혀 온 작품이자 사랑받는 작가님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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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목하 《돌이킬 수 있는》(2018, 아작)
ㅎㅇ 그럼, 우리도 처음 읽었을 때로 돌아가서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나누어보아요.
구구 먼저, 제목에 대한 인상인데요. 보통 '돌이키다'라는 말을 쓸 때 뒤에 꼭 붙는 말이 '없는'이잖아요? 근데 이 책 제목은 '돌이킬 수 있는'이란 말이죠. 그래서 무언가를 돌이키는 얘기 겠거니 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그런 첫인상이 상당 부분 맞아떨어지긴 했어요.
두 번째로는 챕터에 대한 인상인데, 여러 챕터가 '당신이 OO한 이야기'라고 쓰여 있어요. 당신이 시작한 이야기, 마주한 이야기, 감내한 이야기 같은 식으로요. 목차만 보면 여기에서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가 싶어지는데, 읽다 보면 주인공 ‘윤서리’를 지칭하는 말이구나 싶죠. 그럼 또 다른 누군가가 주인공을 보면서 당신이라고 지칭했다는 거잖아요. 그러다보니 그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를 따라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에 가서야 모든 걸 알 수 있게 되어서 그 점이 정말 재미있었고요.
ㅎㅇ 맞아요. 반드시 이 소설은 마지막까지 가셔야 합니다.
구구 반드시 가서 마지막 문장을 확인 하셔야 해요.
ㅎㅇ 실제로, 먼저 읽어보신 독자 후기 중에 마지막 문장에 대한 감탄이 정말 많잖아요. 마지막 문장이 무엇인지 말할 수는 없지만, 저희가 그 문장을 보게 됐을 때 어땠는지 감상을 나눠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구구 되게 짧은 문장인데, 사실 저는 이야기가 거기서 다시 시작된다고 느꼈거든요. 장르적으로 전복이 되는 대사였던 것 같기도 해요. SF이자 판타지이자 미스터리였지만 이 대사 하나로 완전히 다른 장르라고 이해 할 수 있게 만들어버려요.
ㅎㅇ 정확해요. 어떻게 마지막 문장으로 장르가 하나가 추가될 수가 있는 거죠? 문장 자체로 미문은 아니기 때문에, 어떤 맥락에서 나온 건지 알지 못하면 그게 어떤 문장인지 듣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으실 거예요. 아무튼 저희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굉장히 짧고 쉬운 문장으로 마친다는 것입니다.
구구 저는 마지막 문장을 뱉는 사람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못 하고 있었어요. 즐겁게 체념한 듯이 말하잖아요. 즐거움과 체념이 공존할 수 있는 감정인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더 신선하고 짜릿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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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로 듣기 ▶️
재생 시간: 1시간 4분
✮(주의) 오늘의 에피소드에는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돌이킬 수 있는'을 먼저 읽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SF와 판타지와 미스터리의 결합, 그런데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으로 장르가 하나 더 추가 되는 이 소설. 마지막 문장을 누가 어디서 왜 말하는지만 빼고는 시원하게 다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 전체 에피소드 살펴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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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ㅇ 이제 《돌이킬 수 있는》을 읽으면서 떠오른 음악 이야기를 해볼텐데요. 오늘 서로의 선곡을 보고나니 “책을 읽고 나서 이 노래들을 들어보시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저희가 오늘따라 무척 디테일한 스포일러가 포함된 구절과 장면들을 기반으로 선곡을 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어보신 분들이 이 노래들을 듣고 어떻게 느끼셨는지 알려주신다면 더욱 좋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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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있는>의 주요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구 저는 여자친구의 ‘앞면의 뒷면의 뒷면’을 선곡했습니다. 이 곡은 2020년 11월에 발매된 여자친구 정규 3집 [回:Walpurgis Night]의 수록곡이자, 여자친구로서 발매했던 마지막 앨범의 마지막 트랙이기도 해요. 사실 ‘앞면의 뒷면’까지는 이해가 되잖아요. 근데 거기서 또 뒷면이 있다는 거예요. 제 방식대로 이해를 해보자면, 앞면에 뒷면이 있는데 그 뒷면에 또 다른 이면이 있을 때 그 이면을 관찰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다른 존재가 있어야만 ‘앞면의 뒷면의 뒷면’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죠.
이 책의 서사 자체가 윤서리의 이야기처럼 흘러가지만 사실은 경선산성에서 이경선의 뒤를 잇는 후계자 격인 정여준의 이야기로도 볼 수 있거든요. 정여준도 나름대로 주요한 역할을 많이 맡고 있는 인물이잖아요. 하지만 저는 결국 그가 이 모든 스토리를 조망하는 관찰자라고 읽혔습니다. 이 노래 속의 또 다른 존재와도 비슷한 거죠. 제목의 의미는 여기까지고, 가사의 내용은 이런 거예요. 시간의 바퀴 끝에서 또 다른 시간과 마주하게 될 거고, 결국 또 하나의 새로운 바퀴가 시작되듯 우리의 삶도 계속될 거다.
ㅎㅇ 이과 노래네요.
구구 그렇죠. 무한궤도처럼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것이요. 이건 소설 속 윤서리의 삶을 요약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마찬가지로 정여준의 삶에 대한 것이기도 하거든요. ‘정지자'인 정여준은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능력을 가졌어요. 그런데, 단순히 현재의 시간을 멈출 수도 있겠지만, 그의 능력과 다른 능력이 맞부딪히는 순간에서 또 새로운 힘을 발휘 하잖아요.
ㅎㅇ 이 부분을 저는 되게 여러 번 읽었어요.
구구 이 부분이 단번에 이해하기는 힘들죠. 그래서 이 대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작가님이 단서를 많이 흘리셨다는 생각이 다시 읽으면서 들더라고요. 소설 속의 ‘머리카락’ 장면 같은 것이요. 사실 서로 다른 능력이 맞부딪히면 희한한 일이 일어나요. 그리고 이 점이 결국은 결말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이 노래가 더욱 정여준의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거대한 미로 속 갇힌 것 같았어”라는 도입부 가사부터 정여준의 상황을 대변해주는 듯 하고요.
제가 지금까지 설명한 것만 들어보시면 암울한 곡으로 느껴지실 수도 있는데, 낙관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곡이에요. 비슷하게 반복되는 삶을 살겠지만 그래도 계속 나아가보자라는 메시지요. 저는 ‘복원자'인 윤서리가 계속해서 시간을 되돌리는 이유, ‘정지자'인 정여준이 계속해서 시간을 멈추는 이유와도 연결이 된다는 점에서 이 곡을 떠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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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있는>의 주요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ㅎㅇ 저는 방탄소년단의 ‘i’m fine’을 선곡했습니다. 일단 이 노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save me’라는 곡이 있어요. 이 둘의 관계성에 대해서 제가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이미 전세계의 아미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Save me’(2016)로부터 2년 후에 ‘i’m fine’(2018)이 발표됐는데, 방탄소년단은 실제로 무대에서 이 두 곡을 이어서 보여주는 경우가 꽤 있어요. 먼저 ‘save me’를 부르는데 곡이 끝나면 전광판에 떠있던 “Save me”라는 필기체 텍스트가 뒤집어집니다. 그럼 이게 “i’m fine”으로 보여요. 그런 연출과 함께 ‘i’m fine’이라는 노래가 시작 됩니다. 먼저 발표된 곡의 가사에서 조금씩 이어지는 내용으로 나중에 발표된 곡의 가사가 쓰여 있어요. ‘save me’는 말 그대로 나를 구원해 줄 사람은 너밖에 없고 내가 내민 손을 잡아달라는 메시지를 갖고 있는데요. ‘i’m fine’은 이제 나를 구원해 줄 사람은 나고, 우리가 반드시 함께 가지 않아도 이제 괜찮다고 말해요. 성숙한 자아라고 표현 하기도 하는데요. ‘save me’가 수록된 앨범 제목이 [화양연화 pt. 2]여서 실제로 한참 방탄소년단이 청춘 서사를 이야기 하고 있었을 때에요. ‘i’m fine’은 그들에게 있어 옛 시절보다 더 성숙한 자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죠.
이 곡을 떠올린 이유는 세가지 정도가 있어요. 가장 큰 이유는 이게 ‘시간'을 주요 모티프로 쓰는 SF 소설이라는 점이기 때문이에요. 서로 다른 시간을 다루지만 그러나 이어지는 이야기라는 설정을 가진 곡들 중 하나로 떠올랐고요.
그 다음으로 이 소설에 ‘나선형 계단'이 있잖아요. 싱크홀에서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연대해서 위로 쌓아올리는 계단이요. 근데 ‘save me’ 안무에 그 나선형 계단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 굉장히 많아요. 이 곡의 도입부를 V가 부르는데, V가 누워있고 그의 등을 제이홉과 슈가가 팔로 받치고 있어요. V를 살짝 공중에 띄웁니다. 가끔 케이팝에 그런 게 있잖아요. 뭐 이렇게까지 안무를 어렵게 해야 했나! 대단하네! 싶은 것들이요. 그런데 처음에는 한 멤버를 두 멤버가 받쳐주고 있었는데, 이 곡이 진행되는동안에는 한 멤버를 중심으로 나머지 여섯 멤버들이 달라붙는 구도가 자주 연출되거든요. 이게 마치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처럼 보였달까요.
마지막으로 노래 제목이 ‘i’m fine’이잖아요. 이 노래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고, 모두가 ‘fine’한 상태를 향해 가고 있다는 점이 잘 보였어요. 윤서리는 싱크홀 이후의 유령도시 속 '비원'과 '경선산성'이 서로 소모전을 펼치는 대신, 함께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굳은 믿음을 가진 인물이에요. 그걸 위해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쓰는 사람이기도 하죠. 윤서리는 더 나은 방법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에요. 게다가, 윤서리가 자꾸 시간을 돌리는 게 정여준이 자기 대신 죽는 장면에서 벌어지는데요. 이 장면에서 매 번 정여준이 죽기 직전에 하는 마지막 말이 “무사해서 다행이에요"입니다. 여기서 다행이라는 것도 결국, 현재의 자신은 'fine'하다는 것이겠죠.
구구 처음에 윤서리는 정여준의 죽음을 막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죠.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이 그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그 답은 정여준이 아니라 윤서리한테 있었던 거잖아요. 종국에 윤서리가 택하는 방식이 정여준이 기준이 되는 방식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이게 방탄소년단의 노래 ‘save me’에서는 구원의 주체가 상대방인데, ‘i’m fine’에서는 구원의 주체가 내가 됐다는 점과 맞닿아 있네요. 구원의 주체를 자기자신으로 가져오는 과정 또한 이 곡과 잘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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