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 '국제 마인드 뷰티 콘텐츠 그룹'이라는 사명이 근래에 좋아 보이는 모든 것을 다 때려박은 이름이잖아요. 첫 페이지에서 사명을 보면서 직감 했어요. 아, 너무 괴로울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직원들이 쓰기 어려운 연차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제가 제일 분노하는 포인트거든요. 직원이 연차를 쓰기 위해 대표의 호의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요. 그리고 우리들이 회사를 다니면서 늘 푸념하듯 하는 말이 있잖아요. "여기처럼 체계 없는 데가 없어." 그 말을 모두가 하고 있어요. 만나는 사람들이 전부 다. 체계 있는 회사는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요. 그런데 역시 이 국제 어쩌고 회사도 체계가 전혀 없어요. 그리고 대표 박국제씨가….
아니 사실 '국제 마인드 뷰티 콘텐츠 그룹'이 박국제 대표의 이름이 들어간 사명이죠. 근데 박국제는 정말 감정이 널 뛰는 사람이예요. 여기서 상급자의 감정에 따라 회사의 모든 일이 좌지우지되고, 그의 기분에 따라 크고 중요한 프로젝트가 너무나도 쉽게 드랍되는 경우를 보여주고 있어요.
ㅎㅇ 몇 번이나 대표가 삐진다는 장면들이 있잖아요. 제가 정말 참을 수 없는 부분은 이런 거예요. 회사의 리더가 직원들 앞에서 삐지는 것.
구구 이런 전반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는 걸 봤을 때, 이 책은 사회 고발 도서가 아닌가 싶어요. 어떤 노동청 박물관 같은 데에 들여 놓아야 하는 책이에요.
ㅎㅇ 노동청 박물관…. 그런 곳이 실제로 있나요?
구구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들여 놓아야 할 것 같아요. 직업인 A님의 <스타트업 수난기>와 함께 비치 되서, 많은 기업 대표들을 위한 표본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회사에는 ‘타격 품앗이 룰’이라는 게 있다고 하죠. 3명의 팀원이 있는데요. 그 중 한 사람이 박국제 대표와 갈등을 겪는 상황이 생기면 나머지 두 사람이 방패막이 되어준다는 거예요. (대표의 미움을 사서) 일이 한 사람에게 몰릴 때 적절히 일을 나눠가지는 것까지도 포함 되어 있고요. 그런 룰이 있다는 게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직원들이 이런 룰을 고안해야 할 정도라니 이 회사는 참 쓰레기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제가 깔깔 웃으면서 본 에피소드는 주인공 다정(DJ)이 '뤼 귀아쟝 (feat. 넌 줄 알았어)'라는 곡을 만드는 장면이에요. 박국제가 "이 과장! 넌 줄 알았어!"라면서 막 소리를 지르는데, 다정이 그걸 몰래 녹음 해놨다가 힙합 스타일의 곡으로 만들죠. 사실 저는 이 책이 전반적으로 힙합처럼 느껴졌어요. 곳곳에 쓰인 라임이나 비유 같은 것들을 보면, '이거야 말로 진짜 한국 힙합이잖아?' 싶더라고요.
직업인 A 다정이 이 노래를 밤새 만든다고 하잖아요. 직장인의 광기를 봤어요. 출근해야 하는데 다 제쳐놓고 잠도 안 자고 노래를 만들었다는 게 너무 웃긴 거예요.
구구 출판사에서 이걸 음원으로 좀 내주시면 좋겠어요. 작가님이 하기 어려우시다면, 이영지 씨 같은 분을 섭외해서라도 음원 발매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ㅎㅇ 잠시만요. 왜 직장인이 갑자기 녹음기를 켜고 퇴근해서 힙합 음원을 만드나, 그리고 주인공 다정이 DJ? 책을 아직 안 읽은 분들이라면 이쯤에서 게슈탈트 혼란이 오실 것 같은데요. 스타트업의 묘미 중 하나가 뭔가요. 영어 이름 쓰기잖아요. 초반부에 사내에서 쓸 영어 이름을 정하는 장면이 나오죠.
- 김다정 = DJ
- 오지구 = Earth
- 이수진 = Susan
주인공 다정은 이름의 철자를 따서 'DJ'가 된 거예요. 이렇게 DJ 주임, Earth 대리, Susan 과장 순으로 팀원들의 영어 이름이 정해집니다. 박국제의 영어 이름은 'James'에요. 스타트업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남성 이름! CEO James! 나중에 몇 명의 팀원들이 충원 됩니다.
구구 근데 박국제는 이 영어 이름을 다 못 외우고 헷갈려하죠.
ㅎㅇ 그래서 영어 닉네임제를 무효로 하고 다시 한글 이름을 부르는 쪽으로 돌아가는데, 이조차도 스타트업 같죠.
구구 중간에, 박국제가 한글 이름과 영문 이름을 같이 혼용해서 부르자고 제안하는 장면이 있었잖아요. "오지구 Earth 대리~!" 처럼요.
ㅎㅇ 정말 어쩜 좋아요. 직업인 A님이 받으신 인상도 궁금합니다.
직업인 A 이 책의 장르가 '시트콤 소설'이잖아요. 저는 늘 어두운 소굴을 떠올리는 편이라 그런지 '스타트업이 어떻게 시트콤일 수가 있어?' 싶었어요. 동시에, 작가님이 어떤 식으로 스타트업 이야기를 풀어내셨을지 기대 되더라고요. 무엇보다 '임보정'이라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살려보기 위한 작가님의 노력이 느껴졌던 것 같아요. 책을 끝까지 읽고보면, 임보정이 한 행동이 옳은 건 아니지만 좀 딱하게 느껴진달까요? 왜 그럴 수 밖에 없었을지 독자로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는 부분도 있었고요.
제 만화 <스타트업 수난기>에도 '브레드'라는 캐릭터가 있는데, <언러키 스타트업>의 임보정 씨 같은 면이 있어요. 제가 브레드에게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는데요. 아마 작가님도 그런 맥락으로 임보정 캐릭터를 만들어 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 소설을 보면서, 스타트업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고 있는 창작자로서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오르게 된 것 같아요.
ㅎㅇ '임보정'은 나중에 충원 된 경력직 신입 캐릭터죠. 저는 이 얘기를 꼭 하고 싶어요. ‘경력직 신입’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기기괴괴한 단어잖아요. 경력이면 경력이고 신입이면 신입이지 경력직 신입이 뭐예요. 아직도 어느 채용 공고를 보면 "신입 채용이 열렸습니다!"라고 하고서 아래 별표를 달고 "경력직 신입 환영"이라고 기재 되어 있어요. 그럼 경력이 있는 사람 보고 지원하라는 거잖아요.
직업인 A 비슷하게 '중고 신입'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구구 회사 입장에서 경력직을 뽑고 싶지만, 대신 신입의 연봉을 주고 싶은 거죠.
ㅎㅇ 그러니까요. 저는 1/3쯤 읽었을 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자서전 같아. 소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현실감이 있었어요. 그리고 이 회사가 진짜 난장판인데 주인공 다정이 엄청나게 좋은 팀원들을 만났다는 걸 알 수 있잖아요. 언젠가 제가 만났던 좋은 팀원들을 떠올리기도 했어요. 다시 한 번 그 때 나랑 진창에 있어줬던 팀원들에게 고맙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읽고 나서 든 감상은 《언러키 스타트업》을 오디오북 버전으로 들어보고 싶다는 거였는데요. 요즘 '왓챠 파티'처럼 OTT 영상을 함께 보면서 채팅을 하는 기능이 있잖아요.* 작가님의 낭독 버전을 들으면서 독자들이 같이 채팅을 했으면 좋겠는 거예요. 이 소설 속에 있는 디테일들을 들으면서 함께 떠드는 거죠. 정지음 작가님의 차기작부터 적용 된다고 예를 들어보자면, 오디오 포맷으로 소설이 연재 되는데 마치 유튜브 스트리밍처럼 매 주 금요일 5시에 연재분을 최초 공개를 하는 거예요. 그걸 듣는 사람들끼리 채팅 하면서 웃고 울고. 괜찮은 사업 아이템 아닌가요? 출판계에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려고 하시는 것 같아서 저는 '오디오북 최초 공개 스트리밍' 한 번 추천드려봅니다.
* 왓챠 파티: OTT 왓챠 내에서 같은 영상을 보는 참가자가 채팅을 통해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기능. 호스트가 영상 재생 권한을 가지고, 재생, 일시 정지, 구간 이동 등 호스트의 영상 설정에 따라 함께 영상을 감상한다. 호스트는 물론 참여자도 해당 OTT 서비스에 가입된 상태여야 한다.
구구 요즘 오디오 드라마 같은 것들도 많이 나오잖아요. 아까 말씀 드렸던 음원 제작과 함께… 너무 재미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