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베 얀손 <페어플레이>를 읽으며 떠오른 음악들
일러두기 Guide to read
- 이번 호는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의
2022년 1월 25일자 에피소드 일부를
재가공한 버전입니다.
- YOUTUBE, VIBE 링크를 통해
소개 된 음악들을 함께 들어보세요.
- 별도 페이지로 보시려면, 여기서 읽어주세요.
|
|
|
ㅡ
초대손님. 구구
여성과 책을 잇고, 책과 활동을 연결하는 여성 독서 커뮤니티 들불의 운영자다. |
ㅡ
진행. ㅎㅇ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의 격주코너 '믹스테이프 픽션'에서 소설과 케이팝 이야기를 하고 있다. |
|
|
Podcast Episode
ㅎㅇ '토베 얀손'은 1914년에 핀란드 헬싱키에서 출생한 작가이고 생애 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소설가 등등 다방면으로 활동을 했는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아무래도 무민 시리즈일 것 같아요. 오늘 토베 얀손의 작품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작가가 가진 이력이 흥미로워서였습니다. 이 사람이 꽤 다양한 활동을 했는데 요즘 저를 포함한 요즘 사람들이 되게 경도되어 있는 '다능인'이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한 가지 영역이 아니라 되는 대로 일단 모든 영역을 다 파서 파이프라인화를 해야 된다는 생각이 만연한 시기인데요. 토베 얀손은 많은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역량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고 창작력이 불타오르는 그런 사람이기도 했죠. 토베 얀손 생애와 작품 얘기를 하면서 이러한 메시지들 속에서 좀 초심을 다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소설 《페어플레이》는 해변이 보이는 집에서 복도를 사이에 두고 각자의 작업실에서 살고 있는 욘나와 마리의 이야기에요. 해변이 보이는 집은 아마도 토베 얀손이 살았던 북유럽의 어느 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듯 합니다. 저희가 한국 독자다 보니, 이를테면 영미권 소설을 보거나 일본 소설을 읽을 때보다는 북유럽 작가가 쓴 소설에 대해 읽기전부터 거리감이나 오해가 있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핀란드에 대해서 우리가 알거나 모르는 것들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영국인 저널리스트 마이클 부스가 쓴 스칸디나비아 5개국 기행문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을 보면, 핀란드인은 세계에서 가장 과묵하고 소문이나 의미 없는 잡담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어요.* 그리고 어느 해인가 한 설문조사에서 핀란드인들더러 자신을 설명하는 형용사를 선택하라고 했는데 "느린, 충실한, 직설적인, 내성적인, 시간을 잘 지키는"같은 키워드를 꼽았다고 해요. 가서 살고 싶어요.
구구 유명한 핀란드 속담 중에 "내성적인 핀란드인은 대화할 때 자신의 신발을 쳐다보고, 외향적인 핀란드인은 상대방의 신발을 봅니다"라는 말이 있대요. 저는 완전 박장대소를 했어요. (...) 그리고 트위터에 '오세요 핀란드'라는 계정이 있었는데, 그 계정이 진짜 인기가 많았어요.** 그 계정에 올라오는 트윗들을 보면 핀란드는 차갑고 개인주의 성향이 짙은 곳 처럼 보였는데요. 그런 식으로 그 나라에 대해 조금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기도 했던 것 같아요.
ㅡ
* 마이클 부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글항아리, 2018) : 부제는 '거의 미친 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을 탐방한 저자가 이 중 최고의 국가로 꼽은 곳은 '핀란드'였다. 참고로, 재미있긴 한데 미친 듯이 웃기지는 않다.
** 오세요 핀란드 (@moimoifd) : 2017년 2월부터 2018년 4월까지 운영 된 계정으로, 핀란드에 사는 한국인이 운영했던 계정일 것으로 추정된다. "오세요 핀란드 맛집은 없어도 나무가 널렸다", "오세요 핀란드 몸도 얼고 마음까지 얼어" 등 이변이 없는 한 동일한 여섯 글자로 운을 띄우는 트윗을 꾸준히 업데이트 하며, 터를 잡은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핀란드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
|
|
ㅎㅇ 욘나가 웃긴 말들을 많이 했는데, 그 중에서도 48쪽에 정말 너무 웃기다고 생각했던 대사가 있어요. "섬에서 두 사람은 어떻게든 견딜 수 있지만 셋은 좀 힘들어."
구구 그러니까 욘나는 딱 1:1의 관계만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인거죠.
ㅎㅇ 추가 룸메이트는 안 돼! 저는 욘나에게서 저의 모습을 많이 보게 됐어요. 마리는 이런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욘나를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고요.
구구 주요인물인 욘나와 마리를 키워드로 살펴볼게요. 욘나는 원칙주의자이고, 쓸데없는 얘기하는 걸 굉장히 안 좋아하고, 삶의 역동과 변화를 추구해요. 반면에, 마리는 지속적으로 어떤 일을 해나가는 것에 중요성을 두고 있고, 안정적인 생활, 매일의 루틴과 일상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요. 이성적 vs 감성적으로 굳이 분류를 해보자면, 욘나는 전자에 마리는 후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ㅎㅇ 두 사람이 대비되는 캐릭터라는 게 가장 먼저 드러나는 건, 마리의 작업실 벽면에 걸려있는 회화 작품들을 보고 욘나가 전면 재배치를 하려고 하는 장면에서에요. 욘나가 또 이런 말을 하죠. "물론 그 벽은 앞으로도 정확하게 대칭이어야 해."(p.17) 한 치의 오차 없음이 중요하고, 자기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걸 자기의 안목대로 통제를 해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말 같아요.
이 장면을 보면서 떠오른 곡은 수민, slom의 '일단은'이예요. 다음 가사를 비롯해서, 욘나와 마리가 작품 초반부터 주고받는 대화의 리듬감과 이 곡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랑 나 춥지도 덥지도 않아 너랑 나 이제 지겹지도 않아 수수께끼 같아 우리 사이 상태" -수민, slom '일단은'
프로듀서인 slom을 만나기 전부터 수민은 싱어송라이터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고, 자신의 음악을 스스로 '네오 케이팝'이라고 지칭하기도 하는 아티스트였어요. 아이유 '에필로그', 방탄소년단 지민 솔로곡 'lie'를 비롯해 수년간 케이팝 작업을 해왔고요. 그런데, 자신이 이미 다양한 음악을 잘 만들거나 부를 수 있는 사람인데도 신뢰할 만한 다른 프로듀서랑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신뢰할 만한 사람이 slom이었던 거고요. 그래서 이 'MINISERIES'(2020)는 두 사람이 합작하여 만든 앨범입니다. slom-수민이 서로 신뢰할 만한 창작 동료이자 수수께끼 같은 관계라는 점 역시, 욘나-마리의 관계와 비슷하게 느껴졌어요. |
|
|
구구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먼저 옥상달빛을 떠올렸어요. 일단 옥상달빛 멤버 세진, 윤주는 오랫동안 친구 관계였고 대학교에서 만나 졸업 후에 팀을 결성했죠. 옥상달빛이 방송에서 주고받는 대화의 티키타카가 소설 속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최근에 읽은 야스토미 아유무의 《단단한 삶》을 보면 잘 살기 위해, 온전한 자립을 하기 위해, 실은 혼자 서는 게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메시지가 있어요. 욘나와 마리의 관계가 바로 균형이 가능하고, 그 온전한 자립을 완성시키는 사이라는 생각을 했고요. 그래서 이런 균형감각을 담아낸 '발란스'를 선곡 하게 되었습니다.
ㅎㅇ 이 노래의 킬링 포인트는 제목에는 '발란스'라고 써있는데, 정작 노래 안에는 '밸런스'라고 가사가 쓰여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구구 맞아요. 앨범 표지를 보면 신발을 벗고 둘이 시소를 타면서 균형을 맞추는 그림이 있는데요. 아마 사람의 맨발을 표현하려고 '발란스'라는 제목이 붙은 게 아닐까요.
ㅎㅇ 저는 '국립국어원의 표기법에 따르면 '밸런스'라고는 제목에 쓸 수가 없는걸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 확인된 사실은 아닙니다
구구 저도 찾아보진 않았지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이 노래가 떠오른 이유가 또 있는데요. 79쪽을 보면 두 사람이 영상 촬영본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프레임의 구석, 가려진 부분을 살릴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마리와 대화를 나눠요. 마리가 "너 여기는 잘라야겠다. 아무도 무슨 의미인지 모를 거야. 너무 어두워" 라고 말하니까, 욘나가 되게 무심하게 말해요. "여기는 아주 까매도 상관없어. 마리가 거기 있었으니까. 안 그래?" 라고요. 이 때 마리는 "그래 내가 거기 있었지"라고 대답해줍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엄청 울컥했거든요. 빛과 어둠 사이에 어떤 균형을 맞춰야 한다면 서로의 존재가 바로 그 균형점이 되는 것이고, 이 부분과도 '발란스'가 잘 어울린다고 보았습니다.
덧붙여서, 욘나는 무언가가 멈춰 있는 게 싫다면서 사진 보다는 영상을 선호하는 사람인데요. 두 사람이 수족관에서 영상을 찍다가 좋은 장면이 그들의 눈 앞에 나타났을 때 그걸 놓칠까 봐 전전긍긍한다는 설명이 나와요. 저는 그 부분이 현대인의 FOMO 증후군과 좀 비슷한 것 같았어요. 어쩔 수 없이 창작자들이 겪는 하나의 딜레마인 건가 싶으면서도 즐겁게 읽었습니다.
•"마침 필름이 끊겼을 때 무언가 놀라운 일이 자신들에게 닥칠까 봐. 두 번 다시 되풀이할 수 없는 길거리의 사건이 자기들 눈 앞에서 벌어질까 봐. 그러면 놓쳤음을 잊으려고 애쓰면서 다녀야 하리라고 염려하며." -《페어플레이》, p.74
ㅎㅇ 현대인의 FOMO를 묘사한 걸 즐겁게 읽는 현대인이라니요. 단어만 놓고 보면 귀엽긴 한데, 외국사람들은 어쩜 이렇게 말을 잘 지을까요! 'Fear of Missing Out.' 풀이하자면,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뜻이죠. 아니 무슨 디저트 가게 이름 같은데 뜻은 전혀 아니잖아요.
|
|
|
ㅎㅇ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자우림의 'EURYDICE(에우리디케)'가 떠올랐습니다. '에우리디케'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이에요. 아내를 찾기 위해 지하 세계로 향하는 '오르페우스'가 아내를 구해오는 길에 뒤를 절대로 돌아보지 말라는 저승의 왕 하데스의 명을 받게 되는데, 결국 뒤를 돌아봐서 아내가 굳어버려요. 그래서 아내를 잃게 됩니다.
자우림은 이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이 노래를 만들었는데요. 오르페우스 입장에서 찾고 싶은 "나의 에우리디케"를 외치고 있기 때문에, 원래 화자는 남성(남신)이에요. 그런데 이걸 여성보컬인 자우림이 불렀다는 것, 이게 진짜 치이는 부분입니다.
욘나와 마리는 창작을 위한 가치를 추구하는 공생 관계이기도 해서 소설 제목처럼 '페어플레이'에 부합하는 사이입니다. 하지만, 함께 고난을 겪는 것 처럼 보여도, 어느 순간부터는 (창작은 각자의 일이므로) 각자의 걸음으로 헤쳐나가야만 하는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그리고 이 신화처럼, 뒤를 돌아보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오르페우스는 결국 자기 고집대로 뒤를 돌아보는데요. 그 점은 욘나의 성향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
|
|
오늘의 레터를 공유하려면,
고양이를 클릭해주세요!
3,727분의 구독자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2월 2일(수)에 콘텐츠 로그로 다시 만나요.
모두들 설 연휴 느긋하게 보내셔요!
Copyright © 2019-2022, ㅎㅇ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