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을 읽으며 떠오른 음악들, 그리고 음악으로 듣는 <우빛속>까지! - 이번 호는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의 격주 코너 <ㅎㅇ의 믹스테이프 픽션>의 A/S레터 입니다. 2021년 9월 14일자 에피소드의 일부를 재가공하였고, 소개된 노래와 영상들을 보실 수 있도록 모아서 보내드려요. - 해당 에피소드 청취 후 읽어보시면 더욱 좋지만, 레터만 보셔도 큰 무리가 없으시도록 편집했어요. - 별도의 페이지로 보시려면, 여기서 읽어주세요. 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자이언트북스, 2021) X ⓒ VIBE, MIXTAPE FICTION ⚫ 한 줄로 말하는 <지구 끝의 온실> "독성먼지 더스트가 만든 재난 속에서 새로운 풍경을 만드는 식물과 끝내 망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 1. [에디터리:] 저는 김초엽 작가님이 전작에서 인류애적인 모습을 보여주셔서 따뜻하고 좋다, 위로가 된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이번 책에서는 공동체, 그리고 그 공동체를 이루는 인간의 속성을 냉정하게 보고 있어요. 이점은 다음 구절들 속에서 '나오미'라는 인물이 하는 말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는데요. 현재 이 사회를 이루고 있고 이런 현실에 처하게 만든 기성세대에 대한 판단이 냉혹하고요. 그들이 꼭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 같았습니다.
"어리고 약한 사람들은 더 많이 죽었다. 그 모든 것이 나는 끔찍하게 싫었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모든 현실이." (p.128) (…)
"그들은 우리를 착취하고 내팽겨쳤다. 그 사실만은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왜 버려진 우리가 세계를 재건해야 할까." (P.215)
[ㅎㅇ:] 그래서, 악동뮤지션의 '전쟁터 (feat. 이선희)'(2021)를 나오미에게 들려주고 싶어요. 이런 말들을 하는 나오미가 아직 10대이기 때문에 다 놓아버리고 싶고 망해버리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살아갈 날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대로 여생을 살기는 억울하다고 생각할 것 같기도 했거든요. 우선 '전쟁터'의 MV를 보면, 아이들이 나와서 총 들고 수류탄을 던지는 그런 폐허가 눈에 들어와요. 물론 성인들의 삶도 폐허 그 자체이고 전쟁터이긴 하지만, 이 곡은 태어났을 때부터 인생은 전쟁이고 우리는 계속 싸워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악동뮤지션 수현은 "이번 전쟁이 끝나도 어차피 다음 전쟁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그냥 이 노래를 듣고 전투력을 얻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더라고요. 독성먼지 더스트가 가라 앉더라도 사실상 이게 전쟁의 끝이 아니고, 또 다른 전쟁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 그런 현실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는 곡이고, 동시에 이 소설도 그렇습니다. 2
식물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소설이고, 그 중에서 '모스바나'라는 식물은 인간에게 희망도 주고 절망도 주는 굉장히 중요한 대상입니다. 이 식물에 대한 꽤나 상세한 묘사들이 322페이지부터 쭉 나오는데요. 덩굴식물의 일종으로 현재 위기를 일으키고 있는 독성먼지 더스트의 농도를 낮추는 식물이고, 한 번 심겨지면 굉장히 빠르게 퍼질 정도로 증식력이 엄청난데 반해, 독성을 가지고 있어서 인간과 원래 생태계에 심겨진 식물에게도 해로워요. 그런데, 개량 과정에서 부산물이 생겼는데 '식물에서 푸른 빛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식물이 어느정도는 유해한 속성을 가졌음에도, 어쨌든 이 푸른 빛들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쓸모 없지만 아름다운 것들이 늘 있는 것 같고 그런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지점이었습니다. "푸르게 빛나는 먼지들이 공기중에 천천히 흩날렸다. 나는 숲을 푸른빛으로 물들이는 그식물들을 보며 고통은 늘 아름다움과 같이 온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면 아름다움이 고통과 늘 함께 오는 것이거나." (p.234)
나이트오프의 '반짝이는 순간들은 너무 예쁘니까'(2020)는 모스바나의 푸른 빛을 보면서 떠오른 곡이에요. 가사가 16줄인데 그 중에 '반짝이는 순간들은 너무 예쁘니까'라는 가사가 총 11줄 입니다. 거의 70%를 이 말이 점유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는데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진짜 그런 것처럼 믿어지게 되는 신기한 노래에요. 사실, 푸른빛 같은 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장면은 우리가 하는 일 중에 예상치 않았는데 얻게 된 부산물, 덤에 대해 정확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3.
마지막으로 레이첼이라는 인물 이야기를 해볼게요. 그는 안온한 자기만의 온실에서 식물을 탐구하는 식물학자입니다. 온실 바깥의 사람들은 그가 재배하는 식물들이 유용해서 마치 그를 구원자처럼 대합니다. 그런데 레이첼은 능력자이긴 하지만 누군가의 케어를 받아야 하는 존재로 나와요. 기계로 된 팔을 이식했고, 이게 신체에 완벽하게 접합이 된게 아니라서 계속해서 누군가 이걸 수리해줘야 하거든요. 레이첼은 사이보그이고, 이 소설은 '세상에 온전한 인간이라는 건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처럼 보입니다. 도대체 레이첼이 무슨 목적으로 이 식물들을 재배하는지, 뭘 하고 싶은 건지, 왜 이렇게 사는지, 마을 사람들은 당연히 모르고요. 그나마 그와 교류를 조금 하는 편인 지수도 레이첼의 속내를 알지 못해요. 물론, 사이보그에게 마음이 있는가? 라고 하면 여러가지 대답이 나올 수 있을텐데요. 소설 속에서는 레이첼의 심경이 변화하는 과정이 있어요. 서리의 'Hairdryer'(2020)는 사이보그인 레이첼이 어떤 식으로 마음의 소리를 표현하는가를, 형식적으로 잘 보여주는 노래 같아서 선곡 했어요. 서리는 'BTS 정국의 PICK!'이라는 식으로 바이럴이 되기도 했던 2020년에 데뷔한 싱어송라이터입니다. 가장 최근에는 마블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OST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이 곡은 처음에 엄청 잔잔하게 재즈 음악처럼 시작해요. 그러다가 중간에 한 번 기계적인 목소리로 반전이 됩니다. 가사도 영어로 전환이 되고요. 저는 이 전환이 레이첼의 시점에서 부른 노래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래 서두의 잔잔한 배경음과 한국말보다 오히려 알아들을 수 없는 기계음의 영어가사로 반전되는 부분이 더 집중이 잘 됐어요. ㅡ : EXO의 [THE WAR] 앨범 커버에는 '극락조화'가 있는데, EXO 팬들은 그렇게 식물의 팬이 됩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은 저도 한발짝 식물에 가까워집니다. : 지금 지구에서 인간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논픽션입니다. 에디터리님의 추천 도서. ☑️ 혁오 'silverhair express' (장기하 remixes) (2020) : "혁오 노래를 리믹스 했는데 거기서 장기하씨가 나레이션을 하거든요. 원곡을 똑같이 둔 채로, 장르를 바꾸거나 음을 바꾸거나 하는 것 없이 나레이션만 추가된 리믹스곡입니다. 그런데 그 나레이션이 김초엽 작가의 전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구절이에요. 너무 잘 어울려요. 작사가 크레디트에도 김초엽 작가가 포함되어 있답니다." 📙 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보러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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