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ㅇ 다음 작품은 무라타 사야카 작가의 '無'(무)입니다. 무라타 사야카는 한국 독자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던 소설 《편의점 인간》(살림, 2016)의 작가죠.
예인 《편의점 인간》이 독자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던데 저는 '호'에 가까워요. 일본 사회의 특성이 잘 반영된 소설이더라고요. 무라타 사야카가 특유의 허공에 떠 있는 듯한 기묘한 톤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톤이 저에게는 흥미롭게 다가왔었어요.
ㅎㅇ 《편의점 인간》을 읽으면 편의점에 더 가고 싶어지나요?
예인 네! (웃음) 일본 여행에 가서 편의점에 갈 때마다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어떻게 움직이시는지를 보게 되거든요. 인상 깊은 건 '이들은 왜 이렇게까지 세심한가'에 있어요. 제가 컵라면 3개, 요거트 2개를 사면서 아무말을 안 해도, 호텔에 돌아와 비닐봉지를 열어보면 나무젓가락 3개와 스푼 2개가 알아서 들어있는 거예요. 그런 소름 끼치는 디테일들이 《편의점 인간》에서도 읽혀서 놀라고 말았습니다.
ㅎㅇ <無> 이야기로 돌아와 보면, 저는 이 소설을 ‘르포 기자들이 좋아할 것 같은 이야기’라고 느꼈어요. 극 중 주인공이 세 명인데, 그 셋이 각각의 세대를 맡고 있잖아요. 각각 가치관이 다르고, 유행하는 것도 다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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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의 등장인물들
🧑💼미요(50대 여성)
🙍♀️나나코(20대 여성, 미요의 딸)
👩고토네(10대 여성, 미요의 직장동료 도가와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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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게 실제로 일본에 있는 세대 이름이 아니라, 미요가 속으로 부르는 별칭들이예요. 그래서 계속 다양한 이름의 OOO 세대들이 언급 되는데요. 이런 접근법을 르포 기자들이 읽으면 좋아할 것 같고, 기꺼이 서평을 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인 저는 르포 기자는 아니지만 이 소설이 좋았고, 웃겼어요. 미요가 각각의 세대에 대해 본인만의 정의를 내리는 걸 보면서, 저도 '우리 세대 이름을 작명해볼까?' 싶었어요. MZ세대가 지겹다고는 하는 한편으로는 우리 세대만의 이름을 지어보고 싶어진 거죠.
ㅎㅇ 그래서 <無>에는 어떤 세대들이 등장하나요?
예인 제일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세대는 '없을 무' 자를 쓰고 있는 '무 세대'입니다. 모든 게 소멸하고, 망각하고, 사라지기를 추구하는 그런 세대인 걸로 보여요. 이야기의 초반에는 '우리 딸이 지금 무 유행에 휩쓸리고 있다'는 류의 고민을 미요의 직장 동료들이 나누고 있어요. 그런데 미요의 딸은 이미 무의 가치관을 받아들인 이들이 모여 있는 집단에 가 있고, 그것에 대해 말을 꺼내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처음에는 미요의 딸 나나코가 무 집단을 향해 가고, 나중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이 무의 세계로 빠지게 되고요. 그런 모습을 그리는 중에 서로 다른 세대가 교차하기도 하고, 서로가 추구하는 것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함께 볼 수 있게 돼요. '나는 도대체 쟤들이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사람 역시 자기가 속한 세대의 유행을 따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결국 모두는 자기가 속한 세대의 유행을 조금씩은 따를 수밖에 없고, 그런 데에서 묘하게 정곡이 찔리는 듯한 기분이 드는 작품이에요.
ㅎㅇ 나나코는 20대일 때 무라는 게 엄청나게 폭발적으로 유행을 하고 있죠. 극 중에 무의 유행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인 '무가 맨션'이 있어요. 그곳에서의 생활은 어떤 식인고 하니, 오감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렇게 입주민들은 시간 감각을 잊고 지금까지 맺어왔던 인간관계를 잊어버리기 위해 애를 씁니다. 이들의 가장 큰 목표는 ‘망각하기'인데요. 각자 망각하고 싶은 건 다르겠지만, 혼돈과도 같았던 일상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것들을 잊어버리려고 시도하는 겁니다. 그렇게 없을 무의 상황이 되는 거고요. 이런 무가 맨션이 만일 한국에 있다고 하면 체험해 보고 싶으신가요?
예인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약간 무가 맨션에 매혹 됐어요. 우리가 오감의 자극을 강하게 받으면서 살고 있잖아요. 쉴 틈 없는 생활이 지속되죠. 그런 데에 시달리다 보니 내가 좋아서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가끔 약간 숨이 벅찬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모든 게 사라지고 소멸하고 망각할 수 있는 세계를 한번 경험해보고 싶어졌어요. 근데 막상 무가 맨션에 3일 정도 있으면 더는 못 있겠죠? 그러니까 디톡스같은 느낌으로, 체험의 개념으로 다녀오게 될 것 같네요.
ㅎㅇ 다녀 오면, 인스타그램에 올려주시나요?
예인 당연히 올려야죠. 무가 후기. 내돈내산. (웃음)
ㅎㅇ 저는 도파민이 지속적으로 도는 상태가 괴롭지만 동시에 좋은 것 같긴 해요. 그래서 오감을 쓰지 않으면서 머무르는 상태가 잘 상상이 잘 안 돼요. 그리고 근 10년 동안 주변에 시계나 달력이 없는 상황에 한 번도 놓여보지 못했으니, 무가 맨션에 들어가면 좀 불안할 것 같기도 하고요.
예인 맞아요. 어쨌든 감각을 잊고 관계를 잊으려면 일단 시간을 몰라야 하는 것 같거든요. 오늘이 며칠이고 몇 시인지 아는 순간부터 많은 인식이 시작되니까요. 사람들이 시간을 모른 채로 살게 하는 게 중요한 장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ㅎㅇ 이제 여기서, 무가에 살고 있는 나나코에게 '고토네'가 찾아가게 되죠. 고토네는 10대이고, 무 유행에 휩쓸리는 중인데요. 그런데 막상 무가에 대녀온 이 친구의 후기는 '시시하다' 입니다. 왜 시시하다고 느꼈을까요?
예인 나나코와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이 사람들이 제대로 진정한 망각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아차린 게 아닐까요? 모든 문제가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말끔한 해결책은 없다는 걸 고토네가 알았던 게 아닐까 싶고요.
ㅎㅇ 그래서 고토네는 무가에 입주하지 않고, 무를 받아들이지도 않기로 결정하죠.
예인 저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미요 캐릭터가 재미있었어요. 미요가 감정을 인식하는 방법이 굉장히 독특하거든요. 어렸을 때 슬픔이나 괴로움, 고통은 어디서 오는 거냐고 물었더니 자기 엄마가 귀찮다는 듯이 그런 건 도쿄 타워에서 온다고 대답을 해버린 거예요. 그때부터 미요는 그 말을 믿기 시작하죠. 다 자라서도 믿어요. 그래서 자신에게 어떤 감정이 밀려올 때마다 '도쿄 타워에서 나에게 이 감정을 흘려보내는구나'라고 생각하고는 하죠.
ㅎㅇ 이제 50대 여성이 된 미요가 어렸을 적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듯이 했던 엄마의 말속에 있는 '도쿄 타워'는 이 소설에서 중요한 장소로 기능을 하고 있죠. 그리고 미요가 했던 생각 중에, "왜 도쿄 타워는, 내게 '모성'을 송출해주지 않았을까."(p.29)라는 혼잣말이 있잖아요.
예인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엄마와 딸의 모습은 아니에요. 딸이 엄마를 보는 것도, 엄마가 딸을 대하는 것도요. 끈적거림이 하나도 없고, 건조하다고 말하기엔 조금 더 공허한 느낌이 있는 관계로 그려지고 있어요. 처음부터 독특한 엄마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끝까지 읽고 나니 미요는 보통 인물이 아니었어요.
ㅎㅇ 제목은 한 글자로 임팩트가 강한데, 내용도 마찬가지로 임팩트가 강한 단편소설입니다.